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출범한 새 정부에서 기획재정부의 기능을 분리한다고 한다. 장관이 부총리를 겸임하고 있는 기획재정부는 1961년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로 시작해, 1994년 이를 통합한 재정경제원에서 다시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로 분리되었다가 2008년 기획재정부로 통합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예산 업무를 국무총리실로 이관한다는 뉴스를 접하고, 현재 한국정책방송원(KTV)의 예전 기관 중 한 곳에서 근무했던 1993년 당시, 경제기획원과 관련된 개인적인 경험을 기록해 두었던 것을 끄집어냈다.
두 사람이 겪은 1993년의 ‘예산투쟁’
<실무자>
대한민국은 싱가포르, 홍콩, 대만과 함께 신흥공업국가로서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뤄왔다. 이러한 발전의 배경에는 민·관·군이 혼연일체가 되어 노력한 결과가 있었고, 특히 정부 기관, 그중에서도 경제기획원의 역할이 컸다. 경제기획원은 국가 경제 운영의 중추적인 기관으로, 장관이 부총리를 겸임할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관이 행정 조직 개편 논의 때마다 해체 대상으로 거론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얼마 전 경험한 한 사건이 그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중앙부처 산하기관에서 예산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우리 기관의 연간 예산 중 10%를 절감하여 사업을 추진하다 보니, 연말이 되자 시급한 현안사업 추진을 위한 예산이 부족했다. 절감한 예산의 일부를 해제해 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해 과장과 함께 경제기획원을 방문했다.
오후 3시경 도착한 경제기획원의 해당 과는 사무실 개편 공사 중이었다. 의자 몇 개만 놓여 있었고, 전화기는 바닥에 내려져 있었다. 과장은 밤새 야근을 했는지 의자를 이어 붙여 길게 누워 있었다. 우리 과장이 “안녕하십니까? 예산 문제로 찾아뵙습니다.”라며 정중히 인사했지만, 그는 몸을 일으키지도 않은 채 몇 마디를 주고받더니 “ㅎ 사무관에게 말씀하세요.”라는 짧은 대답만 남겼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경제기획원이 역시 막강하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같은 공무원에게조차 이럴진대, 일반 국민들에게는 과연 어떠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결국 담당 사무관을 기다려 자료를 제출하고 해제 요청 사유를 설명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우리 기관장이 직접 자기네 국장을 찾아가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원론적인 조언뿐이었다. 우리는 실질적인 해결책을 얻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경제기획원은 모든 기관의 사정을 일일이 배려할 여유가 없을 것이다. 국가 재정을 철저히 통제해야 하는 책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왜 일을 하려는 사람을 북돋아 주기는커녕, 모욕감을 느끼게 만드는가’라는 점이었다. 절감 예산을 일부 되돌려 받아 사업을 원활히 수행하고자 하는 것이 과연 부당한 일인가? 예산으로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라도 한단 말인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어렵습니다.’라는 합리적인 설명조차 들을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같은 행정 서비스에 종사하는 입장에서, 국민을 위한 봉사를 지향한다면 최소한의 존중과 배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내가 경험한 사례 하나만으로 경제기획원을 단정 짓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일 것이다. 그러나 공적인 자리에서 이루어진 공식적인 만남이었기에, 이러한 태도가 경제기획원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무관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돌아오는 길, 30년 공직생활 중 15년 이상을 ‘예산 투쟁’에 매진했다는 과장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그의 태도 속에서 긴 세월 동안 다져진 묵묵한 인내가 느껴졌다. 나는 그가 겪어온 수많은 싸움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우리 부처 본청의 예산 담당 직원들만큼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로 다짐했다. 내가 오늘 하루 겪은 일을, 그들은 일상처럼 보고 느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변화가 필요하다. 공직자들이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 국민에게 신뢰받을 수 있는 행정 서비스가 정착되는 날을 바라며, 나는 내 자리에서 묵묵히 나아가기로 했다.
<과장>
경제기획원을 떠올리면 아직도 치가 떨린다. 쌓이고 쌓인 원한 때문인지, 때때로 "갈아 마시고 싶다"는 말의 의미를 몸소 깨닫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관련 간행물을 긴급하게 제작해야 하는 상황에서 예산 확보를 위해 경제기획원을 찾았다. 하지만 문전박대를 당했다. 공문서를 들고 먼저 찾아간 직원이 현관에서 한참을 서 있었지만, 말조차 붙이지 못하고 쫓겨난 것이다. 그렇게 과장이 오길 기다리며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애써 정중한 태도를 유지하며 담당 과장을 찾았다. 인사부터 공손히 건넸다. 그러나 내 말을 듣기도 전에 그가 내뱉은 첫마디는 “사무관께 설명하세요.”였다. 그는 여전히 편안한 자세로 누워 책을 읽고 있었다. 귀찮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름 각오하고 왔지만, 순간적으로 얼굴이 화끈거렸다. 비럭질하러 온 거지에게도 이렇게 무례하게 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같은 공무원인데, 나 역시 과장인데’하는 기대가 너무도 순진했다는 것을 또다시 깨닫는 순간이었다.
개인적인 일이라면 눈앞에서 침이라도 뱉고 돌아섰을 것이다. 하지만 후환을 고려해야 했고, 국가적 사안을 사사로운 감정으로 망쳐서도 안 되었다. 그래서 수모를 참고 오로지 기분을 거스르지 않도록 신경 쓰는 내 모습이 처량하기만 했다.
공직생활 30년 동안 절반은 경제기획원을 드나들었다. 그나마 처세를 잘한 덕분인지, 예산 확보만큼은 평년작을 상회했다고 자부했다. 공무원들에게 ‘예산투쟁’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쓰이는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오뉴월이면 예산 관련 부서는 더욱 뜨겁게 달아오른다. 그때 경제기획원의 각 방에서 벌어지는 풍경은 전쟁터 그 자체다. 낮은 물론 밤에도 열기는 식지 않는다.
인생에서는 과정이 중요하지만, 예산투쟁에서는 오직 결과만이 중요하다. 담당자는 온갖 수모를 감내하며 뛰어다닌다. 성과가 없으면 노력하지 않았거나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더더욱 자존심을 접고, 아첨까지 서슴지 않으며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발버둥을 치게 된다.
그냥 돌아설 수는 없었다. 사무관을 찾아가 다시 설명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냉정했다. “과장님이 오셨으니 설명은 듣겠으나, 예산을 올리지는 않겠습니다.” 사전 협의 없이 착수한 사업이므로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이었다. 필요하면 기관장이 직접 국장을 찾아가 설명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한심한 노릇이었다. 우리 모두 나라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 필요한 시기에 홍보를 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면, 경제기획원은 필요한 예산안을 검토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다. 하지만 이는 그저 내 안에서만 맴도는 말이었다. 함부로 내뱉을 수도 없었다. 높은 사람을 불러들이는 일에는 거리낌이 없으면서, 우리는 그들의 말을 아무 불편함 없이 들어야 하는 현실이 씁쓸할 뿐이다.
그러나 세상을 둘러보면,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도 나라 일을 위해서는 더한 일도 참고 웃으며 견디지 않는가. 겨우 이런 일로 감정을 드러내서야 되겠는가 하고 나 스스로를 다독였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말처럼, 그들은 예산을 쥐고 권세를 부리는 자리에서 태어났고, 나는 그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것뿐이다.
최근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뉴스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이를 보며 나는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힘이 있어야 한다.’ 예산 확보라는 지난한 과정에서 겪은 수모를 떠올리며, 어쩌면 이 모든 것이 필연적인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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