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은 개인전, 싹들의 여행
앵무새가 당신을 따라 침묵하고 있네.
오래오래 침묵하다 보니 앵무새는 바라보게 되었네.
밤마다 돌들을 새로 배치하는 숲
넘어지는 파도를 껴안는 바다
빈 손을 내보이며 홀연히 生을 벗어나는 사람.
그렇게 말 없는 세상을 바라보다가
앵무새는 자기 자신이 무엇이었는지 조차 잊어버리고 말았네.
더는 다른 사람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자신의 언어를 쌓아놓지도 못했네.
앵무새는 버려진 낱말,
떠나온 문맥을 기억하려 애쓰네.
떨어져 나간 자리들을 더듬으며 앵무새는 방황하네.
오래오래 방황하다가 마침내 깨닫게 되었네.
떨어져 나온 것들만이 생명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전시 정보>
싹들의 여행 _ 2025.4.26-5.4
꼬메아미꼬 갤러리 _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로 15길 97 1층
<작가 소개>
허정은 _ 2024년 5월 20일. 요즘 나는 글자를 흘리고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소매에서, 옷자락에서, 방바닥에서 자꾸만 글자가 발견된다. 몸에 붙은 형용사와 조사를 떼어내는 기분이 낯설다. 바닥에 떨궈진 글자들을 발견할 때는 조금 놀라기도 한다. '미래'가, '여행 안내서'가, '천사'가 나의 방에 이렇게나 조용히 와 있었다니. (작가 노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