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넓은 우주에 혜성처럼 나타난 해성이는 2학년 담임일 때 만난 남자아이다. 이 아이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개인적으로나 공식적으로나 학교 드라마 스토리를 풀어낼 때 등장하는 모범 학생, 모범 엄마의 주인공이다. 드라마의 제목은 '너네 엄마는 누구니?'이다. 이 아이를 만나고 학부모 상담만을 기다렸다. 보통 학부모 상담을 앞두고 대체로 비슷한 매뉴얼의 질문을 정리해 본다. 첫 번째 질문은 항상 "우리 OO 이는 가정에서는 어떤 아이인가요?"라고 물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엄마가 생각하는 아이의 어쩔 수 없는 평가적인 이야기를 들어야 엄마의 눈높이에 맞춰 상담을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해성이의 학부모 상담 질문 리스트의 첫 시작은 '도대체 어떻게 키우셨어요?'라는 질문을 지울 수 없었다. 이 질문의 답을 꼭 들어야겠다는 나의 의지가 불붙어 있었다. 그 당시 아이가 없었던 나는 미래 엄마로서 내 자식을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하늘로 치솟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만나면서 내 아이는 어떻게 키울까라는 생각들을 참 많이 했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해성이 같은 아이는 드물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말의 이면에는 걱정스러운 아이들이 더 많다는 말이다. 해성이는 나의 미래 자녀 상의 반짝 등장한 모델이었다. 아이가 있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자식은 내 마음대로 되진 않고 타고난 유전자는 나무뿌리처럼 박혀 있어서 똑같은 아이는 될 수 없지만 비실비실하게 크기보다는 단단하고 굵고 곧게는 자랄 수 있게 도와줄 수 있고 뻗어 나가는 가지가 드넓은 푸른 하늘을 향해 전진했으면 좋겠고 그 나뭇잎은 코팅된 것 같이 반짝거리며 태양을 오롯이 받기를 원한다. 나의 욕망은 지금도 유효하고 나의 모델을 생각하며 아이를 키우고 있다. 나는 해성이 학부모 상담 때 그 중요한 질문에 대한 그 대답을 들었고 그 대답은 부모 교육이나 개인적인 학부모 상담 때 마지막에 클라이맥스에서 던지는 잔잔하면서 감동적인 핵심 멘트가 되었다. 물론 이 대답은 내가 자녀를 키울 때 늘 가지고 있는 공식이 되어 버렸다.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해성이는 세상을 해탈 한 스님 같았다. 고작 2학년이다. 자그마한 체구를 가지고 이른 나이에 일반 청년들이 잘하지 않는 농사에 뜻을 품고 핵심적인 기술로 한국의 농작물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각오로 시골로 온 청년 느낌의 피부색을 가졌다. 까무잡잡한데 똑똑해 보인다는 것이다. 다부진 입과 작은 눈을 가졌는데 한 번 웃으면 바뀌는 초승달 눈은 어른인 나도 꺼벅 넘어갔다. 해성이의 아빠는 군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빡빡머리도 잘 어울린다. 아빠가 군인이라고 해서 아들이 군기가 잡혀 있거나 군인 같은 칼 걸음은 걷지 않는다. 그때 우리 학교는 군인 가정이 많았는데 군인 가족이 많은 학교는 좀 특징이 있다. 아빠의 계급이 곧 엄마의 계급이고 아빠의 계급이 우리 학교 학부모의 계급이다. 대대장이면 포스가 남다르다. 그의 아내도 옷이 좀 더 고급스럽고 우아해 보인다. 엄마들끼리도 뭔가 투명 계급장을 어깨에 달고 있는 듯하다. 학부모 상담 때 계급이 높은 엄마는 조금 더 편안하게 들어오시고 나는 조금 더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무의식적인 이 행동이 학부모 상담이 끝나고는 나도 모르는 속내를 쏟은 것마냥 다른 사람이 볼세라 빨리 주워 담고 뚜껑을 닫았다. 해성이 엄마는 중간 정도에서 조금 위였던 것 같다. 가장 높은 건 아닌데 높다고 했다. 계급에 관심은 없지만 선생님들이 던져 준 정보를 끌어다 나열해 보았다. 좀 높은 투명 계급의 해성이 엄마는 다른 엄마들과 달랐다. 늘 수수한 느낌의 단정한 긴 원피스를 입고 아무나 하지 못하는 청순의 상징 반묶음 머리를 하시고 학교에 오셨다. 그때 우리 학교는 학교 도서관을 엄마들이 돌아가면서 도서 도우미로 활동을 하셨는데 해성이 엄마가 '책 읽어주는 엄마'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점심시간 해성이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듣고 온 우리 반 아이들은 교실 문을 열자마자 나를 쳐다보면서 엄치 척을 올리며 감탄을 연발했다. 반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한 권씩 매일 재미있게 읽어주는 선생님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나는 위기의식을 느끼면 물어보았다.
"그렇게 재밌었어?"
"네!"
2초의 고민도 없이 합창하고는 모두 사라졌다. 해성이 엄마는 구연동화를 오래 하셨고 공공 기관에서 강의도 하시는 것 같았다. 자만심에 빠져 나처럼 재미있게 읽어주는 선생님은 없을 거라며 내 나름 터득한 방식으로 목 막힌 호랑이 소리는 할아버지를, 힘이 다 빠져 숨은 헉헉 대며 겨우 내는 소리로 할머니를, 입술을 동그랗게 쭉 내밀고 목에 힘을 주는 소리로 남자아이를 옆으로 입을 찢어 혀 짧은 소리로 여자아이 목소리를 흉내 내면 성우가 따로 없다며 스스로에게 감탄하며 책을 읽어주던 나에게 현실을 즉시하게 해 준 엄마였다. 해성이 엄마는 늘 차분하고 복도에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모두 인사하며 인자한 미소와 사랑을 뿜어 내셨다. 나는 가끔 오는 해성이 엄마에게 아이들의 사랑을 빼앗기지 않을까? 하고 몇 초간은두려웠다.
나는 이때쯤부터 몇 학년의 담임을 맡던 '독서 15분'이라는 똑같은 숙제를 아이들에게 매일 내주었다. 1학년이면 부모가 책을 읽어 줘야 하고 스스로 읽을 수 있으면 스스로 읽어야 하는 숙제이다. 책이 얼마나 중요한지, 독서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절실히 알기에 8년이 지난 지금도 이 숙제 낸다. 담임이 아이들에게 하는 숙제나, 활동 등은 본인이 아닌 고객님들의 평가도 무시 못할 일이다. 이 숙제를 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는 학부모님들이 있었는데 특히나 감사함을 여러 번 전달하며 학년 말 마지막 날까지 인사를 한 엄마는 해성이 엄마였다. 구연동화 선생님이신 해성이 엄마가 이 숙제에 이리도 감사할 일이 있을까. 이 숙제는 누가 봐도 독서를 하게 끔 하는 의도인데 해성이는 이 숙제가 없어도 할 아인데 말이다. 마르고 닳도록 감사함을 전달한 이유는 해성이의 읽기 독립을 이 숙제로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워낙 재미있게 읽어주시니 해성이가 스스로 읽지 않으려고 했던 모양이다. 이 숙제로 스스로 독서하며 즐기는 아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한 건 알림장을 화면에 띄우는데 1번만 지우지 않고 매일 그대로 우려먹은 밖에 없다. 나름 알림장을 채우는 나만의 비기였다. 물론, 아이들의 독서 습관을 위함은 글자의 매트릭스 속에 박혀 있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해성이 엄마는 여러모로 나에게 빛나는 존재였다.
'가족의 달' 5월을 맞이하여 가족의 고마움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도록 심성 수업을 준비했다. 교사 커뮤니티에 공유된 내용을 보고 부모의 보살핌과 사랑이 너무나 당연한 아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었다. 스토리텔링으로 시작되는데, 우르르 쾅쾅 천둥번개가 내리 치는 음악이 들린다. 나는 미간에 내천자를 깊이 그리며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이들은 마치 재난 영화의 아역 배우처럼 두려운 얼굴을 하고 평소에 결코 보지 못하는 올 정지 포즈로 빨려 들어오고 있었다. 육지에 쓰나미가 몰려와서 어쩔 수 없이 배를 타고 항해를 해야 하는데 작은 배에는 사람이든 물건이든 10개만 가지고 갈 수 있다. 이야기를 끝나는 아이들은 가지고 가고 싶은 10가지를 생각해서 종이에 적어 내려갔다. 숨소리만 겨우 들리는 교실에서 한 여자아이가 울먹이며 적어가고 있었다. 2학년 아이들은 가장 먼저 가족의 이름들을 적어갔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물건들을 그다음으로 적었다. 그 모습을 보는 나는 감정을 유지시키기 위해 계속 분위기를 잡아 나갔다. 10가지를 가지고 항해를 하다가 점점 기름이 떨어져 배의 무게를 줄여야 한다. 하나씩 버려야하는 상황이 왔다. 아이들은 물건부터 버리기 시작했고 가족을 남겨 두었다. 계속해서 하나씩 바다에 버려야 하는 상황, 아이들은 가족을 버려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만 남겨 두어야 한다. 가족을 한 명씩 버릴 때마다 아이들의 숨소리는 거칠어졌다. 드디어 남은 한 장, 아이들에게 마지막 남은 한 장을 밝힐 때가 왔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남은 한 장을 발표하고 그 이유를 말하게 하였다. 역사적으로 가장 몰입도가 강한 수업이라 교사인 나를 소름 돋게 하는 대답이 나올 거라 기대했다. 기대는 기대 일 뿐, 아이들은 아이들이었다. 모두 '엄마'라 적었고 그 이유는 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키워 주셔서요'라고 백 점 만점의 대답의 했다. 그나마 창의적인 아이는 '먹여 주셔서요', 좀 더 깊이 있는 대답은 '입혀 주셔서요'였다. 하지만 해성이의 대답은 이 날 이후 나의 제자 역사에 기리기리 남을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선생님 저는 동생을 남겨 두려고요.”
나와 다른 아이들은 모두 놀라는 표정이었다. 동생이 좋아해서 그런 대답을 했나 싶었다.
“동생은 수영을 못해서요. 엄마와 아빠는 어른이니까 수영을 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거 같아요.”
내가 생각하기에 해성이의 대답은 너무나 기특했다. 모두를 구할 수 없으니, 사랑하는 가족을 살릴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을 선택했던 것이다. 이 수업 이후 해성이는 더 빛나 보였다.
2학년은 눈치 없고 자기중심적인 1학년에서 갓 탈피한 병아리 중에서 우두머리다. 하루에 수도 없이 일어나는 투닥 다툼에서 눈이 뒤집히는 싸움까지 화려하게 폭죽이 터지는 교실에서 해성이의 태도는 늘 돋보였다. 다른 친구 둘이서 ‘네가 먼저 했잖아!’하며 레퍼토리를 반복할 때 해성이는 조용히 듣고 있다가 차분이 이야기했다.
“둘 다 속상할 수 있어. 하지만 서로 잘못했다고 우기는 건 화만 날 뿐이야.”
친구들에 다툼에 잘 끼어들지는 않는 편이지만 가끔 이렇게 중재자로 나서기도 한다. 이때 해성이의 표정은 정말 대단하다. 친구들을 귀엽다는 듯이 쳐다본다. 그리고는 나와 눈이 마주치면 반달모양의 눈웃음으로 ‘참 귀엽죠?’하는 느낌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래서 1년 내내 해성이는 친구들과 다툼이 없었다. 아직 눈치 없는 병아리라도 건드려도 되는 친구인지 아닌지에 대한 눈치는 백 단이다. 그런 해성이는 난 예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아이들을 차별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내게 온 확률은 로또의 확률보다도 낮다. 그 로또를 뚫고 와서 나라는 ‘우리 선생님’이라고 사랑을 표현해 주는 아이들이 어찌 예쁘지 않을 수 있겠나. 아이들은 저마다의 살아온 환경과 타고난 성향으로 규칙이라는 높고도 낮은 벽에 부딪히며 머릿속에 흐트러져 있는 성운들을 모아 삶을 나름의 방식대로 정의해서 살아가고 있다. 이 힘든 일들을 어찌 됐든 해나가고 있으니 얼마나 기특한가. 해성이는 그중에 한 아이면서 늘 차분하고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하며 미소를 잃지 않는 아이이다. 이런 아이는 어떤 환경과 부모 안에서 자랐는지 궁금했다.
학부모 상담 주간이 되고 내 스케줄 표에는 곳곳에 아이들의 이름과 시간이 적혀 있다. 상담이 잡혀 있는 아이의 하루는 특별히 더 관찰한다. 해성이가 잡혀 있는 날, 나는 해성이를 더 살폈다. 여전히 훌륭했다. 해성이 엄마가 오면 꼭 물어봐야지! 했던 딱 하나의 문장 ‘어떻게 키우셨어요?’ 이 답을 꼭 듣고 말겠다. 해성이 엄마가 교실에 들어와 앉자마자 나는 마구 흔들어 놓았던 콜라병의 뚜껑이 탁! 터지면서 쌓아둔 칭찬이라는 이산화탄소를 폭발시켰다. 해성이 엄마는 겸손의 반응으로 과하지도 않게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며 오히려 나의 공으로 돌렸다. 그런 해성이 엄마 얼굴에서 해성이가 떠올랐다. 드디어 내가 하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 해성이 엄마는 특별한 건 없다만 했다. 안된다! 나는 꼭 그 비책을 들어야 했다. 나는 듣고 싶은 말을 듣기 위해 해성이 엄마를 계속 꼬셨다. 해성이 엄마는 마지못해 그 해답을 들려주었다.
”저는 항상 아이들 뒤에 있으려고 노력해요. 앞에서 이끌지 않고요.”
정말 이 말만 들을 수 있었다. 김빠지는 말이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대답이 고작, 육아서에 나와 있는 누구나 다 아는 말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아이들을 미숙하다 여기고 늘 앞장 서서 진두지휘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가장 못하는 것은 해성이 엄마는 원칙처럼 지키며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엄마라는 사람들은 그 원칙을 지키는 일이 세상 무엇보다 힘든데 말이다.
이 후, 수업시간에 우리 엄마, 아빠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해성이는 엄마를 이렇게 소개했다. “우리 엄마는 늘 친절하세요.” 이 말을 곱씹어 보면 정말 듣기 힘든 말이다. 나는 우리 딸에게 매일 친절하게 대해 주고도 한 번 야단치면 '우리 엄마는 화를 잘 내.'하고 말하는 것 보면 말이다. 얼마나 친절해야 자식에게 저런 말을 들을 수 있을까. 해성이의 이 말과 해성이 엄마의 대답이 머릿속에 교차되면서 더 이상의 해성이 양육 방법에 대한 대답은 필요하지 않았다.
지금 엄마가 된 나는, 아이가 크면 저런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자신이 없다. 언제나 아이를 끌고 다니고, 아이의 마음을 공감하기 보다는 내 속부터 풀어야 했다. 아직 나의 아이는 어리기에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