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8일(수)
오전 9시, 산부인과로 전과했다.
남는 방이 없다고 해서 선택지 없이 1인실로 배정됐다.
다른 산모들을 보면
심적으로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곧바로 투약이 진행됐고 이내 진통이 시작됐다.
우린 유도분만의 형태를 선택했기에
나는 이날 하루 종일 진통을 겼었다.
그런데 왜일까?
이상하게 이 날따라 안부전화가 많이 왔다.
진통이 없을 땐 괜찮은 척 대화하다
진통이 시작되면 결국 오열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있는 걸까?
임신 중 갑자기 병과 함께 하반신 장애가 생겼고
이 장애를 채 받아들이기도 전에
배속 아이에게까지 치명적 기형이 있어
자의로 보내야 하는 상황이라니...
내 병과 치료가 아이한테 해가 된 건 아닐까?
교수님들은 아닐 거라고 하시는데...
그럼 대체 왜?
우리에겐 유적적 이슈도 전혀 없는데...
수많은 의문을 해결하지 못한 채
진통을 겪고 울기를 또 반복한다.
그리고 밤 10시경
극심한 진통이 찾아왔는데
나는 그것을 약의 부작용 복통으로 여기고 참다가
병실에서16주 차의 작은 아이를 출산했다.
나는 절규하며 남편을 불렀고
남편은 의료진을 부르러 밖으로 뛰쳐나갔다.
빨간 무언가가 얼핏 보였고
간호사님들의 보지 말라는 외침과 함께
나는 침대채로 수술실로 실려갔다.
아기가 빠져나간 자궁의
후처리를 위한 시술을 진행한다는 설명과 함께
진정제가 들어간다.
이후 의식은 몽롱해졌고 기억은 흐려졌다.
2024년 12월 19일(목)
일어나니 아침이다.
간호사님이 들어와서 가슴에 압박붕대를 매 준다.
이렇게 안 하면 젖이 돌 수도 있단다.
병실에 드는 햇빛이 괜스레 원망스럽다.
기분은 처참하고 몸도 찢어질 것 같다.
남편에게 어제 잠든 이후의 일을 묻는다.
그는 내가 약에 취해 잠든 사이
조용히 아기의 장례를 치르고 왔다고 한다.
남편과 의료진들은
내가 정신적으로 무너질까 염려됐는지
아기와 나를 최대한 분리시켰다.
아가야, 미안해...
나는 너와 마지막 인사도 못했구나...
병실 침상에 누우니
TV 소리만이 적막을 채운다.
미역국으로 아침식사를 마치니
교수님이 회진을 오셨다.
간단한 경과 및 안내를 듣고
3~4시쯤 재활과로 다시 전과하기로 한다.
당분간 재활은 몸에 무리가지 않는 선에서
복압을 너무 올리지 않는 동작 위주로 하자고 하신다.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은 마음과
마음에 뚫린 구멍과는 별개로
시간은 흘러가고 일상은 시작된다.
2024년 12월 20일(금)
재활의 챗바퀴가 다시 굴러가기 시작한다.
제법 오랜만에 치료실로 출근한다.
조금 친해진 환자 및 보호자분들이
어디 갔다 왔는지 안부를 묻는다.
"잠시 다른 과에 진료받으러 갔다 왔어요."
어색하게 웃고 다른 주제로 말을 돌린다.
치료사쌤들은 내 사정을 아셨기에
위로의 말을 건네주시는 분도 계셨고
최대한 모른 척해주시는 분도 계셨다.
두 가지 위로 방식 모두 참으로 고마웠다.
살면서 언제나
긍정적으로
활기차고
재밌게 살고자 노력했는데
이 영문모를 병도
어떻게든 버티고
웃으면서 극복해보려고 했는데
치사량을 초과한 시련 속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