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우리 모두의 H-Mart

K-Culture의 위상 5

by 유목민

1992년 뉴욕주로 이주했던 가족을 따라 한아름마트에 갔었던 기억이 있다. 아담하고 깔끔한 한국 슈퍼. 나는 학업을 이유로 한국에서 사느라, 그사이 가족들은 뉴저지주로 이사하느라 단 한 번의 방문이었지만 기억에 남는 곳이었다. 그리고 내가 이민 갔었던 1999년, 뉴저지주에 진출한 한아름마트가 새로운 간판을 단 것을 발견했다. 韓亞龍食品. 한아룡식품. 누군지 몰라도 순 한글인 '한아름'의 중국어 표기(음차)를 참 잘 만들었다(중국어 발음:한야롱). 한국과 아시아의 용이라는 의미도 담아서. 당시 개방되었던 본토중국인의 이민으로 엄청난 수의 대륙인이 미국에 몰려왔었는데, 그들은 어쩐 일인지 한국슈퍼를 선호했고, 그 트렌드에 맞춰 발 빠르게 새로운 중국어 간판도 달았던 것이었다. 한국슈퍼보다 규모가 컸던 중국슈퍼가 대부분 대만국적의 중국화교가 운영하는 곳이라서였을까. 아니면 그들 특유의 자국식자재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을까. 당시에는 아는 중국인 지인이 없어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한아름마트는 늘 사람으로 북적였다. 그리고 우리 가족이 아시아로 파견 나간 사이, 한아름마트는 미국사람을 겨냥해 그들이 알아보기 쉽게 H-Mart가 되었고, 미국 전역에 분점을 내기 시작했다.


2024년 가을, 우리 가족이 콜로라도주에 정착하게 되자마자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한국슈퍼를 찾는 것이었다. 오호라. 메트로 덴버에 H-Mart가 두 군데나 있단다.

구글검색결과: H-Mart

저 둘 중에서 Aurora(오로라)에 있는 H-Mart에 갔다.

내가 기억하는 세 가지 상호가 다 적혀있는 것을 보니 꽤 오랫동안 여기서 영업했나 보다.

엄청 크다.

어.. 그런데 다양한 타인종인이 대부분이다.

생선코너에는 생선을 손질해 주는데, 요리를 잘하게 생긴 멋진 미국인들이 생선을 엄청 많이 사 간다. 그리고 그 앞에서 구경하는 미국인도 많다.

오우. 깜짝이야. 냉동 양머리. 박물관처럼 공룡뼈 전시해 놓은 줄. 양머리뿐 아니라 온갖 다른 부위들도 다 판다.

냉동토끼, 냉동 소혀, 냉동 소머리, 냉동 오리가슴살 등등등 익숙지 않은 식재료들이 놀랄 만큼 많다. 중국식 소스만 파는 진열대가 따로 있을 정도고, 중국식 냉장 식재료도 대부분 있고, 일본식 식재료도 대부분 다 있다. 교자, 라멘, 미소,모찌 등등. 심지어 타피오카라던가 베트남 쌀가루도 판다. 술도 막걸리, 청주, 사케부터 각종 한국맥주, 각종 일본맥주, 중국맥주도 칭다오나 대만맥주까지, 싱가 같은 태국맥주, 각종 독일맥주에 회가든 같은 벨기에맥주까지. 없는 게 없다. 우와. 세상 많이 돌아다녀봤지만 이렇게 국제적인 물품을 다양하게 구비한 마켓은 또 처음이다.


반찬코너를 돌다가 어느 백인 엄마와 잠깐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녀의 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 정도 되어 보였는데, 멸치볶음을 먹어보고 싶어서 엄마 따라왔단다. 어머나. 우리 딸이 어린 시절, 김밥으로 미국 친구들을 세뇌하긴 했으나 그 시절에도 어린아이들에게 멸치 같은 한국음식을 먹어보라고 하면 'EWWWWW! 하고 소리 질렀다. 뭔가 징그러운 것을 봤을 때 내는 감탄사인데. 그런데 2025년의 백인 꼬마는 멸치볶음을 먹어보고자 하는 열의에 차 있었다. 그래서 내가 하나 골라줬다. 좀 덜 매워 보이는 것으로. 그래서 물어봤다. H-Mart에 자주 오느냐고. 대답은 그렇다였고, 특히 오늘은 멕시칸 사람인 남편이 사탕수수를 꼭 사 오라고 신신당부했단다.


에이이이이, 한국슈퍼에 사탕수수가 어딨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엄마가 가리키는 곳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어.머.나.이.럴.수.가. 왜 난 못 보고 지나쳤지?

사탕수수가 있다. 진짜로 판다. 하하하

계산을 마치고 찍은 사진. 한국사람은 저 안에 한 명도 없다. 저 사진을 찍은 날은 무슨 일인지 이슬람교도 부부들이 많이 왔었다. 그리고 주말에는 계산대 9곳 정도 여는데 줄을 삼십 분은 서 있어야 계산을 할 수 있을 정도다. 사람 숫자도 많지만 다들 아이들까지 가족단위로 와서 거대한 카트에 물건을 고봉으로 쌓아서 사기 때문이다. 요즘은 아이들이 더 잘 안다. 한국 과자, 라면, 그리고 뜨보끼(떡볶이). 심지어 참기름과 들기름이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을 진지하게 하던 착하게 생긴 미국언니도 있었다. 아마도 여기에 오면 각자 본국의 식재료와 이제는 생활 속에 익숙한 한국이나 일본 중국의 식재료도 살 수 있기 때문에 여러 군데 마켙에 갈 필요 없이 여기서 다 해결하는 듯 보였다. 본토맛 김치를 살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고. 요즘은 미국사람들도 제대로 된 김치를 먹는다고 난리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을 말하자면, 내가 살았던 뉴욕이나 캘리포니아에는 한국인이 많아, 한국사람만 먹는 식재료도 다 구비해 놓은 데 비해서 콜로라도의 H-Mart는 깻잎도 너무 뻣뻣하고, 시래기 같은 특이한 식재료도 없고, 죽염치약은 치약코너에 있지 않고 한국에서 온 부엌용 품 파는데 끼어있어서 찾기도 힘들다. 게다가 직원들도 대부분 미국사람이라서 깐 밤이 어디 있냐고 물었다가, 그런 거도 먹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그래도 대형한국슈퍼가 없던 대만에 살다 와서 그런가, 이렇게 많은 한국물건들을 언제든 살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 간장도 식초도 젓갈도 고춧가루 소금도 종류별로 있고, 열무나 총각무도 판다!!!


그런데 최근에는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다. 덴버지역에 사는 틴에이저들이 H-Mart에 놀러 가는 것을 좋아한단다.

살아있는 게! 구경하러! 하하하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콜로라도 같은 내륙에 살다 보니 살아있는 해양생물을 볼 기회가 없지 않겠나. 수족관 있지만 비싼데, 여기 오면 공짜로 살아있는 게, 가재, 전복 등등을 실컷 구경하고, 맛난 한국과자도 사고, 김밥이나 잡채 같은 한국음식도 먹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단다.


우와.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한국음식뿐만 아니라 슈퍼마켓도 한국슈퍼가 대세인가 보다. 홀푸드나 트레이더조 같은 미국슈퍼도 가지만 이렇게까지 사람이 많지는 않다. 온 가족이 다 출동해서 오는 슈퍼는 H-mart밖에 없는 듯하다. 다들 각각 먹고 싶은 것이 다른데, 한국말을 잘 모르니 직접 와서 보고 집어 가는 것 아닐까. 한국문화는 어디까지 확장할 것인가. 앞으로 미국생활이 재미있어질 것 같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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