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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교윤 Sep 12. 2024

고집쟁이, 수다쟁이

2학년 새 학기 첫날, 정장을 잘 차려입은 키 작은 남자아이가 앉아 있었다. 머리는 빠글빠글, 뭘 발랐는지 광이 났다. 엄마가 신경을 많이 써 주신 듯했다. 이 남자아이는 첫날부터 눈에 들어왔다. 옷을 멋지게 입고 와서가 아니라,  말이 너무 많아서였다. 첫날에는 조금 서먹하기도 하고 모두 탐색하느라 조용한데 윤이는 그렇지 않았다. 첫날이라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아이들과 종이접기를 했다. 모두 묵묵히 종이접기는 하는데 윤이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선생님, 저는 종이접기를 정말 싫어해요. 엄마가 어릴 때부터 종이접기를 시켜서 지금은 책 보고 다 만들 수 있어요. 공룡, 곤충, 물고기,,, 어려운 것도 다 접어요. 지금 접는 것도 예전에 해봤어요. 그런데 선생님, 공룡 접을 줄 아세요? 그거 진짜 어려워요. 한 시간은 걸려요."

당황했다. 엄연한 수업 시간인데 나와 둘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23명의 아이들은 윤이의 사생활을 수업 중에 듣고 있어야 했다. 보통은 선생님에게 이렇게 많은 자신의 과거사까지 줄줄 이야기하진 않는다. 수업시간에 모두가 조용히 집중하고 있는데 혼자 계속 말을 하는 건 안 되지만 한편으로 자유롭고 허용적이며 활발한 분위기의 수업이 될 수도 있다. 그 이야기가 종이 접기에 관련된 것이니까. 하지만 수업 시간 윤이의 자유분방한 말들은 조금 걱정이 되었다.



윤이는 다음날, 그다음 날도 하루에 두 번 이상씩은 쉬는 시간에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침에 먹은 반찬이 어제 먹은 반찬이랑 같아서 맛이 없었다는 이야기, 아침에 세수를 하는데 비누를 쓰지 않아서 엄마한테 혼났다는 이야기처럼 굳이 내가 알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들을 열심히 해주었다. 나는 윤이의 이야기를 웃으며 경청했다. 아이가 신이 나서 하는 이야기를 건정으로 듣고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기가 빨리고 있었나 보다. 윤이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는 수업을 하는데 힘이 좀 들었다. 쉬는 시간은 말 그대로 쉬는 시간이어야 했다. 나는 잠시 도망 나와 교사 연구실로 향했다. 잠시 만나는 동료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면 에너지가 다시 충전되었다. 윤이에게 '굳이 그런 말은 안 해도 된단다.' 하는 말은 절대 하면 안 되니, 도저히 안 되겠으면 피신이라도 와야 한다.



나는 야심 차게 수업 준비를 하고 아이들도 나도 열심히 마무리했다. 이런 날은 습관처럼 아이들에게 물어본다. 내게는 보상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분, 이번 시간 재밌었지요?"

"네." 하고 모두 합창하듯이 대답한다. 그 속에는 재미없었지만 선생님의 기분을 맞춰주려고 그냥 대답 한 친구도 있을 것이고 정말 너무 재밌었던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이때 불협화음이 발생했다. "지겨웠어요." 윤이가 큰소리로 대답했다. 윤이가 솔직하게 자신의 속을 다 말해야 하는 성격임을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윤이가 눈치가 없어 서기보다는 자신은 정말 지겨웠다는 표현이었다. 윤이의 이런 솔직함은 아이들의 속을 알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하지만 모두가 "네!"하고 대답을 함으로써 조금 재미가 없어도 힘들어도 조금 더 긍정적인 부분에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기에 분위기를 따라가는 것도 필요하다. 윤이를 불렀다.

"윤아, 수업 시간이 지겨웠어요? 그래, 솔직한 건 좋아. 하지만 친구들이 모두 재미있다고 할 때 굳이 아니라고 말할 필요는 없어. 선생님도 열심히 준비했는데 윤이가 그런 말하면 조금 속상할 수도 있잖아."

윤이는 바로 알아듣고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선생님, 재밌어요."라는 말을 자주 했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일 수도 있지만 워낙 솔직하게 모두 이야기하는 스타일이라 그대로 받아 들다.



점심시간, 운동장에서 우리 반 친구들이 싸우고 있다고 해서 달려 나갔다. 윤이와 민준이었다. 윤이는 힝 힝 거리며 울고 있었고 민준이는 얼굴이 발개져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윤이가 민준이랑 점심 먹고 난 후 공놀이를 하기로 했는데 민준이가 그걸 잊어버리고 놀이터에서 도둑 잡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윤이가 공놀이를 하자고 하니 민준이가 하기 싫다고 해서 윤이가 울고 있었다는 것이다. 윤이가 속상할 만하다. 하지만 아이들의 관계에서 보면 이번 일은 울만한 사건은 못 된다. 이 정도는 아이들끼리 서로 해결하거나 서로 삐지고 나고 나중에 다시 친해지는 경우들이 많다. 윤이라서 울고 있었고 아이들은 울고 있으니, 선생님에게 알린 것이었다. 윤이는 이렇게 자주 운다. 조금이라도 억울하거나 자기가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하면 보란 듯이 운다. 이런 아이를 보면 집에서 많이 혼이 났나, 아이의 감정을 부모가 잘 받아주지 못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럴 때는 윤이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알려드린다. 그러면 윤이 엄마는 화통게 이 야게 한다. "또 울었어요? 으이구  이 놈 자식! 선생님 혼 좀 내주세요." 나는 윤이 엄마랑 통화하면 편안하고 유쾌하다. 이런 윤이 엄마에게 윤이에 대해 포장하지 않고 그대로 알려드렸다.



토요일 오전, 나는 4살 내 딸을 데리고 소아과에 갔다. 독감이 유행이라 소아과는 사람들도 많고 대기도 길었다. 갑자기 주사실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처음에는 싸움이 났나 싶었다. 가만 들어보니 아이에게 엄마가 소리 지르는 것이었다. "가만히, 좀! 앉아라!"라는 말 같았는데 사실 무슨 말인지 모를 정도의 고함이었다. 나는 아무리 그래도 아이에게 이렇게 소리를 지르는 엄마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잠시 뒤, 주사실에서 아이와 엄마가 나왔다. 윤이와 윤이 엄마였다. 윤이는 울고 있었고 윤이 엄마는 한숨을 쉬며 이마의 땀을 닦고 있었다. 윤이 엄마와 나는 눈이 마주쳤고 인사를 나누었다. 담임 선생님이 있는 줄 모르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 엄마가 당황할까 봐 나는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우리 윤이 왜 울었어?"

"주사를 하도 안 맞으려고 해서, 겨우 맞았네요."

윤이 엄마는 큰 일을 치른 듯한 느낌이었다. 독감 예방 주사 하나 맞는데 아이도 엄마도 이렇게 힘들다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학부모 상담에서 이야기했던 윤이의 고집이 어떤 건지 알 수 있었다.



교실에서 윤이가 바닥에 주저앉아 또 힝힝 울고 있었다. 윤이의 울음은 나 좀 봐달라는 느낌이다. 일주일에 두 번은 운다. 자주 운다는 것은 자기 마음을 몰라 준다는 마음이 큰 것이다. 이렇게 울 때, 상대 친구는 그 자리를 뜨거나 별일 아니라는 듯하다.

"윤이야, 무슨 일이야?"

"유진이가 제 옷을 당겼어요. 그런데 너무 세게 당겨서 제가 넘어질 뻔했어요."

윤이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이 울만한 정도의 이유를 설명하였다. 지금까지 '뭐, 그것 가지고 울어!' 하는 소리를 많이 들었던 것 같았다. 그런 윤이에게 '그럴 수도 있지.', '울 것 까지야.'라는 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공감부터 해주었다.

"많이 놀랐겠네."

"그런데도 사과를 안 했어요."

윤이는 사과를 받아야 했다. 사과하지 않으면 2년 전일까지 모두 끌어와서 자신의 힘들었던 과거를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 친구에게 "불편하게 했으니 사과하자."라는 말은 시키고 싶지 않았다. 유진이도 세게 당긴 것이 아니라 서로 장난치다 보니 그렇게 된 거라고 했다.

"윤이도 유진이도 조심히 놀자."

하고 돌려보냈다. 아이들 다툼을 해결해 주는 것이 참 어렵다. '나 전달법', '비폭력대화법' 등을 공부해서 아이들이 상대방의 행동을 지적하고 비난하지 않고 내 마음을 표현하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게 해 줘야 한다. 하지만 실전은 정말 어렵다. 더욱 저학년은 자신의 감정이 더 중요하기에 쉽지 않다. 아무튼 일주일에 몇 번 윤이의 울음으로 나는 항상 난감했다.



 2학기쯤에는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쯤으로 울음이 줄고 학기 말에는 한 달에 한 번으로 그런 행동을 거의 사라졌다. 윤이도 컸나 보다.  윤이는 말이 많고 고집이 세다는 것 외에 다른 특별한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말이 많은 것은 상황에 따라 가려 말하는 방법을 배우면 되고 고집이 세다는 것은 커가면서 조절될 수 있는 일이고 그것을 꺾기보다는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우선이었다.



우리는 아이가 학교에 가서 친구와 잘 지내고 선생님께 칭찬받고 별일 없이 잘 지냈으면 한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4살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2시쯤 알림장이 온다. 알림장에 누구와 다투었다거나, 블록을 던졌다거나 하는 글이 적혀 있으면 신경이 쓰인다. 하원할 때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아이의 행동에 대한 걱정과 선생님께 죄송함을 표현한다. 선생님은 늘 괜찮다면 아이들 다 그렇게 크는 거라며 안심시킨다. 맞는 말이지만, 나는 며칠 신경이 쓰인다. 선생님 눈에 나는 참 예민한 엄마로 느껴질 것 같았다. 이런 일이 있을 때 나는 윤이 엄마가 생각난다. 윤이 엄마는 윤이가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걱정보다는 '이놈 자식!' 하며 나와 같은 편이 되어 이야기한다. 같은 편이라는 것은 윤이의 성장을 함께 기다리고 응원하는 동지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은 우리 아이를 가르치고 평가하는 선생님이고 내 자식은 내가 챙긴다는 자세였던 것 같다. 윤이 엄마처럼 아이에 대해 담임과 어떤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화통한 성격과 선생님께 잘 보이기보다는 선생님을 믿어주는 마음이 아이를 성장시키는데 더 도움이 되었다. 그런 엄마와 윤이기에 담임인 나도 윤이의 행동에 당황하거나 멀리하지 않고 가까이 더 보려 하고 윤이의 행동을 억지로 고치기보다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여유를 가지고 도와줄 수 있었다.



윤이 엄마처럼 '이놈 시끼! 혼내주세요.'라는 담임 선생님께 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건 윤이 엄마의 성격인 거다. 선생님이 있는 학교란 곳이 우리 아이를 평가하는 곳이라 생각하지 말고 아이들의 성장 기회, 자라는 곳으로 여기며 미숙한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 쓰기보다는 그곳에는 부딪히고 경험하는 일속에 아이가 또 한 단계 자랄 수 있게 응원하자는 것이다. 담임은 엄마와 같다.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고 응원해 줄 사람이다. 어떤 담임을 만나더라도 담임과 내가 한 팀으로 만들어 아이에 대해서 만큼을 솔직하고 허심탄애 하게 이야기 나누어보자. 아이의 걱정이 반으로 줄고 엄마도 여유가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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