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글 씁쓸 메밀묵

묘하게 공허하고 묘하게 고소한 맛.

by 세진

데쳐진 메밀묵을 한 입 먹는다.

탱글탱글한 맛과 동시에 따라오는 맛은, 묘하게 공허하고 묘하게 고소한 맛.

엄청나게 강하게 느껴지는 "건강한 맛"에 씹는 걸 잠시 멈춘다.

씹는 걸 멈추자마자 느껴지는 탱글함.

다시 야금야금 씹는다.

묘한 공허함에 만들어둔 간장을 부어 젓가락으로 휘휘 젓는다.

그리고 다시 한 입.

간장에 짭쪼름함과 메밀묵에 공허하지만 쫀득한 그 맛은,

흔하게 알려진 묵 '도토리묵'보다 맛있게 느껴진다.

어쩌면 도토리묵으로 다져진 입맛이기에,

이렇게 다른 탱글한 묵에 더욱 강한 자극을 받았을지도.

묘하게 비어 있는 공허한 맛이 '자극'으로 느껴질 만큼 색다른 맛.

탱글탱글, 고소한데 뭉쳐진 메밀맛을 음미한다.


나는 이렇게 강한 메밀 맛을 낸 적이 있던가.

묘하게 고소하지만 계속 찾게 되는,

맹한 맛을 사랑한 적이 있을까.

담백이라고 통용되는 맛을 씹으면서.

그동안 지나쳐온 담백함을 다시금 곱씹으며.



어느 날 엄마가 메밀묵을 사오셨다.

도토리묵만 접했던 나로서는, 메밀로도 묵을 만들 수 있나? 싶어서 부엌을 기웃거렸다.

메밀묵은 내 생각보다 훨씬 연한 색깔이었고, 생각보다 더 견고해보였다.


뭐랄까. 두부와 도토리묵보다 견고해보이는 탱글함이라고나 해야 될까.

손가락으로 꾸욱 눌러보고 싶은 걸 참고, 엄마가 데치는 걸 바라보기만 했다. 데치는 과정 속에서도

견고해 보이는 메밀묵을 바라보며, 얼른 데쳐지기만을 기다렸다.

뜨겁게, 적당히 데쳐진 메밀묵을 한 입 먹었다. 간장도 없이.

뜨거운 메밀묵은 생각 외로 무맛이었다.

그러니까, 완전한 無맛이었다.

자잘자잘한 메밀묵 알갱이와 견고해보이는 회색. 기대감과 다른 無맛에 얼어 있을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야금야금 씹을수록 나오는 고소한 옅은 단맛에 결국 한 입 더 먹는다.

아. 이거는 식혀야 돼.


데쳐진 메밀묵을 정갈하게 잘라, 뜨거운 메밀묵이 식혀지기를 기다렸다. 저녁에 메밀묵과 함께 먹을 간장을 만들면서.




메밀묵과 간장으로만 이루어진 반찬.

정교하게 잘린 메밀묵을 와앙.

식혀지니 느껴지는 탱글함과 고소함.

메밀에서만 알 수 있는 특유의 메밀맛이, 고소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옅은 씁쓸함마저도 상쇄시킬 수 있는, 고소하고 쫀득한 메밀묵.

이후 간장을 찍어먹으나 느껴지는 감칠맛. 결국 남아 있는 간장을 메밀묵에 부어 감칠맛과 메밀묵의 쫀득함을 즐긴다.


메밀묵을 다 먹으며, 다시는 이런 맹한 맛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다음날이 되니 어김없이 생각났다. 남겨져 있는 메밀묵을 보며, 하루하루 사라지는 메밀묵을 보며 아쉬움을 느꼈다.


도토리묵과 다른 메밀묵만의 강점은 아무래도 '맹-한' 無맛과 쫀득하게 어우러지는 묵의 탱글함인 거 같다. 거기다 도토리묵에서는 볼 수 없는 옅은 씁쓸함과 특유의 쫀득한 고소함까지.

메밀묵을 간장에 버무리면 간장의 감칠맛까지 느낄 수 있으니. 담백함과 감칠맛을 동시에 느껴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를 맛 보게 된다.


맹한 도토리 묵을 먹을 때면, 쫀득함에 입안이 빼앗긴다.


맹한 무맛을 감싸안을 만큼 단단한 쫀득함은,

어쩌면 견고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 때 담백한 것을 찾고 즐기던 내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자극적인 맛에 밀려버린 쫀득한 묵을 쿡쿡 찔러보며. 다시 담백함을 좋아하기 위한 노력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담백함은 별 거 없는 거 같다고.

결국 옅게나마 느껴지는 맹한 작은 맛을 사랑하는 거 같다고.

그러니까, 결국 나는 담백함이 싱겁지만 강하다고 생각했다.

뭐, 어떻게 보면 어떤 거를 위해 달려가는 과정 속 좌절도, 담백하고ㅡ 견고하고 ㅡ 그런 거 아닐까. 마치 메밀묵 같이 말이다.

나는 내가 그동안 달려온 과정들이 그저 담백한 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 때 주저 앉아 찾았던 건 매운 음식이기는 했지만, 정작 나를 포근하게 감싸안아줬던 건 담백했던 무언가의 맛들이니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줬던 것은 자극적이지 않은 작은 감칠맛이니까.

결국 그렇게 일어난 탱글함이, 그 견고함이

다시 일어나는 장치가 되지 않았을까.

앞으로 다가올 담백하지만 재미 없는 시간들은, 결국 메밀묵 같이 건강한 것들이겠지.

그걸 즐겨야 건강에 좋겠지.

그리고, 건강한 맛을 품고자 하는 누군가가 찾아오는 맛이 되겠지.


사실 나는 그래서 담백함을 사랑하는 거 같다.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고, 속이 다치지 않으니.

그래서 이 글을 읽는 이들도,

무언가를 대할 때도,

무언가를 볼 떄도,

옅은 담백함이 있기를 바라는걸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적고 메밀묵을 다시 먹었다. 너무 심하게 데쳤더니, 탱글은 물렁이 되고 옅은 씁쓸함은 퍼지는 쓴 맛이 되었다.


아. 써.


간장을 바로 부어버렸다.


너무 데쳐서, 퍼져버린 묵을 보며.

기존보다 심하게 쓴 메밀묵을 바라보며,

탱글이 아닌 물렁을 삼야 했다.


담백함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쓴 맛은

의외로 쉽고 의외로 별로였다.

다음에는 적게 데쳐야지.


깊은 쓴 맛이 아닌 옅은 쓴맛만이 괜찮다는 걸 알아야지.

탱글 - 견고한 과정에서

깊은 쓴맛은 없도록 해야지.


그러니까 다음에는 적게 데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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