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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선거 제도가 있을까요?

투표 방식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서

by 낙타 Feb 27. 2025

제도는 한 번 만들어지면 바꾸기 힘듭니다. 특히나 선거 제도처럼 이해관계가 켜켜이 쌓여 있는 경우는 웬만한 이유가 있지 않고서는 변경이 불가능할 것 같은데요, 그래도 재미로 한 번 생각이나 해볼까요?


투표는 기본적으로 다수결에 기반합니다. 다수결은 간단명료하며 이의 가능성이 적은 의사결정 방식이지만 세상에 완벽한 건 없죠. 다수결 역시 소수 의견이 반영되기 어렵다든가 표의 분산으로 인해 엉뚱한 소수 안이 채택될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다수결의 원칙은 유지하면서, 그 한계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일단 현행 제도 중에서는 국회의원 비례대표제가 있겠네요. 지역 선거구에서 절대 과반을 얻지 못할 소수당이라도 인구 전체에서 일정 이상의 표를 얻으면 당선될 수 있죠. 여기서 좀 더 나아가, 소수자들만 투표할 수 있는 선거구가 생긴다면 어떨까요?


쉽지 않을 겁니다. 이렇게 그룹을 명시적으로 나누게 되면 필연적으로 단절 경계가 발생하고, 그 선을 어디에 그어야 할지 기준을 정할 수도 합의를 이룰 수도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투표자의 기대 여생에 따라 투표권에 가중치를 주는 방안은 어떤가요? 쉽게 말해, 똑같은 1표라도 젊은 층의 표를 더 높게 치는 겁니다. 사회적인 의사 결정에서 세대별 인구 구성의 불균형을 완화하는 차원에서 나온 아이디어일 텐데요, 개인의 차원에서는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기대 수명이 동일하다면 한 사람이 평생 동안 행사하는 투표권의 양도 동일합니다. 4번의 투표 기회가 있다면 각각에 25%씩 균등 배분되죠. 그런데 투표로 결정된 제도의 영향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평생 지속된다면, 그리고 내가 가진 투표권을 시점별로 배분할 재량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나의 삶에 영향을 더 많이 주는 선택에 전략적으로 많이 배분하고 싶지는 않을까요?


하지만, 이것도 역시 어려울 겁니다. 다른 걸 떠나서 현재 시점에 모두가 같은 나이라면 모를까, 청년인 사람과 노년인 사람이 따로 있는데 공평하게 시작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세대 갈등만 키울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도 계속 생각해 보죠. 개인의 투표권을 그 사람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도에 따라서 안건별로 배분한다는 발상이 참신하지 않나요? 그런데 사실은 "제곱투표"라는 이름으로 이미 제안된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왜 제곱투표냐면, 어떤 사안에 대해서 표를 여러 번 던질 수 있는데 그때의 비용(=소진되는 투표권의 크레딧)이 제곱으로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1표에 크레딧 1개가 필요했다면 2표를 던지려면 크레딧 4개가 필요한 거죠. 당연히 개인마다 보유할 수 있는 크레딧 수는 동일하고요.


1인 1표가 다수의 횡포에 취약하다면, 안건별 투표는 특정 이슈에만 관심을 가진 소수가 너무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점을 고려하여 한 사람이 한 안건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을 제한하는 장치를 마련한 게 제곱투표입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께는 『래디컬 마켓』 책을 추천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가중치를 정하는 방식은 결국 눈치 싸움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개인의 입장에서 우월전략이 없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따라 나의 최선의 전략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이걸 통과시킬 줄 알았으면 나도 그 안건에 반대표를 더 줬을 텐데'라고 후회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는 거죠. 우월전략은 게임이론에서 나오는 개념인데, 상대방의 전략에 관련 없이 나에게 최선이 되는 전략이 있다는 것이고, 이런 구조를 잘 설계하면 개인에게 최선인 선택이 사회 전체에도 이득이 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언젠가 따로 한 번 써보겠습니다.)




안건별 투표라는 아이디어가 나온 건, 현재의 투표 제도가 일종의 "패키지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정당이나 정치인에 표를 줬다고 해서 그의 모든 공약에 동의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또 설사 그땐 그랬다고 하더라도, 선거 이후에 새로 발생한 이슈에 대해서는 선출된 대리인이 유권자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해도 제동을 걸 수단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현대의 IT 기술을 이용해서 이 부분을 개선하면 좋겠습니다. 평소에는 대의정치의 원리에 따라 선거로 당선된 정치인들이 의사결정을 하는 기본 모드로 운영합니다. 모든 사람이 모든 안건에 전문성을 가질 수는 없으니 위임을 하는 거죠.


하지만, 특정 안건에 대해, 일정 이상의 유권자가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의사를 내보이면, 직접 투표를 통해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특별한 의견이 없으면 기권하거나, 기본 모드대로 정치인에게 결정을 위임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렇게 해서 보다 직접적이고 종합된 의견이 정치인의 결정을 덮어쓸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이 방식이 주권자와 대리인의 관계에 더 부합하지 않을까요?




저의 아이디어는 "직접 투표로 덮어쓰기" 정도에서 끝났는데, 『22세기 민주주의』는 상상력을 더 밀어붙여서 마침내 "선거 없는 민주주의"에까지 도달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선거 투표가 없어지는 건 아니고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여러 방식 중 하나로 격하됩니다. 그렇게 해서 저자가 도출한 결론은, 사람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을 알아내고 어떻게 달성할지 결정하는 일을 가장 잘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과연 위임할 수도 있을까 라는 질문을 남깁니다.


참고 자료

나리타 유스케, 『22세기 민주주의』, 서유진, 이상현 옮김, 틔움출판(2024), 2장

에릭 포즈너, 글렌 웨일, 『래디컬 마켓』, 박기영 옮김, 부키(2010),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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