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3)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서 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근원을 따지다 보니 어릴 적 경험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아빠가 회사에서 대만지점으로 발령이 나게 되면서 우리 가족이 모두 대만으로 이사를 가서 3년 동안 거주하게 되었다. 처음엔 막연히 해외에서 살게 된다는 사실에 설레고 들떴지만 어린 나이에 맞이하게 된 현실의 벽이 만만치 않았다. 중국어를 거의 모르는 상태에서 국제학교가 아닌 대만 원주민 초등학교를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어는 대만 발령이 확정된 후 부랴부랴 몇 달간 종로 어학원에서 초급반 학원을 다닌 것이 전부였는데, 학업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친절했지만, 나의 중국어 실력 향상을 위해 담임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나와 영어로 대화하지 말 것을 주문하였다. 전학 첫날 외국인 학생에 대한 호기심에 말을 걸던 아이들은 불과 며칠 만에 관심이 시들어서 각자의 일상을 보냈다. 언어의 장벽으로 수업 시간뿐 아니라 떠들썩한 쉬는 시간에도 선생님과 아이들의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자리에 가만히 그들을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물론 영어, 수학, 예체능 시간에는 수업에 동참할 수 있었지만 국어, 사회 및 기타 모든 시간에는 그저 앉아만 있을 뿐이었다. 한 학기 동안 주변 학우들과 단절된 채 지냈고 이 때도 나는 우울증에 걸려 묵묵히 등교를 하는 와중에 죽는 것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며 살았다. 다행히 아직 어렸던 나는 한 학기 동안 묵언수행하면서도 중국어를 빠르게 익히게 되었고, 전학 후 두 번째 학기가 될 즈음에는 친구들과도 대화하면서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적응의 어려움은 대만 중학교를 가면서 다시 한번 맞닥뜨리게 되었고 같은 반 친구들과의 교제는 문제없었으나 아무리 열심히 해도 늘 실망스러운 국어, 역사 등의 과목 때문에 나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늘 의기소침하게 지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선생님 말로는 대만에서 적응이 어려웠던 경험이 현재까지도 나에게 영향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박사 졸업 후 입사한 첫 회사, 첫 팀에서 몇 달간 너무나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냈지만 회사 방침으로 인해 기존 연구소 팀에서 사업부로 신입 사원 파견을 가게 되면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직장 내 괴롭힘 까진 아니어도, 연구소에서 박사 신입 사원으로 파견을 왔다는 이유로 불필요한 시선과 대우를 받았고 첫 사회생활이었기에, 모든 잘못된 이유를 나 자신에게서 찾아내려고 하면서 자괴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곳은 원래부터도 차갑고 냉담하며 숨이 막히는 분위기가 가득했기 때문에 굳이 나 자신의 부족함을 지나치게 의식하면서 잘 살아보려고 할 필요가 없는 곳이었다. 4년이 지난 지금 다시 돌아가게 된다면 회사 생활과 나의 행복을 훨씬 더 잘 분리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회 경험이 부족했던 과거의 나는 내면의 좌절로 무너져 우울증에 걸리고 말았다.
1년간 사업부 파견 생활을 마치고 원소속에 복귀한 후 다행히 따뜻한 환대를 받을 수 있었다. 비록 회사에서 원하는 이상적인 사업부 경험을 하지는 못했지만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해 적어도 나 자신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약물 치료를 통해 약간 호전되었던 우울증도 복귀 후 완전히 회복할 수 있었다. 비록 복귀라는 변수가 우울증 회복에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약물 치료의 효과를 몸소 체험하게 되면서 정신건강의학과 방문의 문턱이 낮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즉, 정신적으로 힘들 때 더 늦어지기 전에 의학적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불가항력적으로 느껴지는 인생의 고통 아래 체념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 온전히 스스로를 내던져 아픔을 홀로 다스리는 사람들이 많고 오랜 기간 나도 그중 하나였다. 약물 치료를 받으면서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도움인지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힘든 순간에 나 자신을 더 잘 보살필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왜냐하면 나의 우울증은 완치가 없다는 것을 그 이후에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