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미디어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

유해한 도구는 도구인가

by JHS

소통 방식에 대한 불만


고등학교를 마칠 즈음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한 이후로는 카카오톡을 제외한 소셜미디어를 이용하지 않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플랫폼들이 등장하고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왔지만 큰 불편을 느끼지는 않는다. 저 안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는지 모르기 때문에 불편함도 모르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트렌트나 밈을 잘 몰라서 대화할 때 가끔 당황하는 경우가 있지만 받아들일 수 있는 어려움이다. 소셜미디어를 통해서만 홍보나 영업을 하는 식당, 공연장 등에 알 수도, 갈 수도 없는 점이 아쉽기는 하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를 시작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소셜미디어를 그만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는 소통 방식에 대한 불만이다. 단문이나 사진, 짧은 영상으로 교류하는 것에는 양질의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문제가 따른다고 생각한다. 깊은 생각을 전달하거나 감정을 나누기에는 얄팍한 방식이다. 그러한 한정적인 소통의 수단으로는 즉각적인 감흥이나 유발하는데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마주 보고 종일 대화해도 상대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인간인데, 단문으로 생각을 전달하고 전달받는 것은 어렵다고 여겼다. 누군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읽어내는 데는 몇백 자 정도로는 부족하다. 나는 글이나 토론으로 소통하는 것이 더 편하고 효과적이다. 후술 할 두 번째 이유는 소셜미디어가 구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유해함이다.


소셜미디어가 일으키는 문제들


소셜미디어가 유해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소셜미디어가 미치는 악영향을 크게 개인, 사회, 정치문화, 정보 환경의 네 가지 차원으로 분류할 수 있다. 우선 개인적 차원에서는 주의력 저하 및 인지 피로, 자존감 훼손, 감정 왜곡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끊임없이 알림을 받고, 스크롤하고 빠르게 정보를 소비하는 것은 주의력을 분산시켜 깊이 있는 사고와 몰입을 방해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긴 글이나 진지한 대화에서 집중력을 급격히 떨어지게 하는 원인이 된다. 또한 소셜미디어는 타인의 '좋은 순간들'만 보여준다. 이는 비현실적인 자기 이미지에 대한 집착이나 비교로 인한 우울감을 야기하는데, 특히 외모, 소득, 인간관계에 대한 열등감이 부각되어 신경정신과적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소통의 피상화, 사이버불링 문제가 대두된다. 단문, 사진, 밈으로만 소통하는 구조에서는 깊은 이해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관계의 양이 늘어나더라도 질은 떨어지는 '고립된 연결' 상태가 된다. 친구나 팔로워는 많아져도 의미 있는 대화는 오히려 적어진다. 게다가 소셜미디어의 익명성이나 가벼운 표현 구조는 여러 플랫폼을 책임감 없는 혐오 발언, 비방, 선동 등을 양산하는 인큐베이터로 만들었다.

정치문화적 차원에도 부작용이 존재한다. 사용자가 선호하는 정보를 반복해서 노출하는 알고리즘은 다양한 의견 노출을 줄이고 이용자들의 확증 편향을 심화시켰다. 이로 인해 정치사회적 양극화, 집단 간의 혐오와 배척도 심해진다. SNS가 민주주의 공론장을 만든다는 주장은 실증적으로 점점 더 힘을 잃어가고 있다. 심지어 사용자를 불러 모을 수 있는 자극적인 내용이 알고리즘의 우선적 선택을 받고, 검증되지 않은 내용이 빠르게 퍼진다. 가짜뉴스는 진짜뉴스보다 최대 100배 빠른 속도로 퍼진다고 한다. 그 결과로, 백신 음모론이나 선거 조작설 같은 허위 정보가 이제는 실제로 사회를 위협하는 중대한 요소 중 하나로 부상하는 중이다.

정보 환경적 차원의 부작용으로는 탈맥락화와 알고리즘 권력의 비가시성을 꼽을 수 있다. 소셜미디어에 게시하는 짧은 문장, 잘려나간 문맥은 말의 전후 의미를 훼손하고, 잘못된 해석이나 오해를 유발한다. 이 때문에 복잡한 문제들도 짧은 트윗 하나로 단순화되어 본질이 왜곡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또한 사용자 개개인이 알고리즘을 구성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알고리즘이 사용자를 구속한다. 사용자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않을지는 플랫폼 알고리즘이 통제한다. 이는 정보 접근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며, 기술 권력의 비민주성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문제의 원인


소셜미디어가 이토록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것은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소셜미디어는 즉각적이고 간편한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한다. 글자 수가 제한된 트위터, 시각적 표현을 강조하는 인스타그램, 간단한 동영상을 공유하는 틱톡 등은 모두 사용자가 신속하게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이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빠르게 감정을 표현하고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깊이 있는 생각이나 논의를 할 시간을 주지 않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기도 하다. 농밀한 대화보다는 즉각적인 반응이 우선되는 환경이다. 이로 인해 사용자는 주제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나 복잡한 의견을 표현하기 어려워진다. 그 결과로 대화는 피상적이고 단기적인 것이 되며, 깊이 있는 사고는 결여된 상태에서 즉흥적으로 떠다니는 의견들만 주고받게 되는 것이다. 강점으로 작용하는 즉각적이고 간편한 표현방식이 깊이 있는 소통을 방해하고, 사고의 단절과 왜곡을 유발하여 결국 전술한 문제들을 일으킨다. 소통 방식의 구조적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이러한 폐단은 계속해서 나타날 것이다.


유해한 도구는 도구인가


하지만 소셜미디어를 증오심의 인큐베이터 정도로 치부하는 것은 불공정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순기능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은 억눌린 목소리를 듣게 해주는 확성기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책이나 방송처럼 격식 있는 미디어에서는 배제되었던 개인과 집단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내어주었다. 페미니즘 같은 담론들도 소셜미디어가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힘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정보를 신속하게 공유하고 연대하는 플랫폼 역할도 수행한다. 2011년 아랍의 봄이나, 우크라이나 전쟁 중 소셜미디어를 통해 민간에서 공유한 정보는 수많은 생명을 살렸다. 이 기능은 국가 권력이나 거대 언론의 필터 없이 직접적으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또한 창작의 문턱을 낮추고, 소통의 지리적 한계를 초월하게 만들고, 1인 크리에이터를 부상하게 하는 등 다양한 순기능을 보인 것이 바로 소셜미디어다.

그렇다면 우리는 소셜미디어라는 도구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칼은 일상의 다양한 영역에서 필수품이지만 흉기가 될 수도 있다. 손쉬운 흉기로 작용할 수 있음에도 칼을 이용하는 까닭은 대체불가능한 역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칼이 자주, 그리고 습관적으로 손을 벤다면, 그것은 여전히 도구라고 불릴 수 있을까. 사용자를 해치는 빈도가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면 우리는 그것을 도구가 아니라 흉기로 받아들인다. 소셜미디어 역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도구로 불러야 마땅할지, 흉기로 취급해야 할지 말이다.


나는 사용하지 않겠지만


모든 도구는 그것을 쥔 이의 숙련도와 의지에 따라 유익할 수도, 해로울 수도 있다. 따라서 소셜미디어를 크게 폄훼하거나 부정할 의도는 없다. 이 도구를 안전하고 능숙하게 다룰 자신이 없기에 사용하지 않을 따름이다. 내게는 소셜미디어의 장점보다 단점이 더 뚜렷하게 보인다. 소셜미디어 계정을 만든다면 좋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겠지만, 혀를 차게 만드는 게시물들에 피로감을 느낄 순간이 더 많을 것이다. 불완전한 소통을 선호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감정이나 생각을 표출하는 데 부정적이며, 스스로를 검열하는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삶의 방식이다. 나는 생각이 필요할 때는 책에 의지하고 교류가 필요할 때는 식사나 술 약속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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