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잉지 Aug 23. 2016

감히, 사랑이라 말한다

편견 혹은 환상


어느 날 뜨거운 햇빛을 피하려 안간힘을 쓰며 빨래를 널다가 생각했다.

스스로를 인간 군상 중 하나로 분류하자면 나는 '여행자'의 그룹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이외에 달리 무엇이 될 수 있을까?






플로베르는 국적과 관계없이 자신이 끌리는 곳을 고향이라 부를 권리를 주장했다. 내겐 인도가 그랬다. 그곳은 미처 밟기도 전부터 그리운 곳이자 마주하던 순간부터 사랑해 마지않는 나의 고향이었다. 끊임없이 이집트를 갈구하던 이 프랑스인처럼 나도 인도에 하릴없는 애정을 느낀다. 그러므로 한계에 몰려 어딘가로 떠나야만 했을 때 인도가 단 하나의 선택지로 떠오른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스물 언저리 충동적으로 비행기에 오르며 비로소 꿈속의 고향은 현실이 되었다. 가슴 뛰는 그 날을 떠올리며 생각해 보곤 한다.


그때 인도에 가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선택하지 않은 길만큼 흐리고 아득한 것이 또 있겠냐만은 인도를 만나지 않았다면 이런 식의 노마드(Nomad)는 되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한 인간의 삶을 전혀 다른 궤적에 올려놓고도 인도는 여전히 나를 꿈꾸게 한다. 허공을 향해 던진 부메랑이 돌아오고 아침이 오면 해가 떠오르는 것처럼 인도로 돌아가는 일 또한 살아 숨을 쉬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가실 줄 모르는 그리움과 함께.



Varanasi, India (2015)



눈을 감으면 바라나시(Varanasi)의 좁은 골목이 훤하고 알록달록 벽 뒤에서 쏘옥 고개 내밀 얼마저 환 내게는 먼 이야기지만 요즘 같은 '대여행 시대'에도 인도는 아직 많은 이들에게 어려운 나라다. 건너 건너 전해지며 부풀려진 낯선 이야기 때문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있다. 직접 방문한 사람이든 매체로 간접경험을 한 사람이든 대개 인도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갈리는데 재미있는 것은 정반대의 평가가 같은 모습에 대한 다른 반응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인도를 바라보는 개인의 시각과 성향의 차이, 그리고 어느 측면을 인상 깊게 느끼는가에 따라 인도는 수만 가지 모습의 다채로운 탈을 쓴다.


몇몇 사실들에 대해 말해보자. 2016년에도 인도에서는 시시때때로 전기가 끊긴다. 24시간 사용 가능하다던 뜨거운 물은 3분이면 끊기기 일쑤고 큰길에라도 나갈라치면 온갖 소음이 고막을 찢을 듯 달려든다. 좁은 골목은 늘 번잡하며 먼지가 많아 켈룩켈룩 기침이 난다. 비가 오면 온갖 오물과 함께 하수도가 끓어 넘치고 새벽이면 벌건 눈을 한 개들이 짖는 소리에 잠에서 깬다. 사나운 원숭이는 머리 위를 뛰어다니며 일용할 식량의 안위를 위협하고 거대한 소뿔에 받혀 손바닥만 한 피멍을 얻는 일도 부지기수다. 거리에 나서면 호객꾼이 능숙한 한국어로 성가시게 들러붙고 시답잖은 장난을 걸어오는 이들도 지천이다. 인도의 이런 점이 사람들을 질색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순수하고 따뜻한 모습이 존재한다. 그들의 맑고 깊은 눈은 단번에 마음을 꿰뚫고 들어오는 듯했고 맨발의 아이들을 끌어안아 까만 볼에 입 맞추면 까르르 굴러가는 웃음소리에 세상을 다 가진 듯 벅찼다. 누구도 나의 사소한 곤란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고 그리하여 완벽한 타인이자 이방인인 나를 따스하게 보듬어 주었다. 그들은 내게 원하는 것을 하라 말했고 삶을 즐기라 했다. 네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 말해주었다. 그 속에서 과거에 얽매이거나 미래에 사로잡히지 않고 현재를 사는 법을 배웠다. 세상을 대하는 시각을 새로이 했고, 자연히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혹자는 행복은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 말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행복을 대단치 않은 일에서 발견하는 방법을 나는 그때, 인도에서 깨달았다.


인도는 달랐다. 무엇보다도 종교나 문화, 삶의 방식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달랐다. 여러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다신교적 일신교인 힌두 문화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다름이나 차이를 평가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했다. 타인을 인정하는 현명함과 그것을 향한 진심을 느꼈을 때 나는 비로소 인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인도를 떠올릴 때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익히 알려진 일련의 범죄 사건들에 대해서는 나 또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렇다. 범죄가 있었다. 당신이 아는 것은 흉악한 범죄가 일어났다는 사실 뿐일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그것은 인도에서도 결코 흔한 종류의 사고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분노하고 괴로워했다. 대규모의 시위가 일어났으며 거센 항의가 잇달았고 인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 행해졌다. 그리하여 더디지만 지속적인 변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인도에는 어두운 일면을 바꾸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켜보는 대신 발 벗고 나서 분노하고 앞장서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기에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존재한다. 인도는 과거에 멈추어 있지 않다. 그들은 앞으로 나아갈 것이고 달라질 것이다.












인도는 안전하지 않다.


그러나 다른 곳 보다 더 위험하지도 않다. 인간이 모여 사회를 이루는 지구의 어느 구석, 딱 그만큼의 위험이 인도에도 도사리고 있다. 세상에 전무후무한 범죄인 양 부풀려 보도된 인도의 성범죄들은 충격적이리만치 잔혹했다. 그러나 몇몇 범죄로 한 국가에 대한 이미지를 평가 절하하고 전 국민을 잠재적 살인범 인양 몰아세우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


그대들이 인도에 대해 가진 편견과 환상이 어떤 색, 어떤 모양새인지 나는 모른다. 나 또한 인도라면 치마폭에 두르고 싶은 콩깍지 씐 인간이므로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사랑 또한 누군가에겐 도저히 납득 못할 일인지도 모른다. 다만 편견이라는 왜곡된 시선으로 인도를 바라보는 일만큼은 그만두어줬으면 좋겠다. 당신의 기대에 맞추어 인도를 재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봐주었으면 한다. 바라건대 환상이나 허상 대신 인도가 품은 따뜻한 진심과 너그러운 마음을 발견하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자의 품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