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민낯
가족과 함께 속리산으로 단풍 구경을 다녀왔다. 2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산자락은 노란빛과 붉은빛의 단풍이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울긋불긋 물든 단풍잎을 들고 부메랑 영상을 찍느라 즐거워했다.
그러다 갑자기 아내가 재채기를 연달아 세 번 하더니 목소리가 변하면서 계속 코를 풀었다. 처음엔 단순한 비염인 줄 알았는데, 눈을 비빈 후부터 왼쪽 눈이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다행히 속리산 입구에 있던 노부부가 운영하는 약국에서 알레르기 약을 구했다. 하지만 그날 부기가 가라앉지 않아 약을 여러 번 먹어야 했다.
오늘 아침, 어제보다는 덜했지만 여전히 부은 눈을 보며 아내가 걱정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부터 아침마다 붓기가 있었다는 말에 내 마음도 무거워졌다. 하지만 난 그 마음을 감추려는 듯 아이들에게 "빨리 준비해!"라며 소리를 질렀고, 그런 내 모습에 아내는 더욱 예민해졌다. 마치 눈덩이처럼 서로의 답답함은 커져만 갔다.
교회에서 만난 성도님들은 아내의 부은 눈을 보시곤 "요즘 일교차도 크고 단풍철이라 알레르기 환자가 많아요"라며 따뜻하게 위로해 주셨다. 그래도 걱정되어 근처 병원에서 알레르기 검사를 받았고, 주사와 약을 처방받을 수 있었다. 아내는 저녁예배는 집에서 쉬기로 했고, 나는 아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러 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들이 다투는 소리에 또다시 화가 났다. 집에 도착하자 아내는 "퇴근하고 집에 와서도 쉴 수가 없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 말에 나도 꾹꾹 참고 있었던 감정이 폭발했다.
"뭐가 쉴 수 없다는 거야? 나도 출근하고 아침저녁으로 집안일하는데, 당신은 출근 전에 애들 옷 챙기는 것 말고 뭐 하는데? 바쁘다면서 운동은 잘만 가잖아"라고 쏘아붙였다.
아이들이 "그만해"라며 말렸지만, 우리는 이미 화가 난 상태였다. 아이들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아내는 건강이 걱정되어 예민해져 있었고, 나는 그런 아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 불편한 감정만 드러냈다. 특히 아이들 앞에서 보인 모습이 부끄러웠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생기면, 서로를 탓하기보다 "많이 아프지?"라며 걱정해 주고, "내가 뭐 도와줄까?"라고 먼저 물어봐야겠다. 아이들 앞에서는 더욱 그래야 했다.
가족의 평화는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몸이 아파도 그 아픔을 가족에게 퍼붓지 말아야 한다. 앞으로는 '잠깐 멈추기', '상대방 마음 헤아리기', '대화로 풀어가기'를 실천하며, 아이들에게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하는 부모가 되어야겠다.
속리산의 아름다운 단풍처럼, 우리 가족도 서로의 마음을 보듬으며 더 끈끈해져야겠다. 누군가 아플 때일수록 더 다정한 말 한마디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