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과 차이 넘어서기
말이 힘을 잃은 시대다. 말같지 않은 말이 넘쳐나고 또, 힘 있는 말들이 너무 쉽게 배신의 말로 바뀜을 경험한 우리들은 자연스레 입을 닫고 귀를 닫는 사회를 살고 있다. 이제 사람들과 유대와 교류는 같거나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 사이에서만 활발하다. 간혹 등장하는 다름과 차이에 대해서는 '그의 취향일 뿐' 이라는 말로 무관심한 듯 존중하는 제스처로 해결한다. 이로써 자신의 고통에서 자신의 주변 혹은 사회의 모순이나 고통 등, 무엇인가 '자기'를 넘어서는 것을 발견하는 일은 불가능해진다. 이야기를 나누며 '곁'을 만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서로 참조하며 배우는 '곁의 언어'가 사라질수록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공적인 이슈로 바꾸는 역량 역시 쇠퇴한다. 또한 낯설고 바른 것과의 부딪침과 만남을 통해서 일어나는 사람의 성장 역시 불가능해진다.
다름과 차이를 차단하게 되면서, 서로의 경험을 참조하며 나누는 배움과 성장은 불가능해진 사회, 곁을 만드는 언어는 소멸해버리고 편만을 강요하는 사회, 책임은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하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사회의 특징으로 저자는 단속(斷續)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같고 비슷한 것에는 끊임없이 접속해 있으면서 타인의 고통같이 조금이라도 나와 다른 것은 철저히 차단하고 외면하며 개입하지 않으려 하는 상태_동일성에만 머무르며 자기 삶의 연속성마저 끊어져 버린_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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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단속'이란 말로 설명하는 우리 삶의 형식은 다음과 같다.
1. 단속은 낯선 것(타자)과의 만남의 단절이다. 이는 동질성과 유사성에 기반을 둔 '빗장 건 사회'의 경향으로 이질적인 타자와의 접촉을 위험시하며 그들과 거리를 둔 상태에서 '구경'만 하려고 한다.
2. 공적인 것과의 단속이다. 타자와의 만남은 우리에게 나와는 다른 존재, 나와는 다른 의견, 즉 異見이 존재하며 그 이견들 속에서 내 견해를 갖고 이를 드러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스스로를 공적이 존재로 드러낸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사람들은 이를 부담스러워 한다.
3. 의견을 아예 제시하지 않거나 불가피한 경우에만 최소한으로 드러내기 위해 자기검열 혹은 스스로를 단속하는 경향으로서의 단속이다. 공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그 공간(공동체)에서 자신이 타자로 분류되는 상황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타자에게 자신의 낯섦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견을 감추고 입을 다물거나 혹은 검열된 형태로 제시해야 한다. 당연히 침묵과 순응이 지배적인 태도가 된다.
4. 이런 결과로 나타나는 '연속의 반대'로서의 단속이다. 개인이든 사회든 그 존재 가치는 연속성을 지닐 때 이다. 내가 치른 경험이 다른 누군가의 참조점이 되고 다른 누군가의 경험이 나의 참고가 될 때 서로에게 기댈 수 있고 배울 수 있으며 개인이나 사회가 발전해 간다. 이렇게 자신의 삶을 하나의 연속성을 가진 서사로 이어갈 때, 이것을 성장이라 할 수 있으며 나의 삶이 하나의 이야기로 전송되고 내가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내용은 이해가 되지만 정리가 힘든 책이다.
문제는 제시했지만 해법이 좀 막연하달까??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오디세우스와 세이렌의 말걸기도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