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틴의 향기 5-1화.

고대 지정학의 교과서 에데사 1)

by 굿닥터
샨리우르파( 출처: https://blog.naver.com/anarche69/222986841712?isInf=true&trackingCode=external)

나는 에페소스에서 미라 그리고 타루수스를 거쳐 샨리우르파로 향했다. 이 경로는 바울이 걸어간 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샨리우르파는 과거 시리아 기독교의 중심지였던 에데사의 현재 지명이다. 내가 샨리우르파, 그러니까 에데사의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건 그 날 유달리 더웠던 탓이었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주 늦은 저녁이었던 것같다.


내가 원래 가려던 곳은 이 곳이 아니라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서 로마가 주둔했던 페르시아의 국경도시 하트라 유적지였다. 그러나 페티에라는 지중해 도시의 바다에서 수영을 한 후 아침을 먹으면서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독일 은퇴자들이 읽고 있던 신문을 보고 이곳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였기 때문이었다.

에데사는 그리스 로마 문명과 페르시아가 만나는 고대 문명의 중심지였다. 튀르키예의 동남부 시리아 국경지대에 있는 이곳에서 서남쪽으로 300Km를 더 가면 안티오크가 나오고 동남쪽으로 같은 거리를 가면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 강이 만나는 메소포타미아가 나온다. 이 길은 알렉산더가 동방원정을 간 길이다. 여기서는 바그다드가 멀지 않다. 알렉산더 대왕이 고대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대왕과 회전을 벌인 곳도 이곳이었다. 그는 죽어서 신이 되었다. 그가 정복했던 동방을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로마의 황제들이 이 도시에 와서 진지를 구축했지만 병사들을 잃은 채 이 곳을 떠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로마가 지중해를 장악한 1세기 이후 7세기 초반까지 무려 600년 동안 이곳에서 세계에서 가장 크고 조직화된 두 제국이 헤게모니 전쟁을 벌였다. 그 중심에 에데사가 있었던 것이다. 이 에데사에서 멀지 않은 안티오크에서 온 유대인들은 여기에 초대 기독교의 씨앗을 뿌렸다. 초대 기독교의 발생지는 팔레스타인지방이 아니라 이곳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두 차례 유대 전쟁이 벌어진 후 로마 제국이 지배하는 팔레스타인 땅에서는 반 유대주의 정서가 팽배해졌다. 그런 영향으로 기독교는 팔레스타인보다는 동방무역으로 부가 넘치고 국제주의 경향이 강한 안티오크와 에데사로 와서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여기에는 오래된 유대인 공동체가 그리스 시리아 문명의 토양에서 번성하고 있었다.

11세기에는 십자군이 와서 에데사 공국을 세웠다. 로마에 정복되기 전인 2세기말 3세기 초에 이곳은 오스호헤르네라는 헬레니즘의 영향권 안에 있던 왕국이었고 그 왕인 바르다이산은 로마세계에서는 활을 잘 쏘는 페르시아인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궁전에서는 플라톤의 대화록을 바탕으로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서 논쟁을 하면서 기독교의 우월함을 주장했던 지식인이었다. 그는 기독교인이었다. 그가 저술한 <각 국의 습관>이라는 책에서는 쿠샨왕국의 화려한 비단 옷,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 중국의 지리, 로마의 점성술과 영국 섬의 원시 신앙에 대하여 논하였다. 그가 이 책을 쓴 목적은 자유의지를 중시하는 기독교의 위대함을 찬양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인간의 운명은 별자리가 아니라 자유의지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했다. 비록 로마와 페르시아에 흡수되어 버리고 말았지만 그가 남긴 시리아어로 된 기독교 문학의 전통은 시리아 초대 기독교의 자양분이 되었다. 그 후 시리아인들은 페르시아와 인도를 지나서 동쪽으로는 몽고와 만주 지역까지 서쪽으로는 켈트족이 사는 영국 섬까지 선교활동을 떠났다.

우리는 여기서 두 제국 사이에 끼어서 사는 에데사의 지도자가 가지는 세계관이 얼마나 폭넒은 것이라는 점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한반도는 두 개의 강대국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있는 현대의 에데사이다. 한반도는 비정한 국제정치의 세력균형의 정치기술이 펼쳐지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문화와 종교가 만들어져 세계로 수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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