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뤼드너는 자신을 메시아라 부르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전하는 것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신의 의지라는 점을 반복해 강조했다. 그러나 문제는 언제나 그러하듯 타인의 해석에 있었다. 그녀의 언어는 상징과 침묵, 윤리와 환시로 가득 차 있었고, 이는 제도적 질서나 권력의 언어와는 전혀 다른 결을 지니고 있었다. 기이함과 낯섦, 비가시성과 비논리성—이 모든 요소는 그녀를 점차 ‘이해 불가능한 존재’로 만들었다.
1815년 이후, 그녀의 영향력이 정점을 찍은 순간, 동시에 그녀를 향한 정치적 거부감도 정점을 찍는다. 성스러운 동맹의 명분이 보수적 권위로 흘러가던 시점, 크뤼드너의 존재는 점점 방해물이 되었다. 그들은 그녀의 초월적 정언을 “사적인 망상”으로 축소시키고자 했다.
크뤼드너가 남성 정치인의 자리를 위협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애초에 정치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그녀는 더 위험한 존재였다. 그녀는 체제 바깥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었고, 따라서 공식적인 반박이나 견제가 불가능한 위치에 있었다.
이에 따라 그녀를 무력화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그녀를 ‘정치’의 장 밖으로 추방하는 것이었다. 그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그녀의 편지를 “감정적인 감상”으로 폄하하기
그녀의 침묵과 직관을 “히스테리”로 해석하기
그녀의 비전을 “신경쇠약적 환상”으로 묘사하기
특히 그녀의 회심 경험과 환시 체험은 당시 의학 담론과 결합되어, “광기” 또는 “종교적 몽상”으로 규정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묘사는 단순한 명예 훼손이 아니라, 정치적 추방의 담론적 기술이었다.
이러한 배제는 공식적인 체포나 탄압의 형태로 이루어지진 않았다. 그녀는 조용히 사라졌다. 하지만 그 침묵은 단순한 후퇴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스스로가 고른 마지막 선택지였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그녀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녀는 더 이상 말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녀는 글쓰기를 줄이고, 점점 더 소규모의 친교 공동체로 중심을 옮겨간다. 이때 그녀는 ‘말로 설득하는 예언자’가 아니라, ‘존재로 증언하는 침묵자’로 이행한다. 그녀의 가장 큰 영향력은, 말을 많이 할 때가 아니라 말을 멈췄을 때 발생한다.
역설적이게도, 그녀가 ‘예언자’로 가장 깊은 신뢰를 받았을 때, 동시에 ‘가장 큰 조롱’을 받은 시기이기도 했다. 어떤 신학자들은 그녀를 “자신이 신의 대리인이라 착각하는 여성”으로 서술했고, 정치인들은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신비주의자’로 그녀를 분류했다. 몇몇 유럽 신문들은 그녀를 “종교적 열광자”, “허구적 성자”, “독일의 마녀”로 묘사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모든 조롱을 침묵으로 받아들였다. 어쩌면, 그녀는 이미 신에게로 떠나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로 신 앞에 나아가려 했다.
그녀는 말년에 극도로 조용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도 편지는 계속 이어졌다. 그녀가 왕들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들, 무명의 시민들에게 띄운 짧은 노트들 속에는 더 이상 교리를 설명하거나 비전을 주장하는 문장은 없었다. 대신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남겨져 있다:
나는 존재한다.
그리고 그 존재는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이 문장은 설명의 시대에 저항하는 존재의 선언이었다. 크뤼드너는 자신이 예언자임을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살아 있는 예언 그 자체가 되려 했을 뿐이다.
『Valérie』는 단지 소설이 아니었다. 그것은 존재의 무게가 처음으로 문장으로 번역된 순간이었다. 크뤼드너는 자신이 체험한 신비를 직접 설명하기보다는, 그것을 사랑과 침묵, 상실과 기다림이라는 감정의 구조를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Valérie』 속 주인공 발레리는 구스타브를 향한 뜨거운 사랑을 고백하지만, 그 사랑은 끝내 말로써 도달하지 못한다. 발레리는 “Je vais donc encore une fois vous parler, Valérie! … Cette voix vous dit enfin que c’est vous que j’aimai… Ah! ne détournez pas de moi ces yeux…”라는 마지막 고백을 남기고, 신의 품으로 사라진다.
이 대사는 03화 남편의 죽음과 소설 『Valérie』에 이미 다루었듯, 단지 연애 소설의 클라이맥스가 아니다. 그녀가 신에게 보내는 마지막 기도이자, 존재 그 자체로 말하고자 한 크뤼드너의 내적 고백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작품이 당대에는 전혀 그렇게 읽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Valérie』는 ‘도덕적 연애소설’로 소비되었고, 심지어 프랑스 대중에게는 감상주의적 로망스로 인식되었다. 그것은 문학이 감당할 수 있는 감정의 깊이를 넘어서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발레리를 이해했지만, 크뤼드너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것이 그녀가 문학을 내려놓고 ‘편지’와 ‘침묵’의 형식으로 이동하게 된 이유였다. 『Pensées et Maximes』(1802)에서 보이듯, 그녀는 점차 도덕적 명상록의 형식을 빌려 실천적 감정과 윤리적 사유를 전달하고자 한다. 이 책은 『Valérie』와는 달리, 독자와의 거리감을 유지하며 오히려 침묵하는 사유자로 자리 잡는다.
『Valérie』 이후 그녀가 준비하던 또 하나의 프로젝트는 『Lettres de quelques gens du monde』였다. 직역하면 ‘세상 속 사람들의 편지들’이라는 이 모음집은, 단지 공적인 담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와 감정적으로 공명하기 위한 형식 실험이었다.
이 편지들은 군주에게도, 무명의 시민에게도, 지식인에게도 보내졌다. 그러나 그 어떤 편지에서도 그녀는 명령하거나, 설교하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보았다”고 말한다.
“나는 거리에서 병든 아이를 보았다. 그 아이는 침묵하고 있었고, 나는 그 아이의 침묵에서 신의 음성을 들었다.”
이 문장은 정치적이지 않다. 하지만 가장 정치적인 언어다. 왜냐하면 그 어떤 법률도, 어떤 연설도, 이처럼 존재의 결로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크뤼드너는 문학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자기 자신의 삶을 문학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Valérie』가 감당하지 못했던 진실을, 이제 그녀는 살아 있는 기도문으로 실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문장을 줄였다.
그녀는 말을 멈췄다.
그녀는 존재로 말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문학이 감당하지 못한 진실을, 문학 밖에서 이루어낸 사례였다. 크뤼드너는 ‘글을 쓰는 자’에서 ‘글을 살아내는 자’로 이행한 존재였고, 바로 이 지점에서 그녀는 누구보다 앞서 있었고, 그래서 누구보다 오해받을 수밖에 없었다.
『Valérie』는 그 자체로 하나의 끝이었다. 그러나 그 끝은 또 다른 시작이기도 했다. 이 소설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이후의 침묵과 편지들, 실천들이 이 소설을 완성시켜 나간다.
『Pensées et Maximes』는 도덕적 감정의 윤리를 세우고,
『Lettres de quelques gens du monde』는 감정의 정치학을 예고하며,
그녀의 존재 그 자체는 말 없는 혁명의 현전이 된다.
그녀는 더 이상 썼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녀는 존재로 썼다. 크뤼드너는 실패한 작가가 아니었다. 그녀는 문학의 경계를 넘어간 최초의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