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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사람

나의 눈물버튼, 우리 엄마

by 꽃별

“애가 어린데 어떻게 그런 것도 해? 대단하다.”


이런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우리 엄마가 육아의 일부를 맡아 주시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의 육아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시집간 딸, 이제는 함께 나이 들어가는 딸의 육아에,

그 딸의 아들인 손주까지 육아하고 계신다.



2020년, 내가 출산할 당시엔 코로나로 인해 산부인과 출입이 통제되어 있었다.

유도 분만을 위해 병원에 갔는데, 이틀이 걸릴 수도 있다는 말이 무색하게 몇 시간 만에 응급 제왕절개를 하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듣고 엄마는 택시를 타고 한걸음에 달려오셨지만, 분만실로는 갈 수 없어 접수처가 있는 1층에서 초조하게 기다리셨다.


출산 소식을 들고도, 엄마는 올라오지 못하고,

건물 밖에서 딸과 손자가 있을 층을 한참 바라보다가 집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산후도우미가 왜 필요해? 내가 있는데.”


조리원에서 퇴원한 뒤, 엄마는 매일같이 집에 오셔서 딸과 손자를 돌봐 주셨다.

덕분에 나는 출산 휴가를 마치자마자 바로 복직할 수 있었다.



물론 엄마가 계시다고 해서 워킹맘의 삶이 마냥 편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다른 워킹맘보다 ‘믿는 구석’이 있는 건 사실이다.

아이가 갑작스레 독감이라도 걸리면,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엄마에게 부탁할 수 있으니까.


이렇게 엄마는 내게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엄마의 소중함을 잊기도 한다.



“엄마, 하원 차량에서 내린 아이를 자꾸 편의점에 데려가 먹을 걸 사주면 어떡해요.

할머니가 다 받아주니까 더 떼쓰잖아요.”


이렇게 엄마 탓으로 돌려놓고는, 이내 후회한다.


오늘 아침에도 아이 등원을 도우러 오신 엄마께 친절하지 못했다.


출장 전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정신이 없다는 핑계로,

엄마와 다정하게 눈 맞출 여유조차 없었다.



“다른 애들은 다 엄마가 하원하러 오는데, 할머니가 오는 게 안쓰럽잖아.

그래서 나는 더 혼을 못 내겠어.

너 키울 땐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렇게까지 혼낼 필요가 있었나 싶어.

다 때가 되면 철이 드는 건데…”



아이의 양말이 너무 더럽다며 매번 손빨래를 하는 엄마.


허리가 아프다면서도 나한테도 무거운 아이를 업고 집까지 걸어오시는 엄마.


과연 나도 엄마처럼 아이를 위해 헌신할 수 있을까?



엄마가 되고 나니, 엄마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가 되고 나니, 엄마에게 더 감사하게 되었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의 말과 행동이 모두 사랑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엄마’라는 단어는 언제나 내게 ‘눈물 버튼’이다.


같은 여자로서 엄마의 삶이,

같은 엄마로서 엄마의 삶이,

마음이 아프고 슬프다.




엄마, 정말 고마워.

함께할 수 있는 동안 더 많은 추억을 만들자.


이왕이면 오래오래 건강하게 내 곁에 있어줘.




그리고,


다음 생에도,

내가 엄마 딸 할게.


철부지 딸, 계속 육아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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