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는 열었는데 ...
똑같은 무게, 똑같은 용량, 똑같은 재료... 도대체 왜 반죽은 매번 달라지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왜 반죽이 질어지는 거야? 발효는 왜 안 되는거야?"
나는 질문하고 싶은 게 많았다. 엄마는 내 질문에 "글쎄.. 어쩌면 잘되고 또 어쩌면 잘 안되고...
나도 모르것다"라고 말했다. 엄마의 레시피는 그날 그날 느낌과 컨디션에 따라 달라졌다.
나는 찾아내야 했다. 제과제빵을 배운 일도 없는 내가 집에서 만들어 먹던 주먹구구식 계량으로
그날 그날 운에만 맡길 수는 없었다. 무모하고 무식한 도전이었나? 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지만.
그런 생각을 궁리해 낸 내머리를 쳤다. 한가하게 후회나 하면서 또다시 엄마 탓인양 가게 문을
닫을 수는 없었다.
나는 밀가루를 너무 우습게 봤었다. 부침개나 수제비처럼 마음대로 반죽해도 내가 먹을 수 있는 모양은
나오는 그런 쉬운 재료쯤으로 생각했었다. 나는 반죽한 밀가루덩어리들을 수도 없이 버리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 4계절 온도에 맞게 반죽에 필요한 물에 양과 발효 온도를 달리 해야 한다는 걸...
반죽이 물러지면 발효가 잘 되지 않고... 그리고 그 반죽으로 튀기면 과자가 기름을 많이 흡수한다는 걸
두 해가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까다로운 미식가의 입맛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음식에 대한 철학과 품위... 나는 모른다. 하지만 내가 만들어 팔아야 하는 이 과자가 맛있었으면 좋겠다.
맛있어야 하고, 나는 맛을 알아야 한다. 상품성 있는 과자를 만드는 일은 맛도 중요하지만
모양도 좋아야 한다. 밀어놓은 반죽이 차가운 상태에서 튀겨지면 표면에 기포와 함께 매끄럽지 못한
못생긴 과자가 되고 만다. 또 반죽에 물이 부족하면, 튀기고 버무리는 과정에서 많이 깨진다.
'밀가루' 너를 알아가는 시간은 괴로움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아참, 개업식 다음날 수입은 11,000원이었다.
그때만 해도 과자가 완제품의 모양은 아니었기 때문에 적은 수입은 당연했고 다행이기도 했다.
손님보다 먼저 내가 먹어보는 일이 중요했다. 계속 먹었다. 알기 위해 먹었고, 궁금해서 먹었다.
도대체 알 수 없어서 먹어 보고, 그렇게 계속 먹고 있는 나에게 아들이 물었다.
"엄마는 과자가 그렇게 맛있어?"
어린 아들들도 엄마가 만들어내는 과자가 신기했던지 아니면 맛있는 냄새 때문인지
갓 튀겨져 나온 과자를 호호 불어가며 맛있게 먹었다. 그 덕분인지 나는 소금 2그람의 맛은
알 수 있을것 같았다. 설탕의 단맛, 베이킹파우더의 시큼하고 떫은맛,
땅콩과 아몬드 가루의 고소하고 깊은 맛, 우유와 계란의 담백하고 부드러운 맛 등등...
다시 계량해서 나만의 레시피를 만들었다. 시큼하고 떫은맛의 베이킹파우더는 빼고..
생막걸리를 추가하고.. 반죽에 소금양은 줄이고, 시럽에 소금을 약간 첨가하고..우유와 계란양은 늘리고..
땅콩가루보다 아몬드가루를 더 넣고.. 단맛이 부족했던 반죽에 설탕을 추가하고
시럽에 넣었던 설탕은 줄이고... 점점 맛있어지는 과자를 파는 일, 그것 또한 내가 해내야만 하는
중요한 업무였다.
볕좋은 5월 봄날의 아침이었다.
가게 건너편 세탁소에 모여앉아 동네걱정 하시는 아주머니 아저씨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가게문을 열었다. "젊은 애엄마가 뭔 장사를 한다고 가게를 얻었을까? 여기는 그런 장사 하는곳이 아니라
빨리 재개발이 돼야하는곳인데..." 하는 걱정어린 시선을 보내며... 아마도 몇 명의 손님이 들어가고 나가는지 손가락으로 세고 계셨을지도 모른다. 그마저 다 접히지 못한 손가락이 남으셨을 듯 하지만...
그날은 운좋게 과자가 예쁘게 잘 만들어져서 기분이 좋았다. 비닐봉지가 아닌 스티로폼 떡포장 용기에
가지런히 과자를 담아서 랩을 씌웠다. 그것은 매장에서 팔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또 겁나는 도전을 해보려 했다. 동네사람들 잘 보세요. 나는 꼭 해낼 겁니다.
차가 없었던 나는 잘 포장된 과자를 바퀴달린 시장바구니에 싣고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근처 먹자골목 시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