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의 대화4

나의 독백: 마을에 대하여

by 케르겔렌

“너는 마을을 꿈꿔본 적이 있어?”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는 같은 마을에 살고 있잖아.”

너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네 말이 맞다. 우리는 현실에서, 그리고 나의 상상 속에서도 같은 마을에 살고 있다.
너는 저 멍청한 텔레비전을 등진 채 나와 마주 앉았다.
동물 다큐멘터리의 나레이션은 이제 이 터무니없는 상상의 배경음악으로 전락해버렸다.

“저 다큐멘터리 내용은 늘 똑같아. 사슴은 항상 육식동물에게 쫓기다 결국 죽음을 맞이하잖아.”
지루해, 너는 길게 하품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사슴 같은 존재들이 함께 모여 사는 마을이 있을까?”
나는 네 말의 일부분을 빌려 물었다.

“왜, 있지 않을까? 약한 존재끼리 모여 살면 좋잖아. 우리도 같이 모여 살듯이.”
너는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다.

약한 존재들이 모인 마을이라......
내가 늘 꿈꾸던 곳이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아픔을 아는 곳.
괴로운 일상을 마친 깜깜한 저녁, 안식을 위해 우리가 다시 모이는 곳, 마을.
따위의 지겨운 글자들이 없어져도 각자의 양심과 선함에 기대어 서로를 보듬는 곳.
잔인한 심장을 가진 이들은 마을에 들어올 수 없고, 평생 이 안식처의 존재를 알아챌 수도 없을 것이다.
아, 그런 마을을 가지고 싶다. 그런 마을을 내 손으로 일굴 수 있다면!

곧 네가 되물었다.
“약한 존재들이 모인 마을...... 꼭 뜻을 같이한 자들의 모임 같네. 음, 그런데 나 궁금한 게 생겼어. 러면 그 마을에서는 모두가 평등거니?”

모두가 평등한 마을, 그것은 내가 원하는 마을의 모습이다.

하지만 너의 고요한 눈과 마주하니 몇 가지 의문이 든다.

평등이라, 평등이 무엇일까. 평등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모든 인간은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라는 생각을 모두가 공유하고 인정한 상태를 의미하는가,
아니면 더 나아가, 모두가 약점을 보완하고 거의 동일한 양상의 삶을 살고 있음을 뜻하는가?
누군가가 다른 이의 구덩이를 채우기 위해 자신의 땅에 새로운 구덩이를 만들었다면—혹은 쌓아둔 흙더미를 퍼냈더라도—
그 사람 역시 다른 이의 삶을 채우기 위해 약자가 된 것이 아닐까?아니면, 배부른 자는 약자가 될 수조차 없는가?
아, 질문이 멈추지 않는다.
평등은 실로 존재할 수 있는 개념이란 말인가!

“그 마을을 네가 만든다면, 그곳에서 너는 약자일까, 아니면 공로가 있는 강자일까?”
네가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이며 내게 묻는다.
나는 재빠르게 내가 어떠한 존재인지 정의했다.
나는 약자인가? 나는 어떠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약자라고 인식하는가.

너는 작은 웃음소리로 나의 침묵을 덮었다. 네가 다시 텔레비전을 향해 몸을 돌리며 말한다.
“나라면, 그곳에서 평생은 못 살 것 같아. 잠깐은 거쳐 갈 수 있겠지만 말이야. 나는 평생 약자이고 싶지는 않거든.”

화면에서는 사슴이 게걸스럽게 풀을 짓씹고 있었다.
그의 발아래 힘없이 목이 꺾인 풀들과, 입속에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짓이겨진 초록빛 사체들.
곧이어 사슴이 목 놓아 울었다. 아, 녹명(鹿鳴)이다!
매서운 이가 듣는다면 숨통이 끊길 수도 있으나, 그럼에도, 자신과 같은 삶을 사는 자들의 배를 불리려는 처절한 울음.
아름답지만 묘한 그들의 노래.

내 두 눈이 사슴의 공허하고 안광 없는 눈과 마주쳤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저 동물 다큐멘터리를 볼 때마다 왠지 모를 불쾌감이 느껴지던 것이—
매번 쫓기고, 죽음을 맞이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나보다 더 약한 존재가 있다면 나를 위해 그들을 해했을지 모르는,
육체는 사슴의 모양이나 호시탐탐 사자가 되기를 노리는—
그것은 나의 모습이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사슴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육식동물이었다. 결국 나는, 사슴이었던 적만 기억하는 이기적인 놈이었던 것이다!


"배고프지 않니?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인데."

네가 묻는다.

프라이팬 옆에 자리한 달걀 두 알. 흰자만 남은 누군가의 눈 같다.

나는 너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거실 텔레비전 화면에는 늠름한 사자가 초원을 가로지르며 달리고

입맛을 돋우는 묘한 향이 부엌을 가득 채웠다.


끔찍한 놈.

아, 나는 결코 마을을 만들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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