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4 | 3차 항암
요약: 이전 차수들과 힘듬의 정도는 비슷했으나, 냄새에 의한 울렁거림이 좀 더 심했음. 몇 가지 노하우와 루틴(조재한 식염수 주사제, 침 삼키지 않기, 48시간 뒤 회복세)을 알면서 비교적 슬기롭게 항암 부작용을 빠르게 극복함.
3차 항암
1차는 입원하기 위해 8일을 기다렸고, 2차는 5일이 밀렸다. 3차 역시 7일을 기다려 입원했다. 평균 1주일은 기다려야 했다. 1, 2차는 주말입원 이였고, 이번에는 평일에 입원을 했는데, 병원에 도착하니 오후 3시쯤 되었다. 주말 입원일 경우, 첫날은 아무처리 없이 다음날부터 항암약을 처방받았었는데, 이날은 오후 4시 즈음에 항암약이 준비되었고, 5시쯤 항암을 시작하였다. 5인실이였고, 나 포함 4명의 환자들이 병실을 쓰고 있었다. 아쉽게도, 또래의 환우들은 없었다.
보통은 입원날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다음날에 항암약을 투약 받았었는데, 입원하고 나서 바로 항암약을 투약 받아서 그런지 어수선했고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다. 늦게 시작한 첫날의 항암은 다음날 새벽 5시쯤 마무리 되었다. 투여한 약의 루틴은 정확하게 똑 같았다. 스테로이드로 항암을 준비하고, 같은 ML의 아드리아마이신과 이포스파마이드를 투약하고, 세번의 해독제와 수액을 12시간 동안 길게 맞는다. 더불어 구토와 어지럼증이 시작된다.
둘째날은 오후 1시반부터 투약이 시작되어 다음날 새벽 2시에 마무리 되었다. 마지막날 11시 투약을 위해 (평소에는 매일 오전 11시에 시작하는 루틴이다.) 매일 3시간씩 투약시간을 당겼다. 어김없이 둘째날부터 딸꾹질로 고생하고 구토와 어지럼증은 점점 더 심해진다.
셋째날은 평소 루틴으로 돌아와서 오전 10시반부터 투약을 준비하고 자정쯤에 마무리 되었다. 이날이 되어서야 알게 된 사실이 있었는데, 간호사들이 사용하는 식염수 주사제에서 구토를 유발하는 약 냄새가 나는 것이다. 식염수 주사제는 약제를 바꿀때 마다 케모포트를 통해 수시로 주입하는데, 그동안 항암약 냄새라고 생각했었다. 간호사와 약 냄새에 이야기 하다가, 시판중인 일회용 식염수 주사제가 일부 환자로부터 약 냄새를 호소한다는 이야기와, 나 역시 그 냄새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추측컨데, 시판중인 주사제에서는 방부제 역할을 하는 추가 성분이 들어있었을 것이고, 그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퇴원해서 집에 돌어와서 쓰던 로션에서도 비슷한 냄새가 났다.) 일회용 대신 직접 조제한 식염수를 사용하니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았다.
넷째날 퇴원 루틴도 똑 같다. 점심때쯤 배꼽주사 (백혈구 증진제)를 맞고, 퇴원 수속을 마치고 귀가 했다. 퇴원 후 집에서 만 48시간을 오심과 어지럼증으로 몹시 고생한다. (이제는 48시간이라는 것을 3번의 경험으로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혀가 뻣뻣해지며 미각을 상실하며, 소변과 침에서 약 냄새가 배어 나온다. 이번 항암때는 가급적 침을 삼키지 않고 뱉었다. 그렇게 하니 침에서 배어나오는 약을 다시 삼키지 않게 되고, 상대적으로 오심을 줄일 수 있었다. 단점은 침을 계속 벹다보니 몸에 필요한 수분이 턱없이 부족하게 되었고, 타들어가는 갈증을 이겨내는데 힘들었다. 어쨌거나 꼬박 2일, 48시간을 고생하고 나면 비로소 컨디션이 서서히 돌아온다. 입맛도 서서히 잡히고, 점점 긴 잠도 잘 수 있다. 4~5일쯤 되면 일상 루틴들을 하나둘씩 해 나갈 수 있었다.
내 생일
퇴원 후 바로 다음날이 내 생일이었다. 인생 46살(만 나이)이 되는 날. 평소 같았으면, ‘아 생일이 한번 더 돌아오는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텐데, 이번 생일은 다르다. 뜻하지 않게 3.5기 암에 걸렸고, 큰 수술을 했고, 항암을 하고, 방사선 치료를 받는다. 긴 병가를 얻어 하던 일을 완전히 멈추고, 치료에 전념한다. 죽음을 깊게 생각하고, 반대로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깨닫는 중이다. 치료 외에는 나를 위한 시간들로 온전히 채우고, 그 시간들을 소중히 행복하게 쓰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맞이한 생일이라 그런지 보다 뜻깊다.
침대 밖으로 한발짝도 나설 수 없이 몸은 축 늘어져 있으며, 분 단위로 느껴지는 메스꺼움과 구토, 차라리 공복이 편한 나의 위장, 하지만 먹어야 기운을 차릴 수 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어머니의 생일상을 먹는 둥 마는 둥 다시 침대에 누웠다. 누워 있으니 생각도 많아졌다. 재발이 일어날까에 대한 두려움, 완치가 가능할까에 대한 의구심, 회사로 잘 복귀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 장애는 남은 인생을 얼마나 괴롭힐까 등의 여러가지 생각들이 항암의 후유증과 지인들의 생일 축하 메세지들과 완전히 뒤섞여 뒤죽박죽한 하루를 보냈다.
생일은 그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