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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암 Sep 02. 2024

C49.9 - Myxoid Liposarcoma

Episode 6 | 깨지기 쉬움


미국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

두번째 조직검사 수술을 마치고 아내와 아이들은 미국으로 돌아갔다. 아내나 나나 이 종양이 암일 것이라고는 절대 예상하지 못 했기에 암 판정은 청천벽력한 소식이였다. 특히나 아내는 하염없이 울었는데, 이 힘든 소식을 먼 미국에서 들었던 것과, 옆에 같이 못 있어줌이 더해져서 배로 힘들었을 것이다. 암 판정 소식이후 아내와 거의 시간단위로 영상 통화를 했는데, 나의 멘탈보다 아내의 멘탈이 훨씬 약한것을 알기에, 내가 상대적으로 멘탈을 빠르게 잡았던것 같다.

하루는 하염없이 슬퍼하다가 하루는 이겨낼 수 있다고 기운내다가를 계속 반복하는 아내를 영상통화 넘어 보며, 멀리서 안아줄 수 없음에 마음 아팠고, 나의 불안함도 가까이서 위로받지 못해 힘들었다, 아내나 나나 수면부족과 식욕부족으로 허약해져 갔는데, 때로는 서로의 기복 사이클이 틀려서 서로를 바라보기도 마음이 아팠다.

두 아이들은 아빠의 암 소식에 생각보다 담담했다. 아직 인생의 경험이 얕아 암에 대한 현실감이 크게 공감이 되지 않았을 것이고, 아빠의 상황을 가까이서 보지 못하고, 바르게 학교생활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모든 상황들이 공감하기에 어려웠을 것이다. 빠르게 회복하여 일상으로 돌아가는게 내가 해야할 일이고, 이 투병기가 추후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면의 회피기제

암에 대해 통보를 받았을 때, 나는 내면에서 회피기제와 보상기제가 빠르게 발동했다. 암 결과를 회피하기 위해 태연한척 산정특례를 신청하고, 조직을 기증했다 (Episode 4 참고). 부모님과 지하식당에 있는 점심을 먹으며 통신망이 안 좋다며 가게의 와이파이번호를 태연하게 물어보는 내 자신은 분명 회피기제가 강하게 발동했을 것이다.

회피기제는 한동안 오래갔다. 암을 통보 받고, 장애를 예상했고, 항암을 해야 할 것이고, 전이를 확인한 첫 2일은 나의 하루 감당치 또는 인생에서 감당치를 몇배 아니 몇십배 넘었고, 강력한 회피기제로 인해 암에 걸린 내 몸과 내 정신을 엄격히 분리했고, 이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덜어내는 보상기제가 너무 달콤했을 것이다. 아내와의 통화는 에써 만들어놓은 회피기제가 약해지는 순간들이였는데, 통화내내 하염없이 눈물이 흘렸다.

이 섹션을 쓰는 지금도 강하게 쌓여진 회피기제는 한동안 아니 어쩌면 완치 판정나기 전까지 쉽사리 무너지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이렇게 하는게 암을 효과적으로 극복하는 방법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나에게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남기는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듣다.


깨져버린 나

내면의 회피기제는 크게 오래가지 않았다. 암 판정받고 4일째, 가까웠던 하지만 지금은 먼 사촌형이 불시에 집으로 찾아왔다. 원하지 않는 방문이였기에 함께 앉아서 이야기가 쉽지 않았다. 암에 대해 내가 하나도 준비 안 된 상태라는것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고, 방문한 사촌형의 위로는 하나도 귀에 안 들어왔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가슴이 답답하고 힘들어서, 그 형을 5분만에 돌려보냈다. 

돌려보내고 나서 나의 회피기제는 산산조각이 났다. 그날밤 식사한게 하나도 소화가 안되서 밤새 잠을 설쳤고 (돌이켜보면, 소화가 안 된 이유는 아마도 온갖 조형제를 2일 안에 한꺼번에 맞은 나의 몸이 못 견디였을꺼라 생각된다), 더욱 더 큰 문제는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회피기제라는 가면 뒤에 숨은 나의 정신은 암 덩어리를 지난 나의 몸과 드디어 만났을까? 내 스스로가 너무 불쌍했고, 암 전이가 두려웠고, 수술이 무서웠고, 수술 후 당장 생길 장애를 맞아하기가 두려웠고, 기나긴 항암 과정이 너무 무서웠고, 나의 아내에게 너무 미안했고, 나의 아이들에게 걱정되었고, 나의 부모님께 그리고 장인 장모님께도 죄송했고, 나의 누이에게 그리고 처제네 가족들에게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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