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뺄셈법칙: 내려놓기와 틈새 만들기 -
뺄셈법칙은 몸집을 가볍게 하기 위해 다이어트(diet)하는 '내려놓기' 단계이다. 내려놓기 대상은 나잇살이 덕지덕지 붙듯이 시간이 흐를수록 상대적으로 많아진다. 집 안 곳곳에는 사용하지 않는 골동품이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하고, 마음 한편에는 아쉬움과 찝찝함이 떠날 줄 모르고 또아리를 틀고 있고, 냉장고에는 유효기간이 지난 식재료가 눈에 띄기도 한다. 모두 버려야 한다. 그래야 공간이 생긴다. 시간은 그 공간을 메우려고 안간힘을 쓴다. 가능한 새로운 것으로 채워져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버려야 할 시간이 다소 길어진다. 또 공간이 다 채워지면 버리고 또 채우고 하는 과정이 반복되는 것이 우리 삶의 한 단면이 아닐까 싶다.
나이가 들면 흔히 내려놓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무엇을 내려놓으라는 걸까? 내려놓기는 변화를 의미한다. 말 그대로 버리라는 의미보다 주변 변화를 인정하고 트렌드에 적합하도록 자신을 변모시켜야 한다는 것을 얘기한다. 새뮤얼 아브스만은 '지식의 반감기'에서 지식에도 유효기간이 있다고 설파한다. 흔히 유효기간은 상하기 쉬운 음식물에만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지식에도 꼬리표가 있다는 것에 고개를 까우뚱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은 그 유효기간을 아주 빠르게 단축시키고 있다. 인생백세시대에 '평생교육(lifelong learning)'이 강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평생취업을 위해서 말이다.
어제까지는 맞았지만 오늘은 틀렸다고 문제가 되는 세상이 21세기이다. 오죽하면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법으로 제정되었을까? 2000년대 이전에는 관습적으로 허용되었던 것이 이제는 법적 저촉이 되어 제재를 받게 된다. 어제까지는 '뭘 아는데'의 지식이 사회적 경쟁 우위 척도였다면, AI가 지식을 담당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뭘 해 봤는데'의 경험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지식은 큰 의미가 없다. 배움의 이력인 '학력(學歷)'이 배움에 경험을 덧된 '배움의 크기와 힘'으로 표현되는 '학력(學力)'이 중시된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길게 드리워진 요즘에는 암기 중심보다 현장 중심의 문제해결역량이 우대받는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어린 시절에 라면이 귀했다. 두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종류도 단촐했다. 지금은 450여 개 넘는다. 공급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전이되었다. 이제는 소비자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기업은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동질성과 획일성 대신 다양성과 창의성을 요구받는다. 평생직장시대에서는 조직이 우선이었다. 회사에서 주말에 단체산행을 한다고 하면 군말 없이 참여했다. 이제는 갈등의 요인이 된다. 개인 중심의 평생직업시대이다. 그것도 초개인주의 중심이다. 조직문화가 각자의 일하는 목적과 방법에 맞지 않으면 언제라도 사표를 내고 다른 곳으로 이직할 만큼 노동시장은 예전보다 유연해졌다. 경력직 채용과 수시채용이 자리매김할 수 있는 든든한 뒷배경이기도 하다.
이처럼 다방면에서 사회적 기준이 바뀌었다. 그 변화를 인정해야 '꼰대' 대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쓰임새를 다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분리수거를 해야 한다. 그래야 몸이 가벼워진다. 가벼워지면서 생긴 틈새에 새로운 경험이나 경력으로 채워 보자. 덧셈법칙으로 근본이 무엇인지 파악했다. 기초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주변에 있는 불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고 버릴 것과 유보할 것, 새로 채워야 할 것들을 구분하자. 그러려면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내려놓기를 위한 준비운동이다. 국민체조와 같은 것이다. 자녀가 어릴 때에는 부모들은 알아도 모르는 척, 아이와 힘 겨루기할 때에는 일부러 진다. 나이가 들면 어떠한가! 목소리는 커지고 아집을 넘어 고집으로 아귀다툼을 종종 목도한다. 어린 자녀와 지냈던 초심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부모가 일부러 저 주는 것이 힘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아이를 위한 긍정적 가스라이팅이다. 시대의 트렌드에 부합하고 주변의 관계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스스로 양보하는 미덕을 갖춰 보자. 특히, 나이는 계급도 지위도 아니다. 수평적 문화에 익숙해져야 한다. '나 때는 말이야'는 동년배들과 술안주로 즐기자. 다른 세대들과 나눌 전설적 얘기는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세상이 바뀌었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농경산업에서부터 정보통신기술까지 섭렵한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세대이다. 그만큼 다양한 경험을 가진 세대이다. 온갖 험한 경험도 마다 하지 않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험난한 여정을 지나왔을 생각 하면 마음 한편이 짠하다. 분명 할 말이 많은 세대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힘을 빼야 한다. 다른 세대와 공존하기 위해서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야 한다. 경제활동한 만큼이나 긴 세월이 기다리고 있는 노후를 보내야 하는 인생백세시대이다. 말과 행동하기 전에 '3초'만 기다리는 연습을 하자. 3초가 '찰나'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꽤 긴 시간이다. 쉼 호흡 한 번 하면서 이 말이 또는 이 행동이 미칠 파장을 한 번쯤 짚어보는 지혜를 가져 보자. 뺄셈법칙은 덧셈법칙으로 알게 된 '자신'이라는 쓰임새에 안전하고 쓸모 있는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 건강을 장착하여 장수 3대 리스크(질병, 가난, 외로움)를 회피할 수 있도록 빈 공간을 만드는 과정이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진리를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뺄셈법칙의 마법에 빠져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