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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독립

by 연후 할아버지 Feb 22. 2025

13. 독립


3기사를 마치고 귀국해 보니 장남을 출산한 아내는 하동(시집)으로 옮겨가 살고 있었다. 돈도 부족했지만 갓난아기를 데리고 있어서 보호받을 만한 가족이 필요했다고 한다. 


나에게 상의도 하지 않고 자기 혼자 결행한 일이었지만, 병원도 먼 농촌 생활이 생소했던 그녀는 적응이 쉽지 않아 불편한 점도 많았던 것 같다. 


(출산 시기를 빼고 나면 그렇게 긴 세월은 아니었는데도 그 짧은 시집살이는 나중에 그녀가 평생 동안 나를 공격할 단골 메뉴로 변했는데, 내가 권유라도 했더라면 정말 큰일날 뻔했다.) 


그래서 부친과 상의했다. 아내는 아직 학업이 끝나지 않았고, 아이를 데리고 병원 다니기도 쉽지 않으니 부산으로 다시 옮겨 가겠다고 말했다. 순간 부친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네 맘대로 해라’하고 내지르시고는 대문 밖으로 나가셨다.


거절하시는 말씀인 줄 뻔히 알았지만, 내 맘대로 하라고 하셨으니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배짱으로 짐을 쌌는데, 나에게는 동전 몇 푼을 빼고는 지폐가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았던 게 화근이었다.


(당시는 부친께서 내 월급 관리를 하고 계셨는데, 내 주머니가 비어 있다는 걸 알고, 할 수 있으면 해 보라는 말씀을 하셨을 것이다.)


여기서 포기하려면 말도 꺼내지 않았다. 옆집의 리어카를 빌려서 이불 보퉁이를 싣고 기차역으로 향했는데, 7월 말의 뜨거운 햇볕 속에서 어미의 등에 업혀 칭얼대던 아이도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챘는지 조용해졌다.


부산으로 가는 완행열차표를 구입하고 나니 이제 주머니에는 먼지만 남았다. 아내가 땀을 많이 흘려서 목이 마르다며 음료수를 마시고 싶다 했는데, 그걸 사줄 돈이 없어서 다음 역에서 잠시 정차할 때를 틈타 우물로 달려가 두레박으로 물을 길러다 줬다.


부산에 도착한 후에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고, 그분 집에서 며칠 신세를 지다가, 계속 그렇게 지낼 수는 없어서 친한 동기생을 찾아가 돈을 빌려 작은 월세방을 얻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겪었던 사건들과 사연들은 따로 책을 써도 될 만큼 많았지만,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고 이쯤에서 줄이려 한다. 아내는 그때 부친께 맡겼다가 돌려주지 않아서 포기하고 나왔던 3기사 때의 몇 달 월급이 평생 그렇게 아까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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