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한 입에 와앙 먹어버리던-
한 손에 쥐어지는 자그마한 풀빵.
호호 불어서 한 입에 넣거나,
그 작은 거를 베어 먹고는 했다.
찹쌀이 들어가서 더욱 쫄깃하고 맛있던 풀빵.
귀하기보다는 희귀했던 풀빵을 맛보면서
다음번에도 사 먹을 날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요즘따라 보이지 않는 풀빵.
종이봉투 속에 쥐어지던 풀빵을 떠올려보기만 한다.
다시금 한 입 먹고 싶어진다.
어린 시절 - 내가 맛보았던 가득했던 풀빵을.
이제는 너무나 머네.
그게 무엇이든.
겨울은 붕어빵의 시대라고 하던가. 나는 이상하게도 붕어빵에는 손이 잘 안 간다. 겨울의 간식은 붕어빵이라고 하지만, 요즘들어서는 붕어빵을 결제하기 위해 현금을 내밀기가 쉽지가 않아졌다.
어릴 때는 붕어빵을 꼭 꼬리부터 먹으려고 했었다. 바삭바삭한 - 붕어빵 꼬리를 먹을 때만 붕어빵을 제대로 즐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성인이 되어서부터인가. 어느 순간부터는 붕어빵에 돈을 내는 것이 꺼려지게 되었다. 아무래도 계속해서 올라가는 가격 때문에, 가벼운 저항심이 생긴 것도 있지만.
비싼 가격을 지불했음에도 맛없는 붕어빵을 많이 맛보았기 때문에 그런 거 같다.
이러한 가벼운 저항심과, 또 붕어빵 맛집은 실패할 거 같다는 생각으로 인해
오늘도 붕어빵 가게를 지나치고는 했다.
그러던 요즘 붕어빵 가게를 살피면서도 풀빵을 살펴보게 되었다. 국화빵이라고 불리는 이 빵.
찹쌀이 들어가서 붕어빵보다는 쫄깃거리면서, 팥에 은은한 단맛은 더욱 강조되던 맛.
몇 주 전부터 국화빵이 먹고 싶어서, 붕어빵 가게로 보이는 곳에서 풀빵도 같이 파는지 찾았지만
언제나 허탕. 결국 붕어빵 가격만 살펴보면서 나가는 사람이 됐다.
나 같은 사람들이 꽤 많은지, 국화빵이나 풀빵을 검색하면 파는 곳이라는 검색어가 나온다.
'국화빵 파는 곳' '풀빵 파는 곳.'
이제는 어디서도 잘 흔하게 팔지 않는 풀빵. 왜 소비가 없어진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쫀득하면서도
한 입에 들어갈 듯 작은 풀빵의 맛이 참 좋았다.
어릴 때 엄마나 아빠 손을 잡고 붕어빵 가게를 지날 때면, 무조건 나는 풀빵을 사달라고 했다.
붕어빵이 먹고 싶지 않냐고 물었지만 언제나 도리도리.
가끔 엄마나 아빠가 드시려고 붕어빵을 살 때면, 나는 무조건 "풀빵 주세요" 말하곤 했다. 그 작은 봉투에 가득 담겨 있는 풀빵을 볼 때면 세상을 가진 듯 행복하게 웃고는 했다.
한 손에 들어가는 매우 작은 풀빵을 호호 불고, 한 입 베어 물면서 마음껏 풀빵을 즐기고는 했다. 가끔씩 몇 개 남지 않은 경우에는. 한 입에 와앙 넣어 행복을 누리고는 했다.
그 때 지나가던 겨울 거리는 지금보다 - 더 따뜻하게 보였던 거 같다.
실제로 더 따뜻했던 겨울 거리 - 였을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알 거 같다.
어린시절 풀빵을 쥐던 내가 바라본 겨울은 꽤 따뜻했다는 것을.
지금은 그렇게 한 입에 와앙 - 먹을 수 있는 풀빵을 쉽게 구하지 못할 정도로,
시대가 많이 변했음을.
그렇게 먹고 싶지 않던 붕어빵도 쉽게 결제할 수 있을 만큼
가벼운 물가가 아님을.
바뀌는 물가, 바뀌는 변화 속에서
문득 풀빵을 떠올려 본다.
어린 시절, 그렇게 맛있게 먹던 풀빵 맛은 지금도 같게 느껴질까.
글을 적으면서 서울에 파는 '풀빵 파는 곳'을 검색해 본다.
어디 한 번 - 청춘을 갈아서 한 번 시간 낭비를 해볼까. 풀빵 한 입을 먹어보고 싶어 '풀빵 파는 곳'이라고 뜨는 곳에 길 찾기를 해본다.
그러기에는 마음에 걸리는 내 시간.
아주 어리던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기 위해 달려가고 싶은, 풀빵 파는 곳은
너무나 멀어서.
망설여지는 시간과, 추운 겨울 날씨로 인해 바라만 본다.
한입 가득 와앙, 넣어볼 만큼 나는 간절히 풀빵을 원하고 있을까.
멀어서까지 찾아가고 싶을까.
정답은 잘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 따뜻하게 느껴지던 길거리 속 - 에서 맛보았던 풀빵을
다시금 먹어보고 싶다.
풀빵과 같이 속이 가득 차 있는 - 속이 차 있으면서도 쫀득거리는 맛을 가진 간식을 먹으며
겨울을 실감해보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