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철 교수는 『피로사회』에서 21세기의 사회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이행했다고 진단한다. 규율사회는 억압을 통해 광인과 범죄자를 만들어내는 부정성의 사회였다면, 성과사회는 그 억압에서 벗어난 대신,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개인들을 통해 우울증과 낙오자를 양산하는 긍정성의 사회다. 성과사회의 주민인 ‘성과 주체’는 자율과 자유를 누리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강제하고, 결국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한병철은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소진증후군 등 현대의 대표적인 정신 질환들이 긍정성의 과잉에서 비롯된 병리적 현상이라고 본다. 이와 같은 통찰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긍정의 배신』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는 미국 사회에 만연한 ‘긍정주의 문화’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현실을 외면하게 하고,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지를 비판한다.
“긍정적 사고는 시장경제의 잔인함을 변호한다.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그 실체다.”
애런라이크는 외부로부터 강요된 낙관주의가 개인을 억압하고 고립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본다. 반면, 한병철은 이러한 낙관주의가 내면화되어, 개인이 자발적으로 자기 자신을 끝없이 몰아붙이게 되는 ‘지배 없는 착취’의 구조로 바뀌었다고 진단한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문화권, 학문적 배경을 지녔지만, 모두 ‘긍정성’이라는 이름의 현대적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사람들을 병들게 하는지를 정확히 짚어낸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피로사회’ 속에서도 사람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유행한 “YOLO(You Only Live Once)” 문화다. 순간의 즐거움을 중시하고, 효율성과 생산성보다 삶의 실질적 만족에 가치를 두는 태도는 과도한 성과 중심 문화에 대한 무언의 저항이자, 대안적 삶의 방식으로 읽힌다.
한병철은 피로사회를 견디는 또 다른 방식으로 ‘심심함’의 가치를 강조한다. 그는 “잠이 육체적 이완의 정점이라면, 깊은 심심함은 정신적 이완의 정점이다”라고 말하며, 심심함을 “속에 가장 열정적이고 화려한 안감을 댄 따뜻한 잿빛 수건”에 비유한다. 이는 단순한 나태가 아니라, 오히려 내면을 회복하고 정리하는 적극적인 쉼의 상태로 해석된다. 실제로 ‘멍 때리기 대회’가 열리고, 일부 전문가들이 멍 때리기를 ‘뇌의 효율적인 재정비 시간’이라고 평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대인이 자발적으로 멍 때리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신경성 질환을 치유하기 위한 사회적 몸부림이라 볼 수 있다.
『피로사회』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핵심을 꿰뚫는 책이다. ‘자기 착취’, ‘긍정성의 폭력’, ‘우울증의 사회적 기원’ 등 이 책이 다루는 개념들은 우리 각자가 일상에서 경험하고 있는 현실의 얼굴이다. 이 책은 ‘이 피로의 시대에, 나는 어떤 방식으로 버텨야 하는가’라고 스스로 묻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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