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서평] 트러스트/ 에르난 디아스

by cm

오늘 서평해볼 책은 에르난 디아스의 소설인 <트러스트>입니다. 이 소설은 2023년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소설입니다. 이 책은 여느 소설과는 다른 치밀한 구조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죠. 어떠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트러스트>는 20세기 초, 경제적 붐과 대공황이 교차하는 뉴욕 월스트리트를 배경으로, 억만장자 앤드루 베벨과 그의 아내 밀드레드의 삶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책이 가지고 있는 특징과 힘은 줄거리와 소재가 아닙니다. 이 소설의 진짜 힘은 ‘진실’과 ‘이야기’의 본질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서술 구조에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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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스트>는 네 개의 서로 다른 시점과 형식으로 같은 인물과 사건을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첫 번째 파트는 소설 속 소설인 <채권>에서 시작합니다. 여기서 주인공은 벤저민 래스크라는 이름으로, 금융 세계에서 성공과 고독을 동시에 경험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두 번째 파트는 앤드루 베벨 본인이 직접 쓴 미완성 자서전이고, 세 번째 파트는 베벨이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해 고용한 젊은 여성 아이다 파르텐자의 회고록, 마지막 파트는 밀드레드 베벨이 남긴 일기장입니다.


이 네 가지 시점은 각각의 진실을 주장하지만, 동시에 서로를 부정하고 교차하며, 독자는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허구인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됩니다. 게다가 소설 후반부로 갈수록 밀드레드의 목소리가 점점 드러나면서, 남성 중심이었던 소설의 서사 속에서 지워졌던 여성의 삶과 고통, 그리고 권력의 이면이 드러납니다. 이는 단순히 금융과 자본, 성공의 신화를 해체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누가 주장했고, 누가 침묵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독자들이 진실을 찾기 더욱 어렵게 만듭니다.


저자인 디아스는 “진실은 언제나 누군가에 의해 왜곡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만이 남는다는 냉혹한 현실을 소설의 다층적 구조를 통해서 드러냅니다. 독자는 각기 다른 목소리와 서술 속에서 ‘신뢰(Trust)’란 무엇이며, 우리가 믿는 이야기와 역사는 얼마나 불완전한지, 그 틈을 집요하게 들여다보게 됩니다.


이 책은 한 편의 미스터리처럼 각기 다른 단서와 조각을 맞추며 독자들이 진실에 다가가도록 유도합니다. 마치 추리소설처럼 말이죠.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독자는 결국 “진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 다시 서게 됩니다. 이 소설은 “진실은 존재하겠지만, 어디선가는 분명히 왜곡될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만을 정확하게 알려줍니다.


<트러스트>는 자본과 권력, 신뢰와 진실, 그리고 이야기의 힘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한 시대의 금융 신화를 넘어, 우리가 믿는 ‘이야기’의 본질과 진실을 이 소설은 다시 묻고 있습니다. 독자에게 진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에서 끝없이 질문을 던지고 구분할 수 없게 만들죠. 독자의 입장에서는 작가의 의도를 꿰뚫고 진실을 찾고싶게하는 도전의식을 부여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현실은 무한한 예산을 갖춘 허구다. 바로 그거야. 그럼 현실의 자금은 어디서 날까? 또다른 허구에서 나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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