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국민의 80%가 가톨릭이란 통계를 나는 믿지 않는다.
무리요 광장
스페인의 식민도시들은 광장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광장은 정 사각형이며, 그 주위에 총독관저. 성당. 행정기구. 군사시설 등 권력이 포진해 있다. 도시의 중심은 이 광장이다.
그래서 남미 여행은 구 시가지 중심 광장에서부터 시작된다.
볼리비아 라파즈도 그렇다.
그 중심에 무리요 광장이 있다. 대통령궁이 있고, 국회의사당 그리고 대 성당이 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그러나, 광장에는 관광객이 별로 없다. 현지인들 뿐이다. 광장이 너무 협소하고 주변에 즐길만한 것들이 없다. 그래서 여행자들은 광장 주변이 아니라 마녀시장으로 모여든다.
파라즈의 마녀시장은 우리의 이태원이다. 여행자들의 거리이다. 여기가 여행자의 메카이다. 라파즈 여행의 원점이다.
마녀시장에서 마녀를 팔지 않는다.
소 시장에서 소 판다. 수산물 시장에서 수산물 판다. 금 시장에서 금 판다.
그런데
마녀시장에는 마녀를 팔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엔 그냥 시장이다. 하지만 하늘에 걸린 원색의 우산들 아래 시장통에 들어서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있다. 여기는 전통과 현대가 절묘하게 공존하는 공간이다.
마녀시장은 샤먼들의 공간이었던 것 같다.
처음엔 마녀들을 위한 물건들을 파는 시장이었고, 그래서 샤먼들이 머무는 장소였을 것이다. 지금도 일부이긴 하지만 시장엔 말린 동물의 사체를 걸어놓고 파는 가게들이 꽤 있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병을 치료하는 의식이 있기도 하다.
시장 대부분은 관광객을 위한 상점들이다. 하지만 기념품 가게만 있는 게 아니다. 음악도 있다. 전통 악기도 팔고 연주하기도 한다. 다양한 식당도 있다. 동양적인 메뉴들을 자랑한다. ATM기계들이 많다. 골목길을 따라서 현지 여행사들이 줄지어 있다. 환전소도 있고 호텔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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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오들이 입고 있는 종교의 옷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볼리비아는 인구의 80%가 로마 가톨릭이라고 한다.
난 이 정보도 통계도 믿지 않는다.
인디오들 가운데 일요일에 성당에 가는 사람이 국민의 80%에 이르지 못한다. 얼마 안 된다. 인디오들에겐 마녀가 친숙하다. 아직도 그렇다. 우리가 추석날 달보고 소원을 비는 것이나 똑같다.
인디오들은 부족마다 각자의 신앙이 있었을 것이다. 수천 년을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오래전 우리의 전통마을처럼 마을마다 무당이 살고, 그 무당이 점을 치고 병을 고쳤을 것이다.
잉카가 왔다.
기존의 종교를 버리라고 한다. 그러나 버릴 수가 없다. 인디오들은 자신의 전통 종교 위에 잉카의 종교를 하나 더 입는다.
잉카가 무너질 만했는데 이번엔 스페인이 왔다.
스페인은 기존의 모든 종교를 벗어 버리고, 가톨릭의 옷을 입으라고 한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다. 남미인디오들은 잉카의 옷 위에 스페인 옷을 하나 더 입는다.
결국 인디오들은 세 겹의 옷을 입게 된다.
하지만 날이 조금 더워지면 옷을 벗어야 한다. 옷을 벗을때는 역순으로 벗게 된다. 가장 먼저 버리는 것이 스페인의 가톨릭이다. 다음이 잉카의 태양신이다. 그러면 남는 것은 수천 년 전 조상들이 믿었던 원시 종교로 돌아가게 된다. 안데스의 산신령이다.
원시 종교는 동물이다. 토템이다. 우리도 단군신화에 동물이 나온다.
안데스 인디오들은 그래서 지금도 특정 동물들을 신성시한다.
마녀시장에는 동물들 사체가 즐비하다. 마녀들은 그 동물들의 사체를 벽사진경 辟邪進慶. 사귀를 내 쫒고 경사를 맞는 그 신비로움의 도구로 활용한다.
때가 어느 때인데 지금도 동물이 사체를 이용해 복을 받겠다고... 나그네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멈칫한다.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정치인 경제인은 물론이고, 일반인들 까지도 역술인에게 휘둘리는 것이 사실로 확인되는 마당에...
아모르파티
신은 죽었다. 그래서 이제 너의 인생을 지배하는 것은 더 이상 신이 아니다.
너의 미래는 너의 운명이 결정한다. 그러니까 신을 찾지 말고 차라리 너의 주어진 운명을 사랑하라. 아모르파티.
같은 음식을 먹었는데 누구는 배탈이 나고 누구는 멀쩡하다. 꼴 같지도 않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졸부가 된다. 정말 건강했는데 갑작스레 험한 질병에 걸린다.
인생은 노력의 결과도 기도의 산물도 아니다. 운명이다.
어린 라마의 말린 시체에게 마녀가 축복하고 그것을 나에게 준다고 해도. 그리고 내가 그것을 제물로 신에게 바친다고 해도 나의 인생은 달라지지 않는다.
마녀여 너는 아는가.
운명을 바꾸어 달라고 그 신에게 비느니 차라리 운명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그 운명을 따라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 내는 것. 그것이 행복이 아니겠는가.
마녀시장의 마녀에게 니체의 말을 전하려다 참았다.
그것 마져 없다면. 그 저급한 희망마져 없다면. . . 생각해 보니 그것도 맞다. 마녀에게 복채를 내고 마음의 안식을 얻는다면 그것도 행복일 수도 있겠다. 진정한 신을 알게 될때 까지는. . . .
13 Feb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