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명의 기술, 조롱의 역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꽃’과 같이 이름을 짓고 부르는 것은 그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활동을 위한 아이디나 필명에서부터, 소중한 가족들의 이름이나 별명에 이르기까지 사랑을 담아 만드는 이름들이 있다.
직장인들에게 보다 공적으로는 제품의 이름이나 프로젝트명, 팀의 이름이나 회사의 사명을 지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직관적으로 들으면 곧바로 연상되는 이름을 짓기도 하고, 한 번 곱씹어야 알 수 있는 이름, 또는 영어의 약자를 모아 그럴듯한 의미를 담은 한 단어로 새로운 이름을 만들기도 한다. (보통은 적당한 단어를 먼저 골라잡고, 각 단어의 글자로 문장을 만들어내는 프로세스가 더 흔하긴 하다.)
하지만 때로는, 상대방을 조롱하기 위해 선택한 단어가 기막힌 설명이 되어 그 사건이나 주체의 대명사가 되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
과학계에서 가장 유명한 예는 ‘빅뱅 이론’ 일 것이다. 우주는 항상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며 새로운 물질이 생성된다는 ‘정상우주론’을 지지하던 프레드 호일이 라디오에서 우주가 한순간에 폭발적으로 시작되어 팽창하고 있다는 ‘팽창우주론’을 터무니없는 것이라 비판하며 조롱하듯 ‘커다란 폭발(Big Bang)’이라고 말한 것이 너무나 유명해지며, 오히려 팽창우주론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빅뱅 이론’이 되어 버린 것이다.
예술계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19세기의 대표적 화풍이자 지금도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리는 화가들을 거느린 ‘인상주의’의 탄생 또한 비판에서 시작되었다. 비평가 루이 르로이가 클로드 모네의 작품 ‘인상, 해돋이’를 보고 “이건 그냥 인상만 있는 미완성 스케치일 뿐이다!”라며 조롱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말이 모네를 주축으로 한 인상주의 작가들의 작품에 너무 잘 어울리며, 새로운 작가들의 작품들을 ‘인상주의’라 부르게 되었다.
종교계에서는 17세기 영국에서 등장한 기독교 종파인 ‘성결친우회’가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종파의 설립자인 조지 폭스가 재판을 받는 중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떨라(Quake before the word of God)”고 말했다고 법정에서 그를 조롱하며 ‘퀘이커(Quaker; 떠는 사람)’이라 부른 것을 계기로, 성결친우회는 이후 ‘퀘어커교’로 불리게 되었다.
이처럼 조롱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세가 되어버린 사건들과 주체들은 그 이름의 조롱마저 삼켜버릴 힘이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작명의 기술인가, 작명을 뛰어넘는 본질의 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