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회의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환경이다

by 미토

저는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꽤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중학교 특수교사의 권유에 따라 3학년 여름방학이 시작하면서 동네 주변에 특수학급이 있는 고등학교 5군데를 탐방하기로 한 것입니다. 다행히도 모든 학교의 특수교사 분들이 기꺼이 방문을 허락하셔서 아들을 데리고 해당 학교를 모두 방문하였습니다. 특수교사 분들의 안내로 학교 내부와 특수학급의 시설 그리고 커리큘럼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학교마다 장단점이 있었고 분위기도 달랐습니다. 숙고 끝에 거점학교1)이면서 집과 가장 가까운 경복고등학교로 진학을 결정하였습니다.


고등학교에서의 학교생활은 중학교 때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학년마다 특수학급의 담임선생님이 계신 점입니다. 그러다 보니 특수학급의 규모도 중학교보다 컸습니다. 아울러 진학을 준비하는 곳이다 보니 처음부터 주요 과목에 대해서는 일반학급과 특수학급의 수업이 분리되어 준비되어 있습니다. (물론 장애당사자가 통합수업에 대한 열망이 높고 수업을 어느 정도 쫓아갈 수 있으면 일반학급의 수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고등학교에서 진행되는 통합수업은 미리 계획되고 결정된 분리수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거점학교로 지정된 고등학교는 학교 안에 직업교육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특수학급의 학생들이 직업교육 시간에 다른 학교로 이동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경복고등학교 전경

아들의 고등학교 생활은 학교 수업, 학교 방과 후 교실, 지역 복지관 수업, 사설 특수체육 수업 그리고 지역에 있는 협동조합에서 제공하는 방과 후 활동지원서비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중학교에 비해 고등학교에서 이뤄지는 학교생활은 외부활동이나 직업교육의 비중이 높다 보니 통합수업에 참여하는 비중이 적습니다. 이런 이유로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중학교보다는 덜한 듯 보였고 큰 문제없이 1학기를 마무리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올라갔을 경우 겪게 되는 극심한 스트레스가 고등학교 진학에서는 덜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그런데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 10월 정도가 되자 일상생활을 잘하고 있던 아이로부터 돌발행동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진 것 같았고 이것은 부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평온한 시기는 쉽게 허락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이로부터 한번 신호가 보이자 복지관과 협동조합을 옮기면서 계속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해당 공간에 있는 복지사나 지원사들은 모두 아이가 갑작스럽게 돌발행동을 일으켰고 그 문제점을 찾기 어렵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이전부터 발달장애아이들이 속해 있는 공간과 공간 사이의 차이가 아이가 처한 상황에 대한 정보를 단절시키고 있으며 해당 공간의 종사자들이 아이를 대하는 입장이나 태도 역시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문제가 일어났던 공간이나 종사자들이 돌발행동을 문제로 아이를 내보내거나 격리하자는 의견을 내지는 않았습니다. (보통 이런 일들은 학교에서 가장 많이 일어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사회로 진입해야 하기 때문에 이 시기에 문제적 행동이 나온다는 것은 부모로서는 매우 괴로운 일입니다. 이것은 사회생활 곧 취업과 연계되고 아이가 더 이상 유예되거나 준비될 수 있는 시간이나 공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꼭 해결해야 했다는 굳은 의지를 갖고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사례회의2)를 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들이 속해 있는 모든 공간의 종사자들을 한 공간에 모아서 아이의 행동에 대한 각자의 상황을 들은 후 의견을 모으고 대처 방안을 단일하게 마련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 대처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사실 초등학교부터 사례회의를 통한 문제 분석과 행동대처를 해보고 싶었지만 흩어진 공간에 있는 종사자들을 같은 시간과 공간에 모으는 것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가장 큰 문제점은 누가 주체를 맡을 것인가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가 발달장애를 판정받았을 때 그것을 책임지고 관리하고 지원하는 담당자가 없어서 생기는 근본적인 문제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발달장애 아이의 성장과 지원에 관한 모든 책임은 온전히 부모의 몫이 됩니다. 현재 한국에서 장애지원에 있어 공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유일한 곳은 주민센터이고 주기적으로 순환되는 담당자가 형식적으로 국가에서 내려온 지원정책에 대한 접수를 받는 것이 전부입니다.


사례회의를 연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준비를 하였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돌발행동의 원인은 발달장애 당사자가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하다 보니 충족되지 못한 욕망에 대해 왜곡된 형태로 표출하는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행동의 원인을 당사자보다는 환경에서 찾아야 하고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당사자의 주변 환경이나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해당 행동의 원인이 되는 외부환경의 요소들을 장소별로 시간별로 재구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럴 경우 마치 돌발행동의 원인이 장애 당사자 주변환경에 있는 지원인력의 책임으로 느껴져서 그것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려고 회의를 소집한다는 인상을 받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문제행동이 일어났던 복지관과 협동조합의 지원인력분들에게 사례회의가 문제에 대해서 책임을 가리는 자리가 아니라 아이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종사자 분들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리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복지관과 협동조합에서는 적극적으로 사례회의 개최에 대해 협조를 하셨습니다.


가장 큰 관문으로 여겼던 학교에 대해서는 아이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는 전환기 교육3) 때문에 주기적으로 특수학급의 학생들을 데리고 복지관에 가서 수업을 진행합니다. 그러다 보니 학교 밖 복지관에서 학생에 대해 논의를 하는 회의를 하는 것에 대해서 긍정적인 입장을 보여주셨습니다. 고등학교 특수학급 담임선생님의 스케줄에 맞춰서 오전 10시 30분부터 11시 30분까지 회의 시간을 잡았습니다. 협동조합에서는 복지관과 학교에 사례회의에 대한 공문을 보냈고 복지관 내에서 장소를 제공해 주기로 사전에 협의를 맞췄습니다. 전체를 조율하는데 한 달 정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사례회의에 장소를 제공한 종로장애인복지관

사례회의 당일에 복지관에서 마련해 준 회의실에 저희 부부와 특수학급 교사, 복지관 사회복지사, 협동조합의 활동지원사 이렇게 5명이 모였습니다. 회의시간을 1시간으로 잡았기 때문에 진행을 빠르게 했습니다. 우선적으로 각 공간의 담당자들이 생각하는 요즘 아이의 행동특성과 문제행동이 일어난 원인에 대해서 의견을 나눴습니다. 예상대로 공간에 따라 아이는 다른 패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고 각 공간의 종사자들의 아이를 대한 의견과 태도도 달랐습니다.


각 공간의 종사자들은 서로의 차이를 인지한 이후에 그 원인에 대해서 분석을 하였습니다. 아이의 문제행동이 주로 일어나는 요일은 목요일 방과 후였습니다. 목요일은 학교에서 특수학급 학생들이 외부에서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문제행동이 일어난 목요일은 해당 프로그램이 평소와 달랐습니다. 보통 학교에서 외부로 버스를 타고 이동해 발달장애인을 위한 도서관을 갔는데 그날은 볼링장을 방문하였고 아이는 열중해서 너무나 즐겁게 프로그램을 수행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이유로 특수학급 교사는 학교에서 수행을 잘하고 기분이 좋았던 아이가 그 이후에 돌발행동이 나온 것에 대해서 의문을 나타냈습니다. 그런데 목요일은 복지관 프로그램도 외부에서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더운 여름에 볼링장에서 에너지를 소모하다 보니 아이는 지쳐 있었고 그 이후에 복지관에서 외부로 플로깅4)을 나가다 보니 해당 프로그램이 짜증이 나고 싫었던 것입니다. 발달장애아이들에게 힘들거나 어려울 경우 표현을 하고 멈추라고 늘 가르치지만 실제 상황에서 아이들이 가르침대로 행동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이럴 경우 돌발행동에 대한 책임을 표현을 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긴 아이들에게 전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문제행동 역시 목요일에 발생했습니다. 그날도 방과 후 프로그램이 평소와 다른 스케줄로 진행되면서 학교로부터 복지관으로 이동에 혼선이 생겼습니다. 더운 날 열심히 걸어서 복지관에 도착한 후 칭찬을 예상했던 아이에게 담당자가 늦은 원인에 대해서 계속해서 물어본 것이 돌발행동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목요일에 대해 민감했던 제가 복지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담당자에게 아이가 도착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혹시나 외부에서 문제가 생겼을 까봐 걱정을 전달한 것이 이유였습니다.


우리의 예상과 달리 돌발행동은 아이의 상황이 좋지 않거나 화가 나서 생긴 것이 아니라 이전의 공간에서 너무 에너지를 소모해서 지쳤는데 그다음 공간에서 휴식 없이 수행을 해야 하거나 공간 사이의 정보단절로 인해 다음 공간의 종사자의 태도가 아이의 예상과 다를 경우에 생기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발달장애 아이 당사자나 그 아이를 둘러싼 종사자들의 태도에 문제가 있던 것이 아니라 공간과 공간 사이의 정보 전달이 어긋나고 그때 아이를 대하는 대응이 일치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가 주원인이었습니다.


시간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몇 가지 원칙을 정하고 회의를 정리하였습니다. 자폐성 장애를 아이를 가진 아이들은 루틴에 민감하니 해당 공간의 스케줄을 공유하고 만약에 평소와 다르게 프로그램이 진행되어 시간의 변동이 생길 경우에 빠르게 다음 공간의 담당자와 부모에게 사실을 전달하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문제 행동이 발생할 경우에는 아이에 대한 대응방식을 최대한 균일하게 하고 이에 대해 가감 없이 그 상황에 대한 정보를 모든 공간의 담당자와 나누도록 하였습니다.


사례회의가 끝난 후 참석자들의 표정은 밝았고 서로 열심히 하자고 기운을 북돋았습니다. 그 이후 학교에서는 아이의 스케줄이 바뀔 때마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변동사항을 알려주셨습니다. 방과 후 활동지원을 하는 협동조합과 복지관에서도 종사자들 사이의 의견 교환이 더욱 활발해졌습니다. 덕분에 아들을 둘러싼 환경도 보다 안정되게 변했습니다. 사례회의 후 가장 크게 변한 것은 아이를 둘러싼 해당 공간의 지원인력 간의 신뢰가 더욱 높아진 것입니다. 사례회의를 한다고 해서 아이의 문제행동이 완전히 사라지거나 개선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돌발행동이 나왔을 때의 우리의 대처나 태도는 이전과 다를 것입니다.



1) 거점학교 : 통합형 직업교육 거점학교란 장애학생들의 진로・직업교육 활성화 및 내실화와 고등학교 특수학급 장애학생들의 취업률 제고를 위하여, 실습실 구성 및 운영, 직업교육 프로그램 마련, 기관 연계 협력사업 구축, 교사 간 유기적 협력관계 유지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학교입니다.


2) 사례회의(Case Study) : 사례회의는 보통 당사자와 사회복지사, 그리고 당사자의 어떤 욕구에 대하여 그 일을 도울 수 있거나 적정한 정보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하는 회의입니다. 회의에 모인 사람이 함께 의논하고 계획하고 점검하고 조정합니다. 당사자 없이 사례관리자와 동료, 관련전문가와 회의하는 것을 사례관리 업무 지원회의라고 하며 개별지원 계획워크숍이라고도 합니다.


3) 전환기교육 : 주로 고등학교 2-3학년이 참여하며 성인이 되어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자립하기 위한 진로와 직업에 대한 교육을 진행합니다. 직업교육, 다양한 작업훈련, 사업체 견학, 모의면접 등 취업 전 필요한 교육을 진행합니다.


4) 플로깅 : 이삭 등을 줍는다는 뜻의 스웨덴어 ‘플로카 우프(Plocka upp)’와 달리기를 뜻하는 영어 ‘조깅(Jogging)’의 합성어로, 달리기 운동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환경 정화 운동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달리기 대신 걷기를 할 때는 영어 ‘워킹(Walking)’과 합성하여 ‘플로킹(Ploking)’이라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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