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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4학년 시절

by 연후 할아버지 Feb 19. 2025

10. 4학년 시절


대학 선배였던 3기사(삼등기관사)가 갑자기 귀국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후임자가 부임할 때까지는 실습생인 나에게 3기사 대무를 서라는 연락이 왔다.


며칠이면 끝날 거라 생각하고 승낙했지만, 달이 바뀌고 신학기가 시작되었는데도 소식은 오지 않았는데, 사실은 나도 급하게 하선해서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다. 


‘해양대학 4학년은 4성 장군보다 높다.’라는 말을 들을 때였지만, 등교하면 통제 속에 갇힌 생활을 해야 하는데 배에서는 자유를 누릴 수 있고, 몇 달 간이라도 3기사 월급을 받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5월이 되면 중간고사를 봐야 하는데, 학점을 따지 못하면 졸업을 시킬 수 없다.’는 최후통첩이 와서 어쩔 수 없이 귀국했다. 김포공항에 내려 보니 벌써 초여름 냄새가 났는데, 떠날 때는 대단한 시설 같던 그곳이 왜 시골 역처럼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학교로 돌아와 보니 부두에 접안해 놓은 연습선도 그랬다. 바로 몇 달 전까지는 세상에서 가장 큰 배로 알았던 그 배도 통선처럼 여겨졌다. 그동안에 눈이 변한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목격했다는 막연한 표현을 잘 믿지 않는다. 


(목측과 잔상은 대개 익숙함에서 시작된다. 큰 배를 타다가 작은 배를 옮기면 사방이 좁아 불편하지만, 다시 옛날에 타던 큰 배로 돌아가 보면 썰렁하게 느껴진다. 그동안에 감각이 작은 배에 적응이 된 것이다. 처음 승선 했을 때 동남아 선원들을 만나면 모두 원숭이 비슷한 모습으로 느껴지는데, 세월이 지나 다른 배 선원들과 섞어 놓으면 미남은 모두 동승하는 선원들 같다. 이렇게 제 눈이 안경이라 가족이 되고 사랑이 싹트는 것이다.)


학교에 와 보니 중간고사만 문제 되는 게 아니었다. <실습 레포트>도 제출해서 감수를 받아야 3학년 과정이 수료되고, 3급 기관사 면허 시험에 바로 응시해야 한단다.


정신없이 뛰어다녔지만, 제대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다른 학생들은 미리 와서 레포트도 협력하며 써서 깔끔하게 제출했는데, 혼자 하려니 쉽지가 않았고, 중간고사는 배우지도 않은 범위를 벼락공부로 대강 쳤으니 성적이 제대로 나올 까닭이 없었다.


무엇보다 뼈아팠던 건 면허 시험 낙방이었는데, 잘난 척하더니 4년 동안이나 공부해서 그것도 떨어졌냐는 주위의 조롱과 시선은 무시한다 하더라도, 시험을 쳐서 생애 처음으로 떨어졌다는 마음의 충격을 숨기고 살기는 쉽지 않았다.


또한 당장 그걸 따지 않으면 졸업을 하더라도 취업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는데, 그 사이에 느꼈던 무력감과 스트레스는 머리 곳곳에 원형 탈모 증상으로 나타났다.


내가 이렇게 고난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동안에 동기생들은 또 다른 데모를 계획하고 있었다. 전문학교 졸업자들도 3급 면허는 취득할 자격을 주는데 2년이나 공부를 더한 우리는 2급 면허 정도는 딸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논리였다. (3급 시험도 떨어져 재시험 준비를 하고 있던 나는 입도 벙긋할 수 없는 내용이었지만, 곧 임시 시험이 있어서 각고의 노력 끝에 나도 합격하기는 했다.) 


우리 기수의 데모 전력은 이미 학교도 정부에서도 익히 알고 있었던 터라, 시작도 하기 전에 조치가 취해졌다. 시행 규칙을 바꿔서 ‘3급 면허를 취득한 대학 졸업자는 2급 면허 시험(1등 기관사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는 공고가 붙었다.


대신에 실무 경험이 부족한 사람은 풀 수 없을 정도로 2급 시험의 수준을 올려 버려, 함께 시험을 친 다른 수험생들이 피해를 봤다. 동기생들도 상당수 응시했지만 대개는 떨어졌는데, 나는 합격했다. 


직전에 두 번째 3급 시험을 칠 때 불안에 떨면서 깊이 있는 공부를 했던 게 주효했고, 승선 중에 상당한 기간 동안 3기사 대무를 서면서 실무를 해봤던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여서, 이 시험에 불합격자가 많이 나와서 선박직원 수급에 지장이 있다고 해운회사들이 불만을 표했는지 곧이어 임시 시험이 또 있었다.


2급 필기시험 합격자는 경력만 채우면 면허장을 받을 수 있는 반면에, 1급(당시에는 갑종기관장 면허라 불렀음) 시험은 경력이 차더라도 면접시험까지 봐서 합격해야 면허증을 받을 수 있다고는 되어 있었는데, 2급 면허장을 지참해야 1급 시험을 볼 수 있다는 조항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바꿔 말하면, 1급 시험은 누구라도 칠 수 있는데 합격 여부는 주최 측에서 결정하겠다는 뜻이었다. 밑져야 본전이니 내친김에 1급 필기까지 경험해 보자고 기대도 하지 않고 시험을 쳤는데, 며칠 후 합격자 명단에 포함되어 있어서 훗날 초고속 승진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재학 중에 <기관장 면허 필기시험>에 합격했던 건 동기생 중에서 나 혼자뿐이었고, 그 기록이 전무후무했던 것은 임기응변으로 잠깐 바꿨던 시행 규칙을 다음 해부터는 원상 복귀 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변덕이 죽 끓듯 심했던 시절이었다. (임시로 잠깐 만들었다가 없앤 규정에 명확한 기준이 없어서 합격되지 않았던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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