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보통 인재라고 할 때, 추진력, 기획력, 판단력을 두루 갖춘 사람을 지칭한다. 물과 정자가 좋고 주변의 경치도 아름다운 곳이 드물 듯이, 타고난 인재를 발굴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인재로 태어난 사람이 귀하면 교육을 통해 길러 내면 된다는데, 그건 많은 인내와 세월이 필요하다. 추진력은 성실함에서, 기획력은 창의성에서, 판단력은 경험에서 나오니, 그런 환경을 조성해 주면 된다지만 그것도 말처럼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선박의 직책에 이 원리를 적용해 보면 2항기사, 3항기사 때는 뚝심 있고 부지런하면 추진력이 있다고 인정받겠지만, 1항기사가 되면 일의 완급을 조정하고 처리할 수 있는 기획력이 요구되는데, 선기장은 많은 정보 중에서 필요한 걸 골라 명령하는 판단력이 중요해진다.
대형 종합병원의 의사와 비교하면, 인턴은 실습생이나 3항기사와 같고, 레지던트가 2항기사 역할을 하며, 전문의나 펠로우는 1항기사와 비슷한 일을 하고, 큰 병원 과장이나 중소 의원의 원장쯤 되어야 선기장과 같은 임무를 수행한다고 보면 되겠다.
각각의 직책에서 요구되는 능력이 다르니, 2항기사, 3항기사를 잘하던 사람을 1항기사로 진급시키면 같을 거라고 단언할 수 없으며, 최고의 1항기사였다고 유능한 선기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각 직위에서 하급자는 상위자의 업무를 배우되 불평이나 비판을 하지 않는 게 매우 중요하다. 잘못된 부분이 보이더라도 마음속에 담아 뒀다가 다음에 자신이 진급한 후 교정하고 실천하면 된다.
직장 내에서의 분규가 일어나면 흔히 지휘자의 리더십을 탓하곤 하지만, 내 경험으로는, 하급자들의 절제가 부족해서 생기는 갈등이 훨씬 더 많았기 때문에 드리는 충고다.
그런데, 오랜만에 다시 승선해 보니 시대가 많이 변했다는 걸 실감한다. 육성해 보고 싶어도 가르칠 젊은 사람들이 없다. 드물게 남아 있더라도 우리 때와는 선내 분위기와 문화가 완전히 달라졌다.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인데 그들마저 사라져 버리면 이 산업의 미래는 없고, 구성원이 바뀌면 지휘 방법도 변해야 한다 싶어서 그들이 원하는 쪽으로 나를 개조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만든 가장 큰 책임은, 미래는 생각하지 않고 현재의 경제성과 효율성만 강요했던 해운회사들에게 있지만, 선배 해기사들도 반성하고 석고대죄해야 할 것이다. 육지에서 ‘직장 폭력’이나 ‘갑질 문화’가 사회적 화두로 부각되었을 때도 무풍지대였음에 만족했다.
세상과 함께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선박은 특수사회니 자기들의 방법만이 옳다는 고집을 부렸다. 그런 세월이 오래되자, 후배 해기사들은 모두 바다를 등지고 말았다.
선원들 중에는 가끔 자기가 없으면 배를 운항할 수 없다는 착각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논리가 옳다면 지구상에 움직이는 수만 척의 배는 그가 없는 데도 잘 움직이는 게 설명되지 않는다.
우물 안에만 사는 개구리는 바깥세상을 모르고, 고여 있는 물은 썩게 마련이다. 탈출을 하든지 둑을 무너뜨리려는 시도라도 해봤어야 하지 않겠나? 현실에 안주해 갇혀 살지 말고 가끔씩이라도 맑은 눈으로 세상을 크게 보려는 노력이라도 해 보자는 뜻이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의 내용이 ‘라떼’가 대부분이라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통렬한 고백을 통한 자기반성의 일환이라는 관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는 있겠다.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는 시대의 흐름 속에 해외로 일자리를 옮겨 다양한 인종이 공존하는 사회에 진입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적응하는데 필요한 작은 조언이라도 해 주고 싶은 마음도 섞여 있다.
위기 상황을 갑자기 만나면 간접경험이라도 유용할 때가 있는데, 짧은 참고 자료라도 읽어보고 시작하는 게 한결 든든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이라는 비난을 받더라도 다음에는 그동안 내가 만났던 각국 선원들의 특징과 민족성에 대하여 정리해 봐야겠다. 유명한 사람이 아니니 관심을 받을 확률이 낮고, 내가 사는 바다는 돌팔매가 도달할 거리보다는 멀리 떨어져 있으니 안심은 된다.)
배고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원들의 해외 송출이 시작되었고, 선박은 각종 산업의 종합적인 집합체라 그들이 그곳에서 갈고닦은 기술이 경제 개발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건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선원은 기술의 전달자였을 뿐만 아니라 해외 생활의 선행자였으니 그 경험을 장롱 속에 숨겨 놓을 이유는 없다. 그게 후진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면 수치심 따위는 파도 위에 던져 버릴 가치가 충분하다.
윤리 교과서를 쓰는 것도 아닌데 딱딱한 얘기만 계속하다 보니 재미가 없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통선장에서 봤던 장면을 여담으로라도 하고 지나가야겠다.
그날 나는 잇몸이 부어 치과병원에 들렀다가 귀선을 하려고 통선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방금 부두에 도착한 통선에서는 상륙을 하려고 무리 지어 내리고 있는 필리핀 선원들이 있었다.
술집 작부처럼 보이는 아가씨가 나타나 그들 중의 한 명을 골라 노골적으로 유혹을 하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안고 뽀뽀를 하면서 다른 손으로는 선원의 뒷주머니에 있던 지갑을 빼서 자기 가방에 넣는 건 멀리 떨어져 있는 내 눈에도 보였다.
선원은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하고 연락처를 주고받은 후에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떠나갔다. 뭔가 먼저 처리해야 할 다른 볼 일이 있는 것 같았다. 창녀도 하루 벌이는 충분했다고 생각했는지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로 그때였다. 구석에서 눈을 반짝이며 지켜보고 있던 꼬마 하나가 튀어나와 그녀의 핸드백을 낚아채더니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저놈 잡아라!’는 비명이 터지자 주위에 있던 젊은이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뒤쫓았는데 다리가 긴 만큼 속도도 빨라서, 꼬마는 광장도 벗어나기 전에 잡혔고 손가방을 빼앗겼다.
싱거운 해프닝이라고 고개를 돌리려는데, 반전이 일어났다. 가방을 찾았으니 당연히 돌아올 걸로 믿었던 그 청년들이 반대 방향을 향해 더 빠른 속력으로 달려가더니 금방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강한 자만 살아가기에 편리한 세상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는 걸 보여 주는 좋은 예다. 따스한 햇볕을 쬐며 벤치에 앉아 처음부터 끝까지 이 광경을 지켜봤던 늙은 거지가 “이것이 인생이다.(Este es la Vida)” 하고 끌끌 혀를 차며 말했다.
<콜드플레이>의 <만세, 인생이여(Viva, la vida)>라는 노래가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최근에 블랙핑크의 로제가 재해석 편곡해서 불렀다기에 들어보니 내 귀에는 원곡만 못했다. 원시인의 탈을 벗으려면 현대적 감각에 다가가야 하는데 내겐 역시 무리한 일이다.
사람마다 취향은 다르지만 세상이 흘러가는 이치는 비슷하다. 약육강식만이 정답이라면 매머드와 공룡은 아직도 살아남아 세상을 지배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나?
숲 속에는 호랑이만 사는 게 아니라 토끼도 번성하고 있는 걸 보면서도,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기 자녀들이 힘세고 강한 맹수로 자라기를 바란다.
그래서 일본의 <이시이 쥬지(石丼十次)>라는 교육학자는 “자식을 강하게 키우고 싶으면 부모가 일찍 죽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펴기도 했다. 부모의 어중간한 보호와 간섭이 자녀를 약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라도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노벨상 물망에까지 올랐던 극우 작가 <미시마 유끼오(三島由紀夫)>는 “작은 걸 훔치면 좀도둑이 되지만 큰걸 훔친 자는 왕이 된다. 똑같은 살인자라도 감옥에 가는 사람과 전쟁 영웅으로 추앙받는 상반된 결과로 나타난다.” 발상의 전환을 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인간은 삶이 두려워 사회(법)를 만들었다”던 <스펜서>의 주장처럼, 법이란 약한 자들이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단체적으로 만들어 낸 결과물에 불과하지만, 어떤 사회에서도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폭력은 허용하지 않는다. ‘로마에 가면 그곳의 법을 따르라’는 격언과 함께,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꼭 명심해야 할 사항이다.
그러나 가능하면 법으로 해결할 생각은 버려라. 법률 전문가들만 살찌우고 당사자들은 쪽박 차는 게 재판이다. 화해가 최우선이다. 파산을 당하기 싫으면 빚보증 서지 말고 위증죄의 처벌을 면하려면 법정에서 하는 증언은 피하여라.
(이 말들은 모두 성경에 나와 있는 정신이고 가르침이다. 믿으면 좋겠지만, 아니면 교양으로라도 그 책을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그들은 당연히 이미 여러 번 읽고 묵상했다고 믿으니까, 이 부탁은 내 자손들에게만 국한된 건 아니다.)
<손자병법>에 싸우지 않고 이기는 자가 명장이라 했던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차츰 비슷한 방향으로 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도 피할 수 없는 도전을 뿌리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럴 때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싸워야 피해를 최소화하고 승리를 할 수 있는지가 논점이다. 나라나 민족 사이에 벌어지는 대규모 전쟁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 사이의 작은 싸움에 불과하더라도, 작전을 세우고 약간의 요령을 익혀 두는 게 필요하다. 그래서 이기는 방법과 원리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봤다.
(1) 대의명분에서 우위를 점유하라.
(2) 싸움은 성이 났을 때 하는 게 아니고 먼저 기획하고 충분한 준비가 끝난 후에 화난 척하며 시작하라.
(이렇게 하려면 <소시오패스>라는 의심과 비난을 받는 건 피할 수 없겠지만, 약간은 그렇게 보이는 게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가능하면 마음속으로만 간직하고 밖으로는 표시 내지 않는 게 좋다. 재미를 붙여 버릇이 되면 <사이코패스>로 진행될 수도 있고, 그런 평판은 사회생활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약점으로 부각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항상 경계하고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
(3) 싸울 대상은 이길 수 있는 자로 골라라.
(외모는 강해 보이지만 결단력이 부족한 고위직일수록 좋다.)
(4) 약점을 연구하되 확신이 설 때까지는 기회만 노려라,
(5) 머뭇거리지 말고 과감하게 공격하여 짧은 시간 안에 끝내라.
<야인 시대>의 대표적 <소시오패스>였던 김두한이 싸운 방법이며. 위에서 예로 들었던 대학 시절에 내가 이XX에게 흉내 내어 써먹은 수법이기도 하다. 김두한의 별명은 ‘잇뽄(一本)’이었는데, 일본어로 ‘한 방’ 즉 불의의 일격이면 충분했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의 활약을 책으로 읽은 나에게도 많은 참고가 되었다.
글의 흐름에 굴곡이 심해 널뛰기를 하고 있지만, 일관된 주장이 없는 건 아니다. 세상과 싸우려면 기초 체력을 키워 놓는 게 중요하지만, 간절히 이기고 싶으면 더욱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며 기회를 노리다가, 직접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견적을 내 보고 가능하다는 판단이 서면 전광석화같이 결행해야 한다는 게 요지다.
외국인들은 어느 나라 사람이건 우리처럼 약지 못하고 단순하다. 기관실에서 내가 단골로 써먹었던 건, 덩치는 크지만 힘이 약해 보이는 녀석을 골라 공개적으로 팔씨름을 해서 기를 꺾는다든가, 실수를 저지른 놈에게 박치기를 하는 원시적인 수법이었다.
팔씨름은 <힘의 벡터>를 이해하면 훨씬 유리하다. 넘기는 데 중점을 두지 말고 자기 쪽으로 당기는 게 중요한데, 외국 선원들 중에 그 원리를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다. 힘의 우위를 보이는 건 야만적인 일 같지만 약한 자는 강한 사람에게는 복종하게 마련이니 필요할 때가 있다.
박치기는 박은 자보다 박힌 놈이 피해나 아픔이 크게 마련이다. 과학적으로 얘기하면 속도 문제다. 태권도에서 격파를 할 때 부드러운 손이 깨어지지 않고 벽돌이 깨어지는 것과 같은 원리인데, 그런 걸 제대로 아는 놈이면 내 밑에서 일하지 않을 거고 나도 금방 다른 방법으로 바꿨겠지만, 이런 간단한 것도 눈치채는 놈이 없었다.
“내가 잘못 가르쳤고 너는 실수를 했으니 고통도 함께 나누자.”며 박아 버리면, 저 기관장 머리는 차돌이라서 부딪치면 아프다는 생각만 하고 소문은 금방 퍼진다. 그다음부터는 “내기 잘못 가르쳤고”도 끝나기 전에 도망가기에 바쁘다. 살려 달라고 비는 놈도 있었다.
격파 얘기를 하다 보니 훨씬 더 오래전에 선내에서 일어난 해프닝 하나가 생각난다. 그때는 내가 2기사였던 걸로 기억되는데, 저녁 식사 중에 선장이 전날 외출해서 다이아를 샀다고 자랑했다. 아들이 결혼할 예정인데 예비 며느리에게 줄 예물이라고 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다이아몬드는 경도 7이라 파괴할 수 없다는 발언이 문제였다. 옆에서 듣고 있던 기관장이 “그럼 가공은 어떻게 했답니까?”하고 반박을 했던 것이다.
주장과 반박이 거듭되다가 결국은 그걸 쇠망치로 쳐서 시험해 보는 데까지 나아갔다. 결과는 뻔했다. 한방에 박살이 나 버리고 말았다. 한동안 같이 식사도 않더니 화해를 하셨는지는 모르겠다.
하선할 때는 서로 장난치고 웃는 걸 봤으니 기관장께서 대용품이라도 선물했으리라고 짐작은 된다. 멍청하고 한심한 분들이었다고 비웃는 사람도 있겠지만, 무료한 뱃생활이 빚은 파격이었다고 여긴다.
내 나이가 쉰 살쯤 되었을 때, 크레이샤(크로아티아) 출신 젊은 선장 한 놈을 만났는데, 키는 나보다 두 뼘이나 크고 몸무게도 두 배나 되었다. 녀석이 안하무인이고 시건방지기 짝이 없지만 아무리 궁리해도 힘으로 제압할 방법이 없어서 고민하다가 결단을 내렸다.
갑자기 달려들어 불알을 잡고 비틀어 버리기로 했다. 실패해서 그 큰 주먹에 한 대 맞기라도 하면 즉사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엄습했지만 계속 굴욕을 느끼며 살 수는 없는 일이라 과감하게 실행했다. 다행히 덩치 큰 놈이 땀을 뻘뻘 흘리며 살려 달라고 애원했는데, 그 일을 겪고 난 후에는 난폭하던 곰이 순한 양으로 변했다.
지금까지는 개인과의 싸움에 대해 얘기했다면 그건 사소하고 치기 어린 작은 싸움에 불과하다. 정작 어른답고 중요한 싸움은 세상과의 투쟁이다.
개인과 세상과의 관계를 설명한다면서 싸움이나 투쟁 등의 거친 표현을 썼지만, 그건 개인 사이의 싸움보다 더 치열하게 전개해야 된다는 의미일 뿐, 오히려 융화와 타협을 모색할지언정 정말로 싸우라는 뜻은 아니다.
어렸을 때는 내가 반골 기질이 강한 반항아여서 데모를 주도하고 앞장을 서다가 많이 다치기도 했지만, 그건 옳은 일이 아니고 좋은 방법도 못된다.
제도의 허점과 약점을 잘 파고들면 가끔씩 작은 전투에서 승리할 때도 있었지만 세상이 바뀌지는 않았다. 이 사실을 깨닫기 위해 나는 지나치게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다.
살다 보면 분쟁이 없을 수는 없지만 가능하면 피하는 게 상수고, 전투보다는 전략적인 접근을 하는 게 고수다. 어느 쪽이든, 싸움이 시작되었을 때는 위에서 설명한 개인 대 개인의 싸우는 요령이라도 적용해 보면 빠르고 효율적으로 끝내는 방법이 되긴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