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식탁 위에서 전한 서로의 인사
어느 날 마쿠스가 말했다.
“폴란드에 계신 우리 엄마가 며칠 여기서 머무를 거야.” 그리고 덧붙였다.
“폴란드어로 할머니는 ‘밥챠(babcia)’라고 해. 너도 그렇게 불러도 돼.” 그날부터 나도 마쿠스의 엄마를 밥챠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밥챠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할머니의 모습 그대로였다. 조금 구부정한 어깨, 푸근한 풍채, 손등에 새겨진 세월의 무늬들. 따뜻하고 정겨운 분이었다.
하지만 나를 보자 잠시 멈칫했다. 평생 처음으로 가까이서 동양인을 마주한 듯한 눈빛이었다. 한참을 바라보시더니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뭘 먹고 사는지,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어찌 되는지, 독일엔 왜 왔는지, 부모님은 무엇을 하시는지 등등.
(외국인이어도 어르신들은 궁금한 게 비슷한가 보다.)
밥챠는 독일어로 간단한 인사말만 할 수 있었기에, 마쿠스가 옆에서 하나하나 통역해 주었다.
모두 출근하고 아이들도 등원한 오전. 조용한 집에 나와 밥챠, 단둘이 남았다. 밥챠는 내가 평소에 어떤 음식을 먹는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마침 며칠 전 한국 슈퍼에서 사 온 유부초밥 재료가 있었다. 나는 휘리릭 냄비밥을 짓고, 작고 둥글게 초밥을 빚었다. 표정과 손짓으로 설명하며 조심스레 건넸다.
“밥챠, 이건 두부랑 밥으로 만든 거예요. 한번 드셔보세요.”
밥챠는 초밥 하나를 접시에 올려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서툰 젓가락질로 아주 천천히, 유부와 밥을 분리해 내었다. 그리고는 유부를 손톱만큼 잘라 입에 넣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 그게 아니라 같이 먹는 건데…’
밥챠는 조용히 씹더니, 이내 나를 향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곁에 있던 독일빵에 버터를 발라 드셨다.
그날, 나는 오랜만에 유부초밥을 양껏 먹었다.
생각해 보면, 나도 처음 라자냐를 마주했을 때
그 낯선 맛과 질감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지 않았나. 그 경험 덕분에 밥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는 건, 나이가 들수록 더더욱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이라는 걸.
다음 날 밥챠는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였다.
그러더니 정성스럽게 만든 독일식 잼 도넛을 내게 건넸다. 아마, 그것은 그녀가 내 유부초밥에 보내는 조용한 답례였을 것이다.
독일을 떠나기 전, 밥챠는 나를 꼭 안아주며 말했다.
“다음엔 꼭 폴란드 집에 놀러 와. “
나 또한 난생처음으로 폴란드 할머니를 마주했지만, 밥챠 덕분에 마음의 긴장을 조금씩 풀 수 있었다. 처음엔 어색하기만 했던 이름 ‘밥챠’가 어느새 내게도 ‘할머니’처럼 다정하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