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페소스 원형극장의 레닌그라드 필하모니 심포니
셀추크 마을에 머무는 동안 에페소스의 원형극장에 레닌그라드 필하모니가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때는 아직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이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보다 문화적이고 부드러운 이름으로 바뀌기 전이었다. 냉혹한 사회주의 혁명가의 이름을 딴 도시의 심포니가 그렇게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을 에게 해의 항구도시 에페소스에 수놓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는 200불이라는 거금을 내고 에페소스의 원형극장에 앉아서 연주를 관람했다.
에드워드 기본은 인류가 가장 행복한 시기가 로마의 오현제 시대라고 적었다. 그 오현제 시대에 가장 부유한 도시가 에페소스이다. 각지의 지중해 도시들에서 몰려든 최고의 철학자와 시리아에서 온 거상들은 이 자리에서 그리스어로 대화를 나누면서 여름밤 하늘의 별들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게르마니아나 페르시아 원정에서 돌아온 군인들은 이 자리에 앉아서 라틴어로 대화를 하면서 전쟁의 참혹한 도륙장면들을 잠시 잊어버리고 영혼의 평화를 찾았을 것이다. 아람어를 쓰는 유대인들은 나처럼 높은 곳에 위치한 2등석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레닌그라드 필하모니 공연을 기다리면서 문득 러시아어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순간, 세련된 유럽인들과 같은 복장을 한 레닌그라드 심포니의 단원들이 무대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동서양이 섞여 만들어진 터키와 러시아라는 두 나라는 지정학적 라이벌이었다. 18세기 중반 유럽이 산업혁명으로 힘을 키운 후 식민지를 개척하러 나갈 때 터키는 군대에 돈을 줄 돈이 없을 정도로 재정이 약화되어 프랑스 금융가에 빚을 지기시작했다. 터키는 그 때부터 프랑스의 영향하에 놓인다. 프랑스인들은 이 에페소스에서 한시간 거리인 이즈미르 항구를 조차해서 쓰면서 자기 나라 땅처럼 학교와 교회를 세우고 살았다. 유럽 외교관들은 이렇게 약화된 터키를 유럽의 병자라고 불렀다. 나라가 돈이 없으면 병신이 된다. 예카트리나 대제의 러시아는 흑해 주변의 오스만 터키 제국의 땅을 회복한 후 크림전쟁을 일으켜 남하했다. 영국과 프랑스 군대가 돕지 않았더라면 오스만 터키의 예루살렘에는 러시아 깃발이 휘날렸을 것이다.
그 후로 1차 2차 발칸 전쟁을 거치면서 터키는 발칸반도 대부분의 영토를 상실했다. 1 차대전에 오스만 터키가 프랑스와 영국을 떠나서 독일편에 선 이유도 러시아를 막기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런 판단이 제국을 붕괴시켰다. 케말파샤의 영웅적인 활약으로 가까스로 살아난 오스만 터키는 철저히 중립적인 외교정책을 취했고 2차 대전때는 독일망명객을 받아들였지만 참전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이스탄불 대학의 교수생활을 했고 동성연애자여서 나치의 탄압이 무서워 독일에서 건너온 정보수장은 1차대전 당시 중앙아시아에서 포로생활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터키어를 더 터키어답게 만들기도 했다. 2차 대전 후 터키는 소련으로 바뀐 러시아가 무서워서 나토에 가입했다. 터키는 나토에 가입하기 위해서 한국전에 군대를 보냈다. 고구려가 수나라와 싸우는 것을 돕기 위해서 군대를 보냈던 돌궐은 1300여년 뒤에 터키라는 이름으로 다시 군대를 보냈고 터키 군대는 압록강을 건너온 중국 군대와 또 다시 싸웠다.
이 레닌그라드 필하모니의 연주를 듣고 있을 때 이미 소련제국은 무너지고 과거의 러시아로 변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소련이나 러시아가 터키를 침공할 위험은 없다. 레닌그라드 심포니의 에페소스 방문은 두 제국의 화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러시아가 극동에서 끊임없이 부동항을 찾기 위해서 원산으로 내려갈려고 했듯이 유럽에서 흑해를 빠져나와 터키를 위협했지만 그런 지정학적 갈등은 이제 사라지고 감동적인 클래식 음악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레닌그라드와 그 뒤에 이어 피아노 협주곡 2번 아다지오의 감미로운 선율이 연주되는 장면을 보았다. 쇼스타코비치가 아들의 생일선물로 만든 곡이다. 그는 사회주의 독재정권의 외부적 압력과 그의 내부에 있는 예술적 감수성 사이에 균형점을 만들 수 있는 섬세한 정신을 갖고 있었다. 그는 피아노 협주곡과 같은 로맨틱한 작품을 만들기 위한 균형적 대가로 레닌그라드라는 정치적인 곡을 만든 것인지 모른다. 그 다음 해에 소련이 사라지고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의 도시도 없어졌다. 그 후 내 기억 속에서는 항상 내가 존재하지 않는 도시에서 열리는 콘서트에 다녀온 듯한 느낌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