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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지 Apr 26. 2016

여행자의 품격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


여전히 불균형하지만 제법 안정된 사회구조 덕에 많은 사람들이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단계에서 벗어나 여가 생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더불어 가속화된 교통·통신 수단의 발달과 세계화는 타국으로 떠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주었고 이제 여행은 '독서'나 '음악 감상'만큼이나 흔한 취미가 되었다. 급증한 여행인구는 다양한 정보와 저렴한 서비스를 원했다. 발 빠르게 시장의 수요에 부응한 사업가들 덕에 이젠 20만 원이면 동남아 왕복 티켓을 산다. 순기능과 선순환이랄까. 그러나 무엇이든 급격한 변화는 부작용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여행의 경우 부작용이라면 여행이 주는 수많은 가치보다 화려하게 소비되는 이미지와 자기 과시에 이목이 집중된다는 것, 그리고 스펙으로써 여행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주제넘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고민한 화두다. 기어코 꺼내어 들었지만 다른 사람의 여행을 구분 짓고 평가하거나 비난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다만 여행이 보편적인 여가활동이 된 만큼 이 나라를 떠나 다른 문화에 발을 딛는 이라면 최소한의 예의로 한 번쯤 고려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근에 태국과 인도를 여행하면서 소위 '갑질 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보았다. 반말을 하고 호통을 치고 마치 아랫사람인 듯 부리는 모습. 돈으로 사람의 존엄까지도 살 수 있다는 듯 구는 그네들의 모습은 다만 여행 중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서비스직 알기를 종놈 알듯 하는 못된 특성이 발현된 까닭도 있겠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정말로 여행 중인 국가의 사람들을 낮게 본다. 확연히 차이 나는 태도로 사람을 무시하고 영어 발음이나 음식, 문화를 싸잡아 불평하는 등 눈살을 찌푸리게하는 행동을 보면서 나는 같은 국적을 공유한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들에게 미안해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많은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그런 얘기에 공감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때마다 궁금했다. 저 사람들,  공정여행(여행자와 여행대상국의 국민들이 평등한 관계를 맺는 여행)이란 단어를 들어는 봤을까?


아래 이어지는 일화는 유럽이나 미국, 그러니까 선진국이나 강대국이라고 일컬어지는 영미권 국가들이 아니라 동남아와 인도에서 일어났고, 남미에서도 페루나 볼리비아에 있을 때 비슷한 억하심정을 느끼곤 했다.





Varanasi, India (2015)



바라나시에 도착한지 겨우 이주가 넘었을 무렵, 여느 날처럼 라씨 샵에 앉아 하루를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누군가 말했다.


솔직히 인도 애들은 좀 그래. 왜, 서양인들이 동양인 무시하고 그러잖아? 전엔 왜 저러나 싶었는데 인도 여행하다 보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마주 앉아 있던 여자애가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맞아요. 아무리 잘생기고 똑똑해도 인도 애들은 좀...

 


맙소사. 이해씩이나! 너무 놀라서 말을 잃었다. 이미 유럽과 미국을 여행했고 인도와 동남아를 거쳐 한국에 돌아갈 거라던 남자였다. 인도가 좋아 3개월이 넘도록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여자아이였다. 제법 긴 여행을 했다는 사람과 인도를 좋아한다는 사람 입에서 아무렇지 않게 나온 것이 저런 말이라니 더욱 기가 찼다. 그들은 개인의 성향과 특성에 따른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과 인종이라는 말도 안 되는 분류로 인도 국민 모두를 매도했으며 자신이 받은 차별마저 정당화했다. 세상에, 저런 논리라면 인류가 평등을 위해 애써온 지난 세월은 뭐가 된단 말인가.


왜?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뭘 이해한다는 거예요? 되물었지만 어느 때보다도 무서운 '그냥'이 답으로 돌아왔으므로 그대로 낙담하고 말았다.






그 뒤로 은거(隱居)에 가까운 생활을 했다. 무서운 편견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잔인한 말을 모국어라는 이유알아들 사실마저 원망스러웠다. 논리적이기보단 감성적이고 맞서 싸우기보단 피하는 일이 잦은 무책임한 나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을 외면하기를 택했다.



그 후 두 달쯤 지나 똑같은 라씨 샵에서 8개월 간의 세계일주를 계획 중이라는 사람을 하나 만났다. 자꾸만 말을 붙이는 본새를 보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모양이었다. 칭찬을 받고 싶은 것 같기도 했고. 그는 여행으로 많은 걸 배웠다고 했다. 갖고 있던 편견이 많이 없어졌다고도 했고 느끼는 점도 많다고 했다. 여행을 떠난 지 겨우 2주가 되었다는데 어쩜 그렇게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을까 궁금해져 물었다. 무엇을 느꼈는데요? 잠시 고민하던 그가 입을 뗐다.



인도는 못 살잖아요



잠자코 듣고 있던 눈동자가 흔들렸다. 미간이 찌푸려졌는지도 모르겠다. 단번에 날카로워지는 신경을 다듬어야 했다. 차가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뇨, 못 살지 않아요.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으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여긴 더럽고, 길에 똥도 많고. 한국은 똥도 없고 건물도 반듯하잖아요.

그런데도 이 사람들은 다들 행복해 보이고-


더는 참을 수 없어 말을 막았다. 도대체 누구를 만나고 와서 이들을 행복하다 말하는 지도 알 수 없을뿐더러 이미 아주 잘못된 편견으로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그건 정말 이상한 기준이네요. 길에 똥이 있으면 불행한가요? 아니면 불행해야 하나요? 똥이 없으면 사람들이 행복한가요? 그것이 행복과 불행이라는 감정의 원인이 되나요? 그건 이상한 출발이에요. 아주 이상한 말이에요. 애초에 '인도는 가난한 나라지. 못 사는 사람들이구나. 길에 똥이 있는데도 행복해 보이네. 이상하다.' 하는 전제로부터 시작하고 있잖아요. 저기요, 나도 이렇다 저렇다 말해줄 입장은 못되지만요. 잘 생각해요. 편견 없이 시작한다는 거 정말 어려운 일이겠지만 시도해봐요. 인도인은 이렇구나, 인도는 이렇구나 하지 말고 이 사람은 이렇구나, 이 동네는 이렇구나 생각하려고 노력해요. 괜한 기준을 세우고 구분하지 말아요. 문화와 환경이 다를 뿐 모두 사람 사는 곳이라는 전제에서 시작해봐요.


그는 내 말을 곰곰 씹어보더니 생각이 많아진다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이 혼란했다. 내 속을 휘젓는 것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고 그는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먼저 자리를 떴다.













편견은 무엇으로부터 오는가? 경험이다. 경험은 곧 시간이고, 시간 위에 사는 우리는 경험과 함께 지극히 개인적인 편견이 쌓이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이미 잘못된 선입견으로부터 시작한다면 무엇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 편견으로부터 시작한 평가가 올바른 방향을 향하고 색안경을 끼고 만나는 세계가 진실될 리 없다. 개발 도상국이라서, GDP가 낮아서, 산업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곳 사람들이 '못'살고 있을까? 그 사람들은 못 살고 있지 않다. 그리고 그런 시선을 받아야 할 이유도 일절 없다.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 다른 환경에서 자라 왔고 조금 더 높은 통화가치를 가진 지폐를 사용한다고 해서 사람을 편견으로 대하고 낮잡아본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잘 살고 있지 않다. 경제적 가치 따위를 빌미로 사람을 분류하고 평가하려는 것부터가 틀렸다. 같은 인류로, 한 시대를 함께 향유하는 인간으로 같은 선상에서 대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뿐, 어떤 인간에게도 타인을 평가할 권리는 없다. 


나와 타인의 차이점을 섣불리 일반화하는 실수는 더 경계되어야 한다. 내가 한국인이고 네가 인도인이어서가 아니라 그와 내가 다른 인간이어서 생기는 차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두자. 생각해보라. 인종 집단 간의 차이보다는 개별 구성원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차이가 훨씬 더 크다. 그러므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관점은 그 사람이 속한 집단에서 탈피해 '이 사람은 이렇구나', '이 지역에는 이런 문화가 있구나'로 수정되어야 한다. 이제야 말한다.


편견으로 시작해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면 당신은 '잘' 살고 있지 않습니다.

당신 안에 새로 쌓은 세계는 무너져야 합니다. 그것은 이미 잘못된 방향을 향해 시작되었으니까요.



마주한 편견들은 불편했다. 그리고 이 글이 다양한 이유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것도 안다. 이런 불편함을 토로하는 것 조차 너의 이기심이고 자만이고 치기 어린 오지랖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나로 말미암아 한 번쯤은 당신 안의 편견들에 대해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인식했을 때야만 비로소 개선의 여지도 생기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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