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럭스토어에서 아우슈비츠까지

질서너머의 독일

by 호빵이

2006년 당시 나는 300유로 정도를 오페어 용돈으로 받았다. 새미는 우리나라의 복지관 같은 곳인 volkshochschule에서 하는 독일어 수업료도 지원해 주었다. 오페어로서 주로 맡은 일은 아이들의 등하원 돕기, 간식 챙기기, 함께 놀아주는 등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다만, 학원에 가지 않는 날이면 일주일에 두어 번 집 청소나 아이들 빨래 같은 가사일도 해야 했다.

집안일을 하다 찍은 집앞의 꽃나무

독일은 화장실을 건식으로 사용하기에 물청소 없이도 청소기만 돌려도 웬만한 정리는 가능했다.

그런데도 간단한 화장실 청소에만 사용되는 세제가 네댓 가지나 됐다. 소독 스프레이, 도기용 세제, 수전용세제, 유리용 세제까지.


우리는 ‘발을 씻자‘하나면 충분한 민족 아닌가. 독일 드럭스토어의 진열대 앞에서 나는 입이 쩍 벌어졌다.

오염의 종류에 따라, 옷의 소재에 따라 수십 가지의 세탁세제가 나뉘어 있었고, 청소 용도에 따라 세제도 각기 달랐다. 종류도 많았지만 가격도 대부분 저렴했다. ‘이 사람들 디테일하다. 분류의 DNA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출처 : 구글 독일 alamy

재활용도 마찬가지였다. 뚜껑, 색깔별 유리, 나뭇잎까지도 구분하여 배출했다.

정해진 기준에 따라 움직이는 걸 선호하기 때문일까.

오죽하면 “괜찮다”라는 말조차 “Alles in Ordnung(모든 것이 정리됐어요)”라고 할까.


이 ‘분류의 DNA’는 뜻밖에도 폴란드 여행 중 찾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다시 마주했다.

수용자들의 가방, 안경, 머리카락까지도 가지런히 분류되어 있었다. 나는 그 질서 속에서 차마 감당할 수 없는 광기를 보았다. 눈앞이 아득해지면서 가슴이 조용히 무너져 내렸다.


독일은 분명 나에게 새로운 세계였다. 정돈된 질서, 효율적인 생활, 거기서 오는 안정감. 그렇게 나는 독일생활에 빠져들다가도,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마음을 닫아버리는 순간들을 겪곤 했다.


다행히 나의 오페어 가족은 전형적인 독일인 가정이 아니었기에 , 이 말도 안 되는 역사에 대해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었다. 우리는 함께 분노했고, 슬퍼했고, 안타까워했다. 그 모든 혼란 속에서도 그래도 그 시절이 좋았다. 숨 막히는 질서 사이에서도 뜻밖의 온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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