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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형 화법 vs 변호사형 화법

by 개미와 베짱이

말 한 마디의 중요성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 갚는다.' 믿을 수 없지만 믿을 수 밖에 없는 진리이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속담도 있다. 말 한 마디가 얼마나 중요한 지 깨우침을 주는 속담이다. 선조들의 지혜가 듬뿍 묻어나는 삶의 지혜이다. 사회 활동은 말과 행동이 상호 교환되면서 작동할 때 이뤄진다. 묵언수행하는 스님이라 하더라도 의사는 소통된다. 비언어적 표현에 의해서 말이다. 이렇게 서로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 중 가장 무서운 것이 말(言)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다. 무심결에 던진 말 한 마디가 이타적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면 믿겠는가? 그 만큼 말 한 마디의 위력은 대단하다. 세상을 다 아우를 수도 있고, 배척할 수도 있는 것이 말(言)이다. 나는 '3초'를 좋아한다. 3초는 짧다고 생각하면 짧지만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다. 3초 동안 숨을 깊게 들이 마시면서 내뱉어야 할 말을 골라 줄을 세우는 연습을 지금도 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가능하면 담백하지만 밝고 부드러운 대화를 하기 위해서 말이다.


'나이 듦'과 화법

나이가 들면서 정말 조심해야 하는 것이 대화이다. 특히 남자는 더욱 신경써야 할 것이 대화이다. 그것도 가족간의 관계에서 말 한 마디는 노년의 화목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이다. 사무실에서 하던 지시와 명령이 거실로 옮겨 온다. 그것도 첨삭 없이 그대로 장소만 바뀐 수준에서 말이다. 퇴직하면 회사에서 집으로 공간적 이동을 하면서 남자의 주요 활동무대는 거실이다. 왜 이렇게 지저분하냐, 전등 꺼라, 물 아껴 써라 등 시시콜콜 지시와 명령이 쉴 새 없이 쏟아진다. 가족은 당황한다. 어제까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오늘 이 시간에 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현실에 믿어지지 않는다는 눈치이다. 관심을 넘어 간섭으로 느껴질 때쯤 가족은 갈등한다. 그동안 직장생활하면서 고생했다는 것으로 인내하는 시간은 길어야 3개월이다. 3개월의 숙려기간이 끝나갈 때 쯤 되면 가족의 반격이 시작된다. '눈에 보이는 사람이 치워! 아빠가 소등하면 되지!'와 같이 언짢음이 잔뜩 묻어난 말투로 남자의 등짝을 내리친다. 이렇게 오가는 말은 갈등의 불씨가 된다. 그 불씨가 잘못되면 온 산을 불태울 만큼 큰 불이 될 수 있다. 발화지점에서 더 이상 번지지 않도록 초기 진화가 중요하다. 빠르게 수습해야 한다. 그 방안은 화법을 바꾸어야 한다. 지시형이 아닌 의견을 물어 보는 의문형으로 말이다.


판사형 화법 vs 변호사형 화법

판사와 변호사는 직업상 화법이 다르다. 완전히 반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재판이 진행될 때에는 판사도 질문을 한다. 대부분 듣는 입장이지만 말이다. 판결문은 법리적 해석을 담은 결정문이다. 결정문은 이행을 목적으로 한다. 딱딱하다. 융통성이라고는 찾아 볼래야 볼 수 없다. 숨 쉴 틈새도 찾기가 쉽지 않다. 그 만큼 기승전결로 논리정연하게 법률적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판결문이다. 그 판결문을 읽어 참석자들 모두에게 공표하는 사람이 판사이다. 지시와 명령형 어미로 구성된 판결문은 판사의 이미지를 냉혈한으로 만든다.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말이다. 김홍도의 '서당도'에 나와 있는 훈육하는 훈장의 모습이 보인다.


변호사 화법은 완전히 다르다. 지시와 명령보다는 대부분이 질문이고 재판부에 애원조이다. 왜 그렇게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 의견을 도출하기 위해 대부분 질문 형태이다. 어떨 때에는 재판부를 향해 읍소한다. 선처해 달라고 말이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아이가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지시와 명령이 아닌 아이가 말하려는 의도를 들으려 애쓴다. 질문과 경청으로 눈높이 대화를 시도한다. 따스하다. 얼룩진 마음을 어루만지면서 보듬어 주기에 편안하고 기대고 싶다. 모든 행위에는 변명거리가 있다. 그 변명이 위기를 모면하려는 임기웅변일지언정 사정은 있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정리할 수 있도록 당사자의 얘기를 들어봐야 한다. 그래서 말하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이 듣는 것이다. 경청(傾聽)이다. 경청은 내일 다시 만나기로 하고 오늘은 말하는 것에 집중해 보자. 변호사형 화법은 최소한의 억울함이 없도록 하기 위한 조치일 수도 있다. 변명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의미에서 가치가 있다. 변호사형 화법은 이타적 존중이요, 다름을 인정하는 길이다. 차이를 확인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에 신중하자!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하지 못한다는 말처럼 어른은 지나 온 과거의 어설픔을 기억하지 못한다. 자신은 늘 인성이나 역량이 완성된 수준이었다고 착각하면서 이타적 질타를 한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대화에 힘을 빼자. 목소리도 낮춰야 한다. 아울러, 온화한 미소로 답을 하는 연습을 해 보자. 꼰대와 노땅에서 벗어나 '젊은 노년'이 될 수 있다. 굳이 한 마디 해야 한다면 자신의 의견을 먼저 설명하는 습관을 들이자.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속담이 있다. 맞는 말이다. 다만, 화법에 신중해야 한다. 맞는 말이라도 지시와 명령이라면 청자(聽者)는 기분이 상할 수 있다. 의견을 확인하는 질문형이어도 좋고, 그렇게 해야만 하는 상황에 대해 설명이 선행된다면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다. 무심결에 던진 말 한 마디가 상대방에게는 비수가 될 수 있다.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는 '말이 가진 힘이란, 죽은 이름 무덤에서 불러 낼 수도 있고 산 자를 땅에 묻을 수도 있다.'라고 했다. 명심보감에서는 '입과 혀는 화와 근심의 근본이며 몸을 망치는 도구와 같다'라고 했다. 그만큼 말은 무섭다. 남에게 해(害)가 되는 말보다 춤추게 하는 말을 할 수 있도록 오늘도 연습을 열심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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