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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교윤 Sep 16. 2024

비상한 두뇌를 가졌어.

우리 학년은 1학년이고 1층 중앙에 위치한다. 다시 말해, 강남 사거리 모퉁이에 있는 상점쯤 되어 유동 학생과 교사 수가 가장 많은 곳이다. 그리고 한 학년에 한 반 밖에 없는 6 학급의 작은 학교라  교실에서 무슨 일이 터지면 온 학교가 들썩인다. 어느 날 갑자기 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엉엉” 세상 서러운 목소리로 발 끝에 있는 털까지 에너지를 끌어모아 온 힘과 정성을 다해 운다. 이 울음소리가 교실에서 들리면 전교생이 “또 운다.”라며 별일 아니라는 듯이 지나다닌다. 울음소리가 잠잠해질 때쯤, 학년 말에 나는 휴직을 결정했다.



3월 아이들을 만나는 첫날은 입학식이다. 입학식은 학교의 큰 행사다. 학부모도 아이도 1학년 담임도 모두에게 중요한 날이다. 입학식을 하던 중 신입생 남자아이가 손을 번쩍 들어 질문이 있다고 했다. 학부모, 교사, 신입생 모두 그 아이를 쳐다보았다. 그래놓고는 아니라며 수줍게 팔을 내렸다. 입학식 후 교실로 이동하여 학급에서 준비한 오리엔테이션을 하였는데 이때도 똑같은 행동을 하였다. 이 날은 아이 하나가 장난 반정도의 강도와 아직 유치원생의 유아 티를 벗지 않았기에 그럴 수 있다며 별 생각이 없었다.



입학식이라는 큰 행사 다음 날은 늘 그랬다는 것처럼 신입생도 여느 초등학생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등교한다. 덩치가 작을 뿐이다. 신입생이면 8시 20분쯤 단합이라도 한 듯이 여유 있게 온다. 7시 20분쯤 아직 못다 한 준비를 바쁘게 하고 있는데 교실 창문 밖으로 한 아이가 쓱 지나갔다. ‘몇 학년이야. 일찍도 오네.’하며 일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교실에 미닫이문이 덜컹거렸다. 쫓아 나가보니 우리 반 아이가 벌써 등교를 한 것이다. '벌써 온 거야? 아직 준비도  안 끝나는데' 당황함은 쥐도 새도 모르게 감추고 온 얼굴에 주름 가득하게 웃으며 환영했다. 엄마가 일찍 보냈다며 들어온 아이는 티셔츠 단추도 제대로 잠그지 않고 있었다. 괜히 마음이 쓰였다. 아이가 어색하지 않도록 대화를 이어갔다.

“이름이 뭐니?”

“이유온이요.”

명단을 찾아보니 중간쯤 위치해 있었다.

“아, 네가 유온이구나! 이름이 참 예뻐서 기억하고 있었지.”하며 반겨 주었다. 사실 명단 가지고는 ‘예뻐서’ 보다는 이름에서 풍기는 아이의 활발함의 정도를 추측하는 정도이다. 유온이는 하얀 얼굴에 갸름한 턱 긴 눈매에 웨이브가 진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 아이다. 자기는 선생님을 잘 도와준다며 나에게 자랑하였다. 나는 놀라며 엄지 척 두 개를 뿅뿅 날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 아이가 바로 입학식날 손을 번쩍 들었던 아이였다. 많은 사연들이 있었지만 유온이는 정말로 1학년 답지 않게 선생님의 일을 잘 도와주었다.



입학식에서 받았던 꽃의 끝이 갈색으로 변하면서 꼬부라질 때쯤, 쉬는 시간, 그 곡소리가 처음 울려 퍼졌다. 바로 유온이다. 팔을 부여잡고, 허리를 반쯤 구부린 후 곧 쓰러질 듯 몸뚱이를 겨우 세우고 있는 듯한 자세로 우는 소리를 냈다. 주변인들은 ‘뭐지?’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상황 파악을 해보니 지나가던 아이가 자기를 때렸다고 한다. 한 아이가 크기가 큰 그림책 3권을 옆으로 안고 걸어가는데 그 모서리에 유온이가 부딪힌 모양이었다. 실수로 의도치 않게 피해를 준 아이도 놀랐든 듯 궁금한 듯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놀란 것은 자신의 실수 때문이고 궁금한 것은 '어디에 부딪힌 거지?'이며 어이없다는 것은 '왜 그렇게 까지 우는 거야.'일 것이다. 그 흔한 ‘피해 의식’이라는 대중적인 표현의 어린이 버전 느낌이었다. 이런 경우는 난감하다. 지나가던 아이가 잘못한 게 아니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엉엉' 울 정도의 상황이라면 '몰랐어. 미안해!'라는 사과는 해야 한다. 우리 어른도 모르는 사람과 실수로 부딪히면 서로 '죄송합니다.'라는 인사는 한다. 먼저 인사하면 내가 더 친절한 사람이 된마냥, 은근 기분이 좋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실수도 상대방에게 피해가 갔다면 사과해야 하는 거야!'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상대방이 책에 스친 것이 아니라 풀스윙으로 책의 모서리로 상대방을 내리 친 것 같은 반응을 보인다면 미안함은 마그마에 녹아버리고 머리 위에서는 화산 폭발이 일어날 것이다. 아마도 실수한 그 아이 하루종일 분할 수도 있었다. 유온이의 이런 모습은 다른 배경과 등장인물 속에서 여러 번 볼 수 있었다.



사실 유온이의 강한 존재감은 쉬는 시간, 점심시간과 같은 그래도 좀 공간 밀도가 낮은 곳이 아닌, 수업 중 담임 선생님 옆에서 반 아이들 모두가 집중이 된 그 순간 강력하게 드러난다. 1학년 수업의 꽃, 한글 수업 중에 일어난 일이다. 놀이로 글자를 익힌 후, 쓰기 연습 시간이었다. 연한 회색으로 적혀 있는 모음 위에 따라 적는 것이다. 연필을 잡은 작은 손가락이 붉은 핏기가 사라질 정도로 힘을 주어 잡고는 연필심이 부러질 듯 글씨를 써 내려가는 아이들이다. 숨죽이고 쓰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흐뭇했다. 먼저 교실이 조용하다. 모든 아이들이 집중한다. 그래, 나도 행복하고 아이들에게도 도움 되는 수업이야. 오랜만에 평화로움을 만끽하고 있을 무렵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세로가 안 써져요."

유온이의 말에 가까이 다가가 손을 잡고 같이 써 주었다. 몇 번 연습 후 혼자 해보게 하였다.

"선생님, 이거 왜 해야 해요?"

'다른 애들은 다 하는데 너는 왜 그래?'라는 말은 내 저면의 생각일 뿐,

"유온아, 쓰기가 힘드니?"

"네."

유온이는 스스로 해보고 잘 안되면 참지 못한다. 다른 아이들 앞에서 그만 써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천천히, 조금만 더 해보자."

"잘 안된다니까요!"

나는 유온이의 말을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도 하기 싫고 힘들다 느껴질 때마다 못하겠다 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유온이는 '그만해도 좋아.'라는 내 말을 들어야 했다. 이제는 앞에 나와 내 책상 앞에 붙어서 떼를 쓰기 시작했다. 그것도 수업 중에 말이다. 나는 자리로 들어가라는 말만 했다. 여기서 공감과 다독임은 유온이에게 독이 될 것 같았다. 그때부터 유온이는 쉬는 시간 종이 울릴 때까지 내 앞에서 떼를 썼고 이후 부모님께 연락한다며 내가 핸드폰을 들었을 때는 유온이는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기 시작했다. 강남 사거리 모퉁이 상점이라 시내 모든 사람들이 우리 교실로 몰려들었다. 누가 봐도 내가 유온이를 심하게 혼을 냈을 것 같은 상황이었다. 이후에도 자신이 납득이 안 되는 상황이나 잘 안 되는 것이 있으면 수업 시간 중에도 불쑥 앞으로 나에게 따져 물으며 떼를 썼다. 쉬는 시간까지 이어지고 결국은 주저앉은 울음까지 나와야 했다. 결국은 내 입에서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들어야 울음과 떼는 종결되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눈 아래가 움푹 파여서 눈밑 지방 재배치 수술을 해야 하나 고민을 했고 내 어깨는 앞으로 굽어 필라테스 등록을 결심하게 된다. 동료 선생님들은 "또 유온이구나!"라는 위로의 말을 던져 주셨고 나는 그 말조차도 받아먹을 힘도 없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부모님께 유온이의 학교 생활에 대해 상세히 알려 드렸다. 유온이 엄마도 무슨 행동인지 알 것 같다며 죄송하다는 말을 전했다. 사실 죄송하다는 말을 들으려고 알려드린 것이 아니었다. 이쯤 되면 교사와 부모의 능력 밖의 일일 수도 있다. 해결되지 않고 반복되는 행동으로 반 전체가 힘들어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1학기 말쯤 유온이 엄마는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을 먼저 말씀하셨고 나는 동의했다. 교사가 먼저 병원을 추천하는 일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그 후폭풍의 사례들을 많이 봐 왔기 때문이다. 나도 안다. 엄마의 마음이 병원의 문턱까지 가기가 쉬울까. 조금만 더 노력해 보면 좋아지지 않을까. 요즘은 많이 나아졌는데 하는 생각으로 최대한 해결해 보고 병원은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한다. 유온이는 1학년이 끝날 무렵에 약을 먹기 시작했고 약으로 조절된 유온이는 떼와 울음으로 에너지를 다 쓰느라 꺼내 보지 않았던 숨은 능력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우리 교실은 1학년인데 4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주 똘똘한 남학생이 한 명이 중간에 딱 앉아 있었다. 유온이다. 수업 시간 내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손을 1초 만에 든다. 안 시킬 수가 없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모두 기똥 찼다. 아는 것도 많았고 창의적이기까지 했다. 1학년 남자아이들의 최애 놀이는 종이 접기이다. 공룡을 접고 오리고 붙여 만들면 꼭 다리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점심시간 놀이터에서 모래 놀이를 하면 스토리가 있는 왕국을 건설한다. 수학 시간에도 기계적인 문제 풀이보다는 원리를 알아차리고 발표한다. 심지어 아이들의 흔한 다툼에서 논리적인 양쪽 변호인을 번갈아 하기도 했다. 1학년 답지 않은 두뇌와 지식과 이성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이렇게 완벽할 수가. 입학식날 손을 번쩍번쩍 들었을 때일이 생각났다. 궁금한 것, 하고 싶은 말이 머릿속에 폭죽 터지듯 하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입학식이니 몇 번을 조심시켰으니 앞으로 뛰쳐나오지는 않았던 것이다. 담임 선생님의 심부름도 고학년 형아들처럼 믿음직스럽게 해냈다. 똘똘한 온유는 한결 같이 훌륭했지만 가끔은 예전 행동이 나오기도 했다. 아이들이 그렇지 뭐. 갑자기 확 변하나.라고 생각하는 날은 약을 먹지 않은 날이다. 이렇게 정확할 수가. 이런 날에는 또 오후 돌봄 선생님이 씩씩 대며 교실로 찾아온다.

"유온이 오늘 약 안 먹었지! 아이고, 울고 불고 난리다. 힘들어 죽겠다."

그나마 다행이다. 약을 먹은 날과 안 먹은 날의 차이가 확실하니, 이유는 알고 있으니 말이다.



1학년 2학기를 한 달쯤 남겨두고 나는 살만했다. 동료 선생님들은 "다 키워놓고 살만하니 학년 말이네." 보통은 5월쯤 되면 아이들 파악도 끝나고 적응기간이 끝나면 교사도 아이도 좀 여유가 생기고 편해지는데 이번 학년은 아니었다. 학년 말쯤 나는 남겨 놓았던 육아 휴직을 하기로 결심한 걸 보면 그 한 달은 지나간 여러 달 동안 차곡히 쌓인 나의 섞은 속을 회복하기는 짧은 시간이었나 보다. 그 울음과 떼는 1년 내내 나를 무능력하게 만들었고 나도 알 수 없었던 고통이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쌓여만 갔다.



피부가 하얗고 웃으면 초승달 두 개가 뜨는 유온이는 잘 생겼다. 운동도 잘하고 똑똑하고 머리도 좋다. 선생님에게 칭찬만 받으며 1년을 보낼 수도 있었다. 부모의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빠른 시간에 적극적인 처방만 있었다면 말이다. 1년 거의 모든 시간을 유온이 와 나의 대치 상황에서 서로 힘만 뺀 것 같았다. 하지만 약을 먹지 않은 유온이도 유온이 자신이기에 내가 안고 가야 하는 것이다. 지금도 나는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영역 밖의 일이라고 단정 짓지는 않는다.



요즘은 유온이 같은 아이들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조금만 병원의 도움을 받으면 자신의 능력을 보통의 아이들보다 더 발휘할 수 있다. 오히려 더 호기심이 많고 좋아하는 일에 더 집중력을 발휘하여 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 부모가 해줘야 하는 일은 교차로에 있는 횡단보도 동시 신호를 지켜 아이들이 안에서 만큼은 안전하고 편안하게 길을 건널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이다. 아이가 교차로를 불안하게 건너고 있다며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 이것도 아이를 사랑하는 길이니 조금만 용기를 가져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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