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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49.9 - Myxoid Liposarcoma

Episode 32 | 케모포트와 혈전

by 기암

비상사태다. 5차 항암 후 10일 쯤 지났을까 어느밤 잠을 설치면서 새벽에 깼다. 몸 어딘가 불편해서 찾아보니 오른쪽 목이 부어있었다. 아차차. 4차때 있었던 치통이 이번엔 목으로 내려왔을까? 아니면 케모포트가 잘못되어 부었을까? 그 다음 이어진 생각으로는, 동네 의원에 가야할까? 항암하는 병원 응급실로 가야 할까?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응급실로 가기로 결정하였다. 동네 의원에 가더라도 항암환자는 대부분 진료를 거부당했기 때문이였다.


급하게 아침을 먹는둥 마는둥, 아침 8시쯤 도착했는데, 응급실은 거의 초 혼란상태! 내 앞에는 5명이 대기 중이였지만 진료 의사는 한명이였고, 그 사이에 엠뷸런스를 타고 온 응급환자들이 대략 10명이 되어 내 순서 앞으로 다 끼어 들었다. 응급실 대기 의자에서 노숙자처럼 누워서 언제 호명되나를 목빠지게 기다리다가, 결국 오후 2시에 처음으로 응급실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응급실 의사는 나의 컨디션 설명 듣더니 작은 초음파 기기로 목부분을 검사했다. ‘CT로 자세히 살펴봐야 하지만, 목에 정맥이 뚱뚱 붙고 검은 혈전처럼 보이는 것이 관찰되어, 첫 소견으로는 케모포트에 의한 혈전으로 의심된다‘ 고 알려주셨다.


아. 역시 케모포트가 문제였구나. 생각해 보니 전조증상이 있었다. 케모포트 목 부분의 뻐근함이 몆주전부터 발생했었다. 불편함이 금방 사라졌기에 큰 문제가 아니겠거니 생각했었다. PT를 받으며 근육운동을 해서 케모포트가 움직이며 혈전이 발생했었을까? 아니면 이미 혈전이 진행중이였는데 PT를 받으며 뻐근한 느낌을 알아차렸을까?


어쨌건 CT를 찍고, 또 한없는 기다림을 하다가 5시 정도에 간호사가 오더니 ‘혈전제거술을 받으셔야 하고 오늘은 교수님들이 다 퇴근하셔서 내일 오전에 몇시에 할지 모르겠지만 응급실에서 대기하셔야 합니다.’ 라고 퉁명스럽게 이야기를 건냈다. 이 컨디션으로 응급실 의자에서 밤샘을 하는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어서, 집에 갔다 아침에 오겠다고 몇번의 실랑이를 하다보니 응급실 의사를 만나게 해 주었다. 의사는 그제서야 CT결과를 화면으로 보여주면서 정상적인 설명을 해 주었고, 왜 응급실에 있어야 하는지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응급실 침대를 배정해주기로 약속하면서 실랑이는 마무리 되었다. 진작에 응급실 의사를 만나는게 순서 아니었을까? 정말이지 의료대란 상황의 응급실은 답이 없었다.


어쨌거나 항암이 고작 1차수만 남았는데, 케모포트를 살릴 수 있는가? 아니면, 다시 심는가? 2주만 버티면 케모포트 제거술 예약 날짜에 정상적으로 뺄 수 있는데, 왜 하필 지금인가? 등등 돌연 발생한 변수에 억울함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루종일 아침부터 고생하신 부모님을 우선 집으로 돌려보내고, 몇십분 지났을까 응급실 베드 하나를 배정받았다. 온종일 응급실 간이의자에 웅그려 지냈더니 베드에 누인 몸이 그렇게 편할 수 없다. 그 이후로의 조치는 일사천리로 잘 진행되었는데, 혈전이 추가적으로 생기지 않도록 헤파린을 혈관주사로 맞았고. 또한 피가 너무 묽지 않도록 6시간마다 피검사를 진행하였다. 넓은 공간에 얇은 천가리개로 구역이 나뉜 응급실 침상 위에는 온갓 환자들이 다 실려와 있었다. 대부분은 생명이 위험해 보이는 노인분들, 나머지는 다양한 연령대에 다양한 이유 온 환자들로 채워져 있었다. 일부는 내 앞으로 순서를 끼고 들어간 엠뷸런스 환자들도 보였다. 24시간 밝은 조명에, 고통의 신음 소리와 온갖 모니터링 기기의 삐삐 소리들이 뒤섞이는 통에도 한잠 잘 잤다.


밤 11시경, 담당 교수님께서 힘써 주셨을까? 혈액종양 병동 2인실에 자리가 남아서 그곳으로 이송되었다. 응급실 간호사는 혈액종양 병동은 자리가 정말 안나는데 매우 운이 좋다면서 축하해준다. 아마 속으로는 환자 한명이 더 이상 본인의 관리가 아니다며 기뻐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요청하지도 않았고) 영문도 모르고 응급실에서 쫒겨나 9층 병동으로 이사왔다. 항암하면서 자주 왔던 병동에 낯익은 간호사들이 보이니 희안하게도 고향집에 온 듯 편하다. 덕분에 밤새 편히 잘 잤다.


다음날 아침 10시경 담당 교수님께서 혈전제거 방법에 대한 수술법과 동의서를 받고 바로 시술실로 이동하였다. 앞전에 삽입술이 대충 15분 정도 걸렸으니까 제거술도 길어야 30분 일것이라 생각되었는데, 1시간반을 내리 시술하였다. 혈전을 제거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누워서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는데, 수술실에서 나와서 부모님께서 1시간반이나 지났다고 하니 깜짝 놀랬다.

혈전이 생기는 나의 증상. 설명들은대로 그려보았다.

역시나 차가운 수술방에 국소마취로 진행되었고, 삽입술때의 공포(에피소드 17 참고)를 최대한 억누르며 마음의 평정을 얻기위해 심호흡과 자기최면으로 최대한의 안정을 갈구했다. 혈전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사타구니에 혈관기계를 삽입하여 올라오면서 혈전제거를 하지만, 나의 경우 혈전 위치가 케모포트가 정맥과 만나는 부분부터 목 윗쪽으로 위치하였기에 혈관기계를 목 윗쪽에 넣어 혈전을 제거하였다. 교수와 레지턴트 추정되는 두분이 꾸준히 상의하고 또 가르쳐 주는 대화가 다 들렸고, 목에서부터 혈전을 구석구석 빨아내기 위한 의사의 몸부림이 수술천 넘어 있는 나의 얼굴과 목에 고스란히 전달되어 매우 무서웠다. 의사의 힘씀이 나의 버팀으로 합이 되어 그럴싸한 운동팀 복식조가 된 느낌이다. 한동안 혈전을 이리저리 빼내는게 느껴지더니 케모포트를 빼기 위해 피부를 추가 절개했다. 아 이제 끝나가나보다 했는데, 케모포트 관에도 제법 큰 혈전들이 묻어 있었는지, 의사 둘이서 장고 끝에 결론낸 방법으로 이리저리 혈전을 또 한무더기 빼낸다. 끝으로 혈관에 풍선을 집어넣기 위해 또 한동안 상의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때쯤 되니 몸에 힘이 빠지고 (아무래도 피를 많이 흘렸을 것이다)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하더니 이 후 시간이 어떻게 흘렸는지 어떻게 버텼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수면마취를 해 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게 1시간반 시술을 마치고 바로 병실로 돌아왔는데, 의외로 몸이 가볍다. 오랜시간 용을 쓰며 버텼기에 육체적으로는 고단했고, 수술칼이 닿은 부위는 아리아리했지만, 몸안에 혈전이 제거되었다는 기분이 그 고단함과 아리함을 이겼다.


혈종 담당 교수님은 이후 조치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혈전은 잘 제거되었지만 혹시나 남아있을 수 있어 하루이틀 입원하여 관찰하면서 모니터링하자는 의견이였다. 상의하다 보니 입원한 김에 6차 항암도 며칠 당겨서 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이때는 혈관주사도 가능하지만 말초 정맥 카테터(PICC)를 삽입해 3일만 사용하고 빼자고 하신다. 하.. 또 시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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