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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부재, 진실은 누가 지키나?

침묵하는 지식인, 잃어버린 비판 정신

by 찡따맨


오늘날의 지식인은?


지식인은 어떤 존재일까? 지식인은 지식이 넘치는 자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지식인은 지식을 바탕으로 현실을 비판하고 권력을 감시하는 존재다. 지식인의 펜은 정부와 권력 집단이 내세우는 명분의 허구를 폭로하고, 정책의 진짜 동기와 결과를 분석하여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오늘날 지식인들의 역할은 다소 달라진 것 같다. 어찌 된 일인지 총보다 강한 펜을 내려놓고, 거대 권력의 눈치를 보거나 자본의 흐름을 따라다니기 바쁘다. 거대 권력과 자본을 향해 달콤하게 속삭여주며 자리를 보전할 뿐이다. 전문가라는 우아한 타이틀을 앞세우며, 시대의 거울이 되어야 할 자신들의 역할을 회피하는 건 아닐까. 물론 이해할 수 있다. 회피하는 길은 생각보다 쉽기 때문이다. 사려 깊은 판단보다 반사적인 순응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마치 홍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부유물처럼, 어떤 방향성도 저항도 없다. 윤리적으로나 지적으로 도전할 필요 없이 커다란 흐름을 따라가기만 하면 충분하다.


미국의 노예제 폐지론자였던 시어도어 파커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의 세계는 긴 궤적을 그리지만, 결국 정의를 향해 구부러진다."


그런데 도덕이라는 긴 궤적이 저절로 구부러지는 건 아니다. 도덕이 그리고 있는 긴 궤적이 정의를 향해 자연스럽게 굽어지는 게 아니다. 지식인이 우리 사회 그리고 자신 안에 있는 모순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할 수 있는 용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의지를 품고 노력할 때에야 구부러지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의 지식인은 묘하다. 도덕이라는 긴 궤적을 구부러트리는 용감한 대장장이 모습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황금 접시를 문질러 먼지만 털어내는 하인으로 전락했다. 어느 지식인은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럼에도 공영방송에 나와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개진한다. 어쩌면 지금 이 시대는 지식인이란 어떤 존재인지 모르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원치 않는 것일 지도 모른다.



지식인의 부재, 거짓이 진실을 대체한다


지식인이 부재한 사회는 사실 검증이 부실한 정보와 자극적인 담론에 쉽게 노출된다. 과거의 지식인은 권력의 횡포와 미디어의 왜곡을 경계하며 이를 바로잡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일부 보수 지식인들은 2024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의 작품을 정치적 프로파간다라는 이유로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렇다면 노벨평화상도 같은 맥락으로 비판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일본의 원폭 피해자 단체인 히바쿠사는 2024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에서 가해국으로 침략 전쟁을 수행했고, 전쟁 중 한국과 중국,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인권 유린과 전쟁 범죄를 자행한 역사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원폭 피해자를 자처하여 국제 사회에서 동정심을 불러일으켜 가해자로서의 책임보다 피해자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프로파간다를 펼쳐왔다. 이번 2024년 노벨 평화상을 통해 전쟁의 전체적인 맥락이 희석되고 원폭 투하의 원인과 배경보다 일본의 피해만이 부각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보수 지식인의 주장에 의하면 2024 노벨 평화상 또한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가까운데, 왜 노벨 문학상만 비판하고 노벨평화상은 침묵할까. 결국 그들이 비판해야 할 것은 노벨상 수상자가 아니라, 노벨상의 수상 기준. 공정성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탈사실의 시대'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가짜 뉴스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과거에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것이 개인의 몫이었다면 이제는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세력들이 인공지능과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하여 조작된 영상을 만들고 짧은 시간 내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확산시키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는 인공지능 기술이 우리를 더욱 지적이고 더 정확한 정보에 이끌어줄 거라 기대하지만, 현실에서는 허위의 창조물에 더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딥페이크 영상 한 편이면 누구든지 범죄자가 될 수 있으며, 날조된 연설 하나로 정치적인 판단이 한순간에 뒤바뀌기 마련이다. 이러한 날조를 포착하고 반발하려면 전문적인 검증이 필요한데, 문제는 이 과정에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든다. 그래서 언론은 조용히 뒷짐만 지고 있을 뿐이다.



진실된 지식인의 목소리를 바라는 건 시대착오적인 생각일 지도 모른다. 요즈음의 지식인은 자본과 정치적 보호막 없이는 살아남기 어려우며,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순간 대중의 조롱과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니 사명감을 품고 무작정 희생하라 할 수 없지 않나. 어떤 지식인은 스스로를 '어용 지식인'이라고 당당히 소개하고, 연구소 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하고, 국내 이슈를 외면하고 세계정세만 다루는 모습을 보인다. 이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게 아닌가? 어쩌면 지식인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지금 지식인의 역할과 불만을 털어놓는 이유는, 더 나은 지식인을 보고 싶다는 염원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아닌 우리 사회가 원하는 지식인은 어떤 모습일까? 자신의 입맛에 맞는 말만 해주는 지식인인가, 아니면 불편한 진실도 외면하지 않는 지식인일까.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 독재자는 사실을 극도로 경멸한다."라고 말했다. 독재자에게 사실이란 객관적 진실이 아닌, 그것을 만들어낼 힘을 가진 자가 결정하는 것이다. 이는 복잡하고 불확실한 세계에서 구체적인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강한 설득력을 발휘한다. 그렇게 독재자는 대중이 눈에 보이는 현실조차 믿지 않도록 유도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이미 믿고 있는 세계관과 논리가 유지되는가 하는 것이다. 대중은 논리적으로 완결된 체계를 더 신뢰하며, 그 과정에서 진실이 왜곡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긴다.


검증되지 않은 자극적인 음모론이 쏟아지는 요즘, 지식인의 역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하고,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여, 대중이 사실에 닿을 수 있도록 이끄는 것. 만약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이 된다면 현재 우리 사회는 진실과 점점 멀어지는 중일 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게 우리 90년대생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이 글을 쓴 이유]

이렇게 나름 진지한 척을 해야, 내일 섹스 섹스를 외쳐도 사람들이 이해해 줌 ㅜㅠㅠ푸ㅠㅜㅜㅠㅠㅜㅠㅜㅠㅜㅠㅜㅠㅜ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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