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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암 Oct 09. 2024

C49.9 - Myxoid Liposarcoma

Episode 16 | 익숙한 것들과의 헤어짐

익숙한 먹거리들과의 헤어짐과 새로운 만남

암 판정을 받고 나서부터 아내와 어머니의 도움을 가장 크게 받는 부분이 식단 변경이다. 두분이서 사들인 암식단 관련 책만 10권이 넘는다. 암세포들이 자라기 불편한 몸을 만들기 위해 기존에 먹고 마시던 음식들을 모두 바꿨다. 특히 혈당 스파이크가 일어나지 않도록, 저혈당 음식이나 식사 순서 등을 조절해서 꾸준히 관리하며 먹어줘야 한다.

[헤어짐] 붉은빛 도는 고기는 금물이다. 소고기나 돼지고기가 그들인데, 나는 유독이나 좋아했다. 일주일에 한번은 아빠가 구워주는 스테이크 식사가 나름 우리집 전통이였다. 스테이크 대신 생선구이로 바꿔본다.

[헤어짐] 매운 음식 또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머리속에 땀이 맺히도록 한바탕 먹고나면 스트레스가 확 내려간다. 때로는 다음날 엉덩이에 불날 것을 알면서도 매운게 잘 들어간다. 투병중에는 가급적 안맵게 먹어보자. 스트레스는 다르게 풀어보자.

[헤어짐] 짠 음식을 찾아 먹지는 않지만 중간정도의 간은 좋아한다. 스낵은 주로 나트륨이 많은 칩 종류를 좋아하는데 일절 끊었다. 요즘도 짭짤한 스낵은 종종 생각나는데, (특히 스낵을 다 먹고 가루를 입에 덜털어 넣을때의 짭잘함) 바삭함 때문인지 짭짤한 때문에 생각나는지 잘 모르겠다.

[헤어짐] 흰쌀밥과 일반빵을 먹기를 멈췄다. 대신 잡곡밥과 통밀빵으로 대체했다. 잡곡밥은 꾸준히 먹고 있었어서 괜찮은데, 잘먹던 대부분의 빵을 끊었더니 한동안 먹고 싶었다. 맛있는 빵들이 많아 통밀빵은 시도조차 안했는데, 이제는 통밀빵도 하나도 감사하다.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난다.

[헤어짐] 당도 높은 과일은 과하게 먹지 않는다. 대신 바나나나, 베리류 등을 주로 먹는다. 사무실에 출근하면 주로 크로와상 하나, 커피, 그리고 과일로 아침식사를 했었었는데, 항암 마치고 복귀하면 새로운 조합을 찾아봐야 겠다.

[헤어짐] 술은 즐겨 마셨었다. 맥주, 소주, 양주, 와인, 샴페인, 칵테일 등 분위기에 따라 음식에 따라 골라 마셨다. 바쁜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양주 한잔, 더운 여름 운동 후 맥주 한잔, 아내가 만들어 준 칼칼한 찌개에 소주 한잔, 기분좋은 날 분위기 잡고 와인 한잔 등등, 순간순간 술 한잔이 안 따라온 적을 손으로 꼽기 어렵다. 해외출장에서 돌아오는 면세점에서 고생한 나를 위한 선물로 비싼 위스키를 사기도 했다. 그러나 암 판정 받은 날부터 한방울도 안 마셨고, 희한하게도 안 땡긴다.

[헤어짐] 단 음식은 암세포가 가장 좋아하는데, 다행이 달달한 음식은 좋아하지 않는다. 디저트도 크게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단 음식을 좋아하는 아내와 함께 오래 살다보니 단 음식에 재법 노출되어 있었다. 단 음식을 끊는다고 크게 슬프지는 않다.

[만남] 이것 저것 넣은 야채 주스는 아침마다 마신다. 야채주스는 암환자의 기본이다. 나 때문에 만든 주스는 아내나 부모님도 같이 드신다. 가족 다같이 건강해짐이 느껴져서 좋다. 또한 먹을만해서 부담없이 잘 마신다.

[만남] 야채나 나물은 데쳐 먹는다. 생 야채보다 데친 야채에서 보다 세포 형성에 도움이 되는 성분들이 나온다고 한다. 여러가지 야채나 나물들의 맛을 음미하며 먹다보니 각 야채의 장점이 입에서 느껴진다.

[만남] 흰살 생선이나 조개류가 좋다고 해서 하루에 한끼는 적어도 상에 오른다. 또한 고기 중에는 닭고기가 먹을만 해서 종종 밥상에 올라온다. 이들은 원래 잘먹던 것이라 좋다.

[만남] 평소에 먹지 않았던 블랙베리, 라즈베리 등을 먹기 시작했다. 베리류는 암환자에게 좋다고 한다. 한국에는 구하기 쉽지 않은 것 같던데, 미국은 매우 구하기 쉽다.

[그대로] 과하지 않은 커피는 괜찮다. 하루에 한두잔 정도면 괜찮을 것이다. 그 전에는 하루에 3~4잔 정도 마셨다. 저녁에 마시는 커피 한잔도 수면을 크게 방해하지 않았었다. 이제는 하루 한잔정도 연하게 마시고, 때로는 디카페인 커피도 마신다. 디카페인은 최근에 처음 마셔봤는데, 커피의 향이 큰 차이가 없었다.

[그대로] 치즈, 바나나, 계란 등은 원래도 잘 먹던 음식인데, 암환자에 도움되는 음식이라 다행이다. 호박, 고구마, 밤, 옥수수 등도 문제 없이 잘 먹고 있다. 계속 잘 먹자.

상에 80% 이상은 야채이다. 예전에는 육식 위주로 식사했었는데, 이제는 채식 식단으로 변했다. 항암을 마치고 미국 돌아가서도 채식 메뉴로 바뀌었지 않을까 싶다. 다행이도 미국은 채식이 매우 발달되어 있어서 안심이다. 이렇게 적다보니 멈춰야 하는 음식들이 대부분이다. 멈췄던 음식들이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심하게 땡기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섣불리 먹지도 못하겠고 손도 안간다. 새로 바뀐 식단도 크게 거부감이 없다. 하지만 음식의 다양성이 국한되었다. 항암식단 몇주 만에 다양하게 음식을 해줄 수 없다고 어머니께서는 벌써부터 푸념하신다.


변화.. 파괴.. 다짐

암이 내 삶이 들어오면서 위에서 언급한 음식 뿐만 아니라 익숙했던 모든 일상이 변했다. 쉼없이 달려왔던 직장 생활, 정상적인 걸음이나 뜀이 필요한 운동, 원하는 곳은 자유롭게 다녔던 운전, 미국에 있는 가족들과의 일시적 헤어짐 등등. 좋게 말하면 변했고, 나쁘게 말하면 파괴되었다.

직장이 제일 큰 변화이다. 위로 올라가기 위한 몸부림, 세계 여러곳에 퍼져있는 팀원들과 파트너들 관리, 한달에 한번꼴로 다녔던 출장 등등, 회사 관련된 모든 활동이 멈췄다. 다행이도 회사에서는 나의 상황을 잘 이해해주었고, 수술과 항암기간을 포함한 긴 8개월의 투병을 모두 병가로 처리해 주었다. 팀원 중 메니저 경험이 있었던 친구를 내자리로 임시 발령내고, 내 보스가 어느정도 도움을 주면서 나의 공백을 메우고 있다. 병가 후 다시 그자리로 아무렇지 않게 무난히 들어갈 수 있을까?

수술한지 한달이 지난 지금, 뛰는 것은 고사하고 잘 걷지도 못한다. 보조기 없이는 평소 걸음 속도의 절반도 안된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줄어드는 초록색 숫자는 나의 걸음 속도보다 한참 빨라, 조바심 나고 넘어질 뻔한 적이 여러번 있다. 또한, 조금만 걸어도 발목은 이내 부어 오르는데, 보조기가 눌러서인지 발목이 무리가 오는건지 아직까지 알 방법이 없다. 내가 왜 갑자기 잘 못걷지라는 문득문득 찾아오는 어이없음에 이제는 실소만 나온다.

하필 수술한 다리가 오른다리라서 운전이 어렵다. 두 페달을 번갈아 가면서 밟아줘야 하는데, 종아리에서 발을 들어올릴 힘줄이 없다. 한번은 공터에서 운전대를 잡고 테스트 해봤는데 허벅지를 들어올려 겨우 페달을 옮겨줬다. 장애인 등록증(최소 6개월을 기다려야 함)을 받고 차에 손으로 운전하는 장치를 달아야만 비로소 자유롭게 운전할 수 있을 듯 하다. 그 전에는 가족들의 도움을 받거나, 가까운 거리는 공유 자전거를 이용하고 있다.

일시적이지만, 치료기간 8개월간 가족과 떨어져서 투병하는게 쉽지 않다. 특히 아내와 떨어져서 각자 다른 건강상태와 감정상태를 이해하고 도와주지 못해서 힘들다. 각자 낮과 밤이 뒤바뀐 통화 시간도 맞추기 쉽지 않다. 8개월 짧다면 짧은 기간이지만, 어찌보면 이 기간을 함께 이겨내는게 몇년을 함께 사는것보다도 정서적으로 중요할 수 있겠다 싶다. 계속해서 방법을 찾아보자.

반대로, 출가한지 20년이 다 된 아들을 다시 집에 들여서 병수발을 해주시는 부모님도 뵐 면목이 없다. 살아온 방식도 많이 바뀌어서 부모님과 일상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고, 부모님 역시 일상생활을 다 바꾸고 아들 병간호에 올인하는 모습이 그저 죄송스럽다. 사소한 것들로부터 최대한 부딛히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으나, 몸이 고되니 이 또한 쉽지 않다.

이 모든 것들이 한편으로는 그 동안의 삶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직장은 잠시 쉬어가라는 의미이고, 건강한 음식과 금주로 보다 건강한 삶을 살라는 의미이고, 힘들겠지만 운동도 열심히 하라는 의미이고, 가족을 보다 아끼고, 부모님을 공경하고, 아내를 훨씬 더 사랑하라는 의미이겠다. 요즘 기대수명을 90으로 본다면, 마흔 다섯, 이제 절반 왔다. 건강하게 잘 회복해서 남은 인생 절반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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