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나름 부부의 날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잠든 후 둘이서 와인을 마시며 오로지 나와 너로 만나길 희망하는 날을 말이다. 오늘 와인은 무엇으로 할지 어떤 메뉴를 먹을지 고민하는 것도 재밌다. 나보단 맛 선택의 센스가 좋은 너(나보다 1살 많은 나름 오빠인 신랑님)가 고른 감바스, 잠들기 전까지 먹고 싶다던 딸에게 다음에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선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와인을 마시며 나누는 대화는 깊고 얕음을 오간다. 남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나'라는 사람과 '너'라는 사람에 집중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나의 속마음을 드러낼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 어떤 다른 이보다 나의 이야기를 진실되게 들어주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 나를 누구보다 잘 알아주는 유일한 사람이 '너'라는 것. 그런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니, 수많은 인간관계 중 가장 귀한 관계가 아닐 수 없다.
"관계"
새 학기 시작을 앞두고 이 "관계"가 내 마음속에 가장 오래 머문다.
1년을 함께 할 동학년 선생님, 새로 만날 아이들, 그 아이들로 인해 맺어질 학부모님들. 어찌 보면 1년 중 가장 학교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 관계를 만들어 감에 내가 머무는 학교와 네가 머무는 학교의 문화 차이에서 오는 대화들은 늘 나를 고민하게 만든다.
내가 서야 할 자리에 어떻게 설 것인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지, 어떤 이들 곁에 머물고 싶은지를.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관계의 힘"
지난 1년간 매일 아침 출근길에 마주하는 이가 있다. 우리 학교 배움터지킴이 선생님. 아파트 입구를 나와 작은 횡단보도를 하나 건너면 바로 학교 정문이 나온다. 횡단보도에서 아이들 교통지도를 하시는 배움터지킴이 선생님은 1년간 내가 출근하는 모습을 지켜보셨다. 매번 짧은 길에서 오늘의 안부를 주고받았다. 오늘의 날씨, 오늘의 하늘, 오늘의 기분, 심지어 나의 옷차림과 걸음걸이까지..
선생님께선 늘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생님, 늘 씩씩하십니다.", "선생님, 늘 힘이 넘치십니다.", "선생님, 늘 밝으십니다."
며칠 전 출근길에 멀찍이 내가 걸어오는 것을 발견하시고선 다른 지킴이 선생님과 웃으며 대화를 하신다. 나는 "무슨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라고 물으니 지킴이 선생님께선 "제가 선생님 별명을 지었어요. 통통이라고요." 그러시면서 옆에 계신 다른 선생님이 "선생님, 참 에너지가 좋아 보이시네요."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 말을 듣고선 함께 "하하하" 웃고선 교문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그 말들이 다시 돌고 돌아 나를 더욱 힘 나게 만든다는 것을 느꼈다. 사소할 수 있는 관계지만 그냥 주고받는 인사의 말들이 말하는 사람도 말을 듣는 사람도 미소 짓고 기분 좋게 할 수 있다니.
그것도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현장에 들어가기 직전에 말이다.
새삼 지킴이 선생님의 존재가 너무 감사하게 느껴졌다.
이 이야기를 들은 너는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무 날 아니 어느 날 문득 작은 메모와 비타500이라도 건네는 게 어때?"
맞다. 이 고마움을 꼭 표현해야지.
사람과의 관계와 태도.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들여다보려는 작은 의지만 있으면 이렇게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때론 일방적일지라도 내가 보내는 작은 시선들이 상대방에게 따스함을 적시는 일들이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네가 물었지.
올해 목표가 뭐야?
내가 가진 것들을 따스함으로 베풀기.
상대방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내 마음을 보내보는 것.
이것이면 좋겠어. 이 목표를 어떻게 이룰지는 차차 생각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