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장 발걸음도 없는 그녀

2화

by 유월

몽환적인 감각이 내 몸을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휘감았다. 처음에는 그것이 공기인지, 물인지, 아니면 아직 이름조차 모르는 어떤 물질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감각이 내 몸의 바깥이 아니라 안쪽에서부터 피어오른다는 점이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의 경계가 조금씩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눈앞의 윤곽이 무너지고, 색은 희미해지고, 대신 어떤 투명한 막 같은 것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나는 허공에 떠 있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정신과 몸이 분리되었다.

그 순간을 다른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의식이 살짝 들린 연잎처럼 바람에 실려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었다. 몸은 그 자리에 있었지만, 나는 이미 거기 있지 않았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내려다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내려다본다는 행위조차 의식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나는 하늘 높이 떠올라 있었다. 아래에는 ‘나’가 있었다. 그 ‘나’는 이상하리만치 선명했다. 육체와 영혼, 그리고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껍데기 같은 ‘나’가 그 자리에 있었다. 이상한 점은, 그 육체와 영혼이 서로를 올려다보며, 그 가운데에 있는 껍데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세 가지 중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바람이 이끄는 속도로, 나는 그저 흘러갔다. 어디로 가는지,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목적지 같은 건 애초부터 없었다. 마치 유리병에 담긴 작은 나뭇잎이 강물 위에 떠내려가듯, 저항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 이상하게도, 그 모든 것이 좋았다. 편안했고, 부드러웠고, 오래전부터 기다려온 무언가를 마침내 만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에 ‘진짜 나’를 두고, 그 어디론가 떠나버리는 것이다.

내가 그토록 오래 바라왔던 죽음이라는 것이, 아주 상냥한 얼굴을 하고서 눈앞까지 다가오는 것 같았다. 두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그것이 주는 안정감에 나는 스스로를 놓아버리고 싶어졌다. 정신도, 육체도, 그리고 나라는 이름까지도 포기하고, 완전히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갈망했던 안식이었다.


정해진 코스 레일 위에서 움직이는 기차처럼,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아무 방향 전환도 없이, 이 흐름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 바람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순간, 뚝하고 무언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린 듯했다. 움직임이 멈췄다.


그때였다.

껍데기인 나를 포근하게 감싸는 무언가가 나타났다. 그것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온기였는데, 사람의 손이라는 것을 나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그 촉감이 분명히 말해주었다. 가늘고 매끈한 손가락이 내 몸 전체를 살며시 쓸었다. 부드러운 손끝이 닿을 때마다 껍데기였던 나는 조금씩 형태를 잃어갔다. 손과 껍데기의 피부결이 맞닿는 순간, 우리는 하나가 되는 듯했다. 그 촉감이 내 안쪽까지 스며들어왔다.


나는 그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받아들였다. 그 손의 주인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었다. 이상하리만치 따뜻했고, 또 이상하리만치 익숙했다. 껍데기의 마지막 조각이 먼지처럼 흩날려 어디론가 사라졌다. 마치 봄바람에 불려 나간 작은 씨앗처럼.


손의 주인은 의무를 다한 듯, 조용히 두 손을 무릎 위에 모았다. 그리고 낮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또 보자, 유연.”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알았다. 그가 누구인지.

그건 단순한 인식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잊고 있던 이름을, 어떤 기묘한 꿈 속에서 갑자기 떠올린 것처럼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름을 떠올리자마자, 내 의식은 무언가에 잡아 끌리듯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눈을 떴다.

첫 번째로 보인 것은 천장이었다. 나무 결이 느껴지는 얇은 패널들이 규칙적으로 이어져 있었고, 군데군데 얼룩진 자국이 마치 오래된 수채화처럼 번져 있었다. 내 호흡이 너무 크게 들렸다. 가슴이 위아래로 불규칙하게 오르내렸고, 그때마다 땀방울이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렸다. 방 안 공기는 정체되어 있었지만, 창가 쪽에서 아주 가느다란 바람이 스며들었다.


몸이 뜨거웠다. 속에서 무언가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 열기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근육과 신경을 뒤흔들었다. 한참 동안 멍하니 누워 있다가, 나는 내가 바보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입술이 반쯤 벌어져 있었고, 눈가가 젖어 있었다.

언제부터 눈물이 흐르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마 꿈속에서 이미 흘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일어났어? 기상 소리가 참 우렁차네.”


낯선 목소리가 방 안을 가볍게 울렸다. 고개를 돌렸다. 의자에 앉아 있는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왼쪽 귀에는 작은 피어싱이 여러 개 박혀 있었고, 반짝이는 금속 조각들이 빛을 받아 순간적으로 번쩍였다. 그녀의 체구는 작았다. 그러나 그 작은 몸은 느슨하게 늘어진 반팔 티셔츠 속에서 묘하게 자유로워 보였다. 그 티셔츠는 다리 중간까지 내려와 있었고, 옷자락이 바람결에 아주 약하게 흔들렸다.


“당신, 골목에서 쓰러져 있었어. 그냥 두고 올 수는 없었지. 그게 다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아주 살짝 변했다. 방금 전까지는 꿈속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내 머릿속에서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그 장면과 지금 이 현실의 경계가 정확히 어디인지,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어쩌면 아직 꿈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머리가 아팠다. 날카로운 금속이 두개골 속을 긁는 듯한 두통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 뜨거운 열기와 통증을 잠재울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바지 주머니 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손가락이 안쪽을 더듬었지만, 감촉이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 순간, 가슴속이 서서히 조여왔다.

이대로면 안 된다.

약이 필요했다. 그것 없이는 버틸 수 없었다. 나는 서둘러 다른 주머니, 시트 위, 바닥까지 더듬었지만, 약은 보이지 않았다. 머릿속이 점점 하얘졌다. 불안이 목을 죄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내 시야 한쪽에서 그녀가 다가왔다. 조심스럽지만 단호한 발걸음이었다. 그녀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표정은 읽기 어려웠다.


“혹시, 이걸 찾고 있어?”


그녀의 손에는 약봉지가 있었다.

낯설지 않은 포장지.

내 심장은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나는 몸을 날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등 뒤로 숨겼다.

몸이 침대에서 떨어졌다. 무릎과 팔꿈치가 바닥에 부딪쳤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내게는 오직 그 약만이 필요했다.


“내놔…”


목소리는 내 의지보다 더 깊고 낮게 울렸다. 살기가 묻은 눈빛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 그 눈빛에 놀란 듯, 숨이 조금 가빠졌다. 그러나 곧 호흡을 고르고, 마치 상황을 이해하려는 듯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이거, 꽤 위험한 약이지?”


그녀의 눈동자는 약봉투를 가만히 훑었다.

마치 전에 본 적이 있는 듯한 시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