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증명이 주는 압박감
내용증명을 받았는데, 어떡하죠?(1) 편에서, 내용증명은 약간 특수한 기능을 가진 편지에 불과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또한 내용증명을 보낸다고 해서 발송인에게 권리가 발생하거나, 수신인에게 의무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내용증명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첫째, 내용증명은 상대방을 압박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A와 B가 친구인데, 실제로 B가 A의 돈을 빌렸다고 가정합니다.
이 경우 A는 B에게 만나서 "빨리 돈 갚아!"라고도 할 수 있고, 카카오톡으로 재촉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B 입장에서는 평소에도 친구 A와 만나고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해왔기 때문에, 큰 부담을 느끼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B가 집배원으로부터 '귀하는 몇 월 며칠 본인으로부터 100만 원을 빌렸으나, 현재까지 갚지 않고 있다. 이 내용증명을 받은 날로부터 일주일 내에 100만 원을 갚아라. 그렇지 않으면 필요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라는 내용증명을 받게 된다면, 아무래도 같은 뜻이라도 그 무게감이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이에 더해, 만약 A가 변호사를 고용하여, 변호사가 A의 법률대리인으로서 해당 내용증명을 작성 및 발송한다면, B 입장에서는 훨씬 더 압박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내용증명을 받는 즉시 A에게 100만 원을 송금해 줄지도 모릅니다.
둘째, 소송 단계에서 입증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내용증명은 당사자 일방이 단독으로 발송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없던 권리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판결을 하는 재판부 역시 누구보다 이를 잘 알고 있고, A가 발송한 내용증명에 A에게 유리한 사실이 기재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A의 주장을 인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재판부에서 분쟁의 사실관계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건 당사자들이 주고받은 내용증명을 통해 사건에 대한 당사자들의 입장은 무엇인지, 어떠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만약 B가 A에게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내용의 답변 내용증명을 보낸 사실이 있다면, 재판부 입장에서는 '아, 100만 원을 빌린 것은 맞구나'하고 사실관계를 파악할 것입니다.
이처럼 내용증명은 추후 진행될 수 있는 소송 단계에서 제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재판부 역시 이를 참고하여 사실관계 판단 및 확정을 할 것이기 때문에, 소송 전에 주고받는 서신이라고 해서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셋째, 실질적인 법적 효과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아무 경우에나 권리 및 의무가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일정한 요건을 충족할 경우, 그와 같거나 비슷한 효과가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민법 제387조 제2항입니다.
제387조(이행기와 이행지체) ②채무이행의 기한이 없는 경우에는 채무자는 이행청구를 받은 때로부터 지체책임이 있다.
이와 같이 변제기를 정하지 않은 채무를 '기한의 정함이 없는 채무'라 하는데, 기한의 정함이 없는 채무는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이행하라'는 내용의 청구를 한 때에 변제기가 도달합니다.
위 예에서, A가 B에게 100만 원을 빌려준 것은 맞지만, 변제기(언제까지 갚아야 하는지)는 정하지 않았다고 합시다.
이러한 경우라면, A가 B에게 '갚아라'는 의사표시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직 변제기가 도래하지 않은 상황이므로 B가 A에게 지연 이자를 줄 의무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A가 B에게 '갚아라'는 의사표시를 하면, 그 의사표시를 한 날이 변제기가 되고, 그날까지 갚지 않은 채로 다음 날이 되면 채무를 연체한 것이 되며, 갚을 때까지 지연이자가 붙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