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쓴 시점으로) 내일 드디어 수술이다. 계속 우는 아내를 다독이느라 온 정신이 팔려서 살짝 숨 돌려보니 본 수술 12시간 전 밤이다. 걱정으로 잔뜩 무장한 아내가 어저께 비행기를 타고 급하게 한국으로 왔다. (Episode 8 참고) 어머니의 아이디어로 양가 부모님댁이 아닌 판교의 한 호텔에 1박 하면서 둘 만의 시간을 보냈고, 점심 후 느즈막하게 입원 수속을 밟았다.
다른 장기로 전이도 안되었고, 추가 MRI를 찍고 가자미근에 전이된 종양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아내는 간병인 침대에서 그간 못잔 잠을 몰아잔다. 신체 다른곳으로 전이가 안 되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그 어떤 수면제보다도 강력하게 그녀를 빠르고 깊게 잠에 들게했을 것이다. 초저녁부터 자기 시작하더니 내리 4시간 이상을 잔다. 미국에서 몇 주간 수면장애, 비행기에서도 거의 못 자고, 호텔에서도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단다.
자는 아내를 옆에 두고 나니 이제야 걱정이 몰려온다. 오늘 교수님과의 수술 상담을 했는데, 수술시 힘줄이 제거될 뿐 아니라 동맥 혈관도 자칫 건드려질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될 경우 발등으로 피 공급이 안되서 최약의 경우 발을 절단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의사들은 항상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야하기에 그의 말이 이해되지만서도 발 절단이라는 말은 무척이나 무섭다.
본 수술 - 입원 둘째날
2인실을 배정받았는데, 옆 아저씨의 코골이 소음 덕분에 밤잠을 설쳤다. 수술은 오후에 진행되는데, 새벽같이 교수님이 다녀가셨다. 오전 수술을 들어가기 전에 잠시 들리셨고, 그 수술을 마치고 바로 이어서 나의 집도를 오후에 맡아주신단다. 식사할 시간이 있나 싶고, 그의 컨디션이 오후에도 좋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나도 밤낮없이 일했지만, 의사들의 격무도 참 힘들겠다 생각이 든다.
오전에 추가 CT 촬영과 초음파를 통해 수술절개에 정확한 마킹을 하는 일정 (성형외과 수술전에 피부 위에 펜으로 마킹하는 것을 TV로 종종 보았는데, 비슷한 느낌이였다.) 을 소화했다. 그 외에는 맑은 정신으로 수술을 기다리고 싶었으나, 밤잠을 설친탓에 오전 잠이 쏟아진다. ‘환자분 수술실로 갈 시간입니다.’ 하는 간호사 소리에 잠에서 깼다.
6층 정형외과 병동에서 3층 수술장으로 굳이 이동침대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고 한다. 수술침대에 누워 이동하게되면 평소에는 보기 힘든 시야가 나타나는데, 사람들의 허리 이상 상체가 가까이 보이며, 얼굴을 볼라치면 턱부터 보인다. 환자용 엘리베이터에 타기전 수술이 잘 되길 기원하는 아버지의 대표기도로 가족끼리 수술이 잘 될 수 있도록 마음을 단단히 다졌다. 침대에 누워 같이 기도하는 가족들의 턱에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가까이 볼 수 있었고, 기억속에 오래 각인되었다.
3층 수술층에 도착하자 빠르게 가족들과 헤어지고, 수술 대기실에 들어온다. 이 곳이 낯설지 않아서 (Episode 3 참고) 비교적 편한 마음으로 대기하였으나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불안감과 평정심이 내면에서 서로 싸우는게 느껴졌지만, 심장이 빨리뒤는게 느껴졌으니, 불안감이 무의식 속에 보다 크게 생겼나 싶다. 그러는 찰라 담당 의사선생님은 나에게 수술 방향성을 거듭 알려주셨다. 그는 써전(surgeon) 답게 수술복이 가장 잘어울렸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짧은 대기 시간에 이어서, 곧바로 수술방으로 이동한다. 수술방 번호는 8번 이었고, 3주전 수술실 보다는 상대적으로 작은 방이였다. 마취과 의사는 한눈에 봐도 50세가 넘으신 교수님이 직접 전신마취를 진행하셨고 (아마도 전공의가 모두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후는 마취로 인해 생각이 나질 않는다.
수술은 5시간이 계획되어 있었으나 3시간으로 마쳤고, 잘 되었다. 점액성 육종 덩어리는 터지지 않고 (터지면 암이 전이 될 수 있어서 위험하다) 완벽하게 제거되었고, 예상대로 근육, 힘줄, 그리고 핏줄도 같이 잘려 나갔다. 나는 회복실에서 한 동안 깨어나질 못했는지 상체는 일으켜져 있었고, 서서히 정신이 들었다.
수술을 마치고 담당 의사선생님은 대기실에 있는 가족들에게 상황 보고를 했는데, 장모님 말씀으로는 너무 피곤해 보였다고 한다. 그는 담담하게 수술 브리핑을 했다고 하는데, 수술은 잘 되었으나 핏줄이 잘려나갔다고 했다. 핏줄 소식에 아내는 쓰러졌다고 들었고, 장모님의 수지침으로 정신을 차렸다고 한다. 가족들 모두 걱정이 많았고, 나는 이 소식을 병실로 돌아온 뒤 담당의사의 재차 브리핑에서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