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상륙을 했다가 난감한 처지에 빠졌다. 중심가까지 나갈 때는 택시도 금방 잡혔고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았는데, 귀선을 하려고 택시를 잡으려니 퇴근 시간(Rush hour)이라 한 시간 가까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두까지 가겠다는 기사가 없었다.
상선 선원들이 가장 무거운 죄요 금기 사항으로 여기는 것은 승지(승선 지각)다. 지금 당장 택시를 탄다 해도 지나가는 차들의 속력으로는 출항 시간 안에 도착한다는 보장도 없어 속이 타들어 갔다.
그때 번쩍 떠오르는 아이디어 하나가 있었다. 실항사에게 급히 말하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네거리 한복판으로 나가 브루스 리(이소룡) 흉내를 내며 싸우는 척을 했다. 제복을 입은 두 녀석이라 금방 주목을 받았고 거북이걸음을 옮기던 택시 기사들은 휘파람을 불고 박수까지 쳤다.
미리 예상했고 바라던 대로 교통경찰들이 달려왔다. 손짓 발짓을 섞어 설명을 했다.
“출항 시간은 다가오는데 동료 사이에 의견이 서로 다르다. 나는 이쪽으로 가는 택시를 타야 할 것 같은데, 저 녀석은 반대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강 그런 의미였다.
경찰이 어디론가 전화를 해 보더니, 자기를 따라가자며 경찰차를 타란다. 경찰서로 가서 구금되면 인생 망치는 거고 배로 데려다주면 작전 성공이다. 심장이 요동쳤는데 수갑도 채우지 않고 사이렌을 울리며 부두 쪽으로 달려가는 걸로 봐서는 후자처럼 보였다. 덕분에 시간 안에 무사히 귀선을 했다. 택시비도 공짜로.
수리와 정기 검사를 받기 위해, 함부르크에 있는 <하바노프 조선소>로 들어갔는데, 항해만 하다가 모처럼만에 육지에 배를 붙여 놓으니, 기회만 생기면 상륙을 했다.
처음 얼마 동안은 볼 것도 많고 온갖 게 신기했지만, 장기간 정박을 하니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상륙하는 것에 피곤함이 쌓였다. 그동안에 모아 뒀던 돈이 슬슬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것이 스트레스를 받는 가장 큰 이유였다.
상륙을 끊고 배에 머물러 있었지만, 며칠이 지나니 좀이 쑤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궁리해 낸 게, 또 사기였다.
우선, 그 도시에서 가장 큰 술집으로 들어가 중앙 탁자에 앉아 맥주 한잔을 주문한 후, 팔씨름을 시작한다. 얼굴에 힘주고 기합 소리만 요란한 약속 대련처럼, 관심을 끌 때까지 이기고 지기를 번복하며, 과장된 몸짓과 보디랭귀지를 구사한다.
그러다가 주위의 분위기를 살펴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실항사는 한 번만 더 하자 하고 나는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표정으로 팬터마임을 이어간다. 박수 소리가 요란하게 나오면 작전 성공이다.
도박을 좋아하는 녀석들은 양쪽에 맥주 박스를 쌓으며 부추긴다. 우리는 선수이니 그때부터는 술값 밥값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가끔 얼마나 강한지 자기와 붙어 보자는 놈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크게 문제 될 건 아니다. 이기면 강함이 증명된 것이고, 지더라도 지금은 힘이 빠졌으니 (실제로는 얼굴에만 힘을 줬으니 힘 뺄 일도 없었지만) 내일 다시 하자면 그만이다. 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지만, 시합이 끝나고 나서 ‘당신은 천하장사다.’라고 칭찬이라도 해주면 만족해서 시비 거는 놈은 없었다.
당시에 독일의 프로 축구팀 레버쿠젠인가 프랑크푸르트 팀에서 선수로 뛰고 있는 차붐(차범근)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슈퍼스타였다. 내가 그와 함께 공을 찼다든가 가까운 친구라는 거짓말을 살짝 고명으로 얹어 주면, 환호 소리는 더욱 요란해진다.
술값이 공짜였던 건 물론이고 재수 좋은 날에는 약간의 돈벌이도 되었다. 술집 주인들이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 우리를 임시로 고용하거나 용돈을 듬뿍 주기도 했다.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 입항했다. 당시는 넬슨 만델라가 감옥에 갇혀 있고, 백인들이 철권통치를 하던 때였다. 시내에 나가다가 2층 버스가 오기에 탔더니, 백인 경찰관이 흑인 운전수를 하차시키고 나서 우리를 가리키며 뺨을 때렸다. 백인들이 타는 칸에 우리를 앉혔다고 나무라는 것 같았다. 미안해서 자리를 옮겨 흑인들 곁으로 가서 앉았는데도 운전수를 하차시켰고 뺨을 때렸다. 그런데도 반항하지 않고 웃기만 하는 그 아저씨를 보니 미안해서 더 이상 버스를 타고 갈 수가 없었다.
(<아파르트 헤이드>라고 부르던 악랄했던 인종차별 정책의 한 단면이었다, 이런 짓을 계속하다가 대규모 흑인 폭동을 만났고 국제 여론까지 악화되자, 백인들은 1990년 초반에 감옥에서 노벨평화상을 받은 만델라를 풀어 주고 타협을 모색한다. 만델라는 27년 남짓 감옥 생활을 하던 동안은 사이좋게 지내던 아내와 출옥 직후에 이혼을 해서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지만, 대통령에 당선되어 지금의 무지개 나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초석이 되었다. 나라의 주인이 백인에서 흑인으로 바뀌는 혼란 속에 그 나라를 떠났던 사람들 가운데 <일론 머스크>의 가족도 끼어 있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의 <테슬라>도 생기지 않았을 거라니 역사의 수레바퀴는 참으로 묘하다.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 것일까?)
버스를 내려 거리를 걸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운 계절인데도 날씨가 몹시 더워 땀이 흘렀다. 그때 백인 한 사람이 다가오더니 신분을 물었다. 제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우리가 이상하게 여겨졌던 것 같다.
멀리 바다에 떠 있는 우리 배를 가리키며 선원이라 대답했다. 직책을 묻기에 실습 선장(Cadet Captain)이라고 했는데, 그는 부선장(Vice Captain)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명함을 주며 자신은 선식업자(Ship Chandler)인데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지 도와주겠단다.
그리고 우리를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안내하더니 근사한 식사를 대접해 줬다. 더워서 고생하는 것보다는 잘 되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본의 아니게 거짓말한 꼴이 되었는데 탄로 나면 행패라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공존했다.
레스토랑 입구에는 <아놀드 테일러>와 홍수환 선수의 복싱 시합 포스트가 붙어 있었는데, 우리가 케이프타운을 떠나고 며칠 후, 그 타이틀매치가 이 나라의 <더반>이리는 도시에서 열렸다.
세계 챔피언이 되자마자 우리의 어린 선수가 국제전화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멘트를 날려 온 국민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던 경기였다.
귀선하고 나서부터 출항 때까지 우리는, 제복을 감추고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후 숨소리도 죽이며 며칠을 숨어 지냈는데, 그 사람이 배로 방문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훗날 다시 생각해 보니, 그날 우리에게 밥을 샀던 그 백인이 우리의 신분을 이미 알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장사꾼이 그런 눈치도 없었을까? 심심하던 차에 어린 녀석들이 귀여움을 뜨니 노리개 삼아 잠시 갖고 논 것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