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미술 작품을 보고 리뷰를 쓰는 나의 본업에 심각한 번아웃이 찾아왔었다. 아무리 오래 경력을 쌓아도 처우가 개선되지 않는 업계 현실 말고도 나를 지독히 괴롭히던 것이 있었다. 나는 내가 써놓은 글을 제대로 읽지 못했던 것이다.
작품을 대하며 느꼈던 감흥은 나의 무미건조한 문장 속에서 그 빛깔을 잃어버린 듯했다. 그래서 일정의 형식과 내용을 갖추어야 하는 틀 안에서 분량을 채우는 일은 점점 더 무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뭐든지 일단 열심히 하고 보는 성미에 꽤 독하기도 해서 이 악물고 몇 년 더 커리어를 이어갔다. 언젠가 기량이 충분히 갈고 닦이면 이 어려움은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결국 모든 걸 포기하고 몇 년의 휴식 기간을 가진 끝에 다시 갤러리를 찾아다니기 시작한 건 2025년 봄부터였다. 청탁 없이 오로지 나만을 위해 길을 나섰다. 번화가에 위치한 갤러리도 있었지만 찾아가기 어려운 곳도 있었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동네를 구경하며 언덕을 오르다 보면 구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가운데 갤러리는 꿋꿋하게 서 있곤 했다.
그곳에서 솔직한 심정으로 작품을 바라봤다. 그걸 보는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세심히 살피며. 그리고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나면 브런치스토리에 연재글을 올렸다. 정해진 글밥도 형식도 없이 오롯이 맑게 떠오르는 말만을 엮어서 올렸다. 그것은 비움의 과정이었다. 글밥을 좀 더 비우고 그 자리를 작품에 내주었다.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사이에 여백을 두어 미술 작품에 대한 감흥이 흐르도록 했다.
지금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순간에도 나의 글들이 얼마나 완성도를 갖추었는지, 또 앞으로 대중들의 호응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작품을 관람하고 그것을 기록하는 나만의 방식을 찾았다는 안도감이 든다. 앞으로도 갤러리에 방문하면 쉼을 얻고 싶다.
2025. 9. 30
정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