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4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12. 3등 기관사 시절

by 연후 할아버지 Feb 21. 2025

12. 3등 기관사 시절


며칠 후 3기사 발령을 받고 승선해 업무를 시작했는데, 승선하자마자 나의 담당 기계였던 보일러의 자동 점화가 되지 않아 출항이 지연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난리 법석을 피우던 중에,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를 잡은 것처럼 수동으로 불이 한 번 붙어서, 꺼지지 않게 불씨를 유지하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출항을 했다.


기관장님께서는 다음 항구에 도착하면 전문가를 불러 수리할 예정이니 자동 회로에는 손도 대지 말라고 엄명을 내리셨지만, 불안하고 불편하기도 해서, 그분이 주무시는 밤 시간을 이용해 혼자 수리를 완료했는데, 시운전을 해보니 이상이 없었다.


그래서 보고를 했더니, ‘어떻게 고쳤느냐?’고 물으셨지만 ‘어쩌다 보니 고쳐져서 정확한 원인은 저도 잘 모릅니다.’ 하고 대답했다. 대학 선배인 원로 기관장님을 무시한 건 아니지만 설명을 해 드려도 알아들을 수 없는 분이셨기 때문이었다.


시대가 급변해 자동 장치가 많이 개발되어 대학에서도 우리 기수부터 처음 정식 과목으로 채택해 강의를 시작해서, 대부분의 선배들은 이 분야에 생소할 때였다. 요즘으로 치면, 컴맹에게 컴퓨터 시스템이나 프로그램을 설명하는 게 어려운 것과 같은 관계다.


그 후에도 비슷한 고장이 몇 건 있었는데, 배안에서 그걸 수리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4개월 만에 배가 다른 회사로 팔려서 전 선원이 함께 하선해 귀국했다.

이전 12화 11. 질풍노도의 계절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