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를 몇 번쯤 봤을까? 열 번은 족히 될 것 같다. 맨 처음 본 건 아마 중학교 1학년이나 2학년 때인듯하다. 3학년 때 같은 반 친구가 부른 노래가 그 영화에 나온 노래임을 알았으니까.
영어 발음이 좋았던 그 아이가 교실 앞에 서서 ‘사운드 오브 뮤직’을 부를 때 나는 홀린 듯이 빠져들었다. ‘사운드 오브 뮤직’ 외에 내 귀에 들린 단어는 my heart, sing, when, go to 몇 개뿐이었다. 무슨 말인지도 알 수 없는 많은 단어를 빠른 가락에 맞춰 잘도 갖다 붙이는 아이가 신기했다. 뜻을 몰라도 노래는 무척 아름답게 들렸다. 여운을 남기며 긴 노래가 끝났을 때야 참았던 숨을 토해내었다.
그 후로 특별한 날이면 그 아이는 아이들의 요청으로 ‘사운드 오브 뮤직’을 불렀다. 몇 번을 들어도, 안 들리던 말이 잘 들리지는 않았다. 안 들리는 말까지 채워서 나도 그 노래를 불러보고 싶었다.
얼마 전에야 동영상을 찾아서 따라 불러보았는데 무척 어려웠다. 한 호흡에 가야 하는 여러 개의 영어 단어들을 잘 연결하고 싶었지만 혀와 입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한국어에 특화된 발음 기관이라서일까? 그런데 같은 한국인인 그 아이는 어떻게 그렇게 리듬을 타면서 매끄럽게 잘 넘어갔는지 새삼 감탄했다.
영화를 볼 때 나는 여주인공인 줄리 앤드루스에게 반했다. 세상에 저렇게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있다니, 하고 놀랐다. 고음을 잘 내는 교회 언니를 부러워했는데 그 언니와 견줄 바가 아니었다. 몇 옥타브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어찌 저리 아름답게 부를 수 있을까 하여 박수가 절로 나왔다.
마리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 트랩 대령이 생각난다. 내 짝은 트랩 대령에게 반했지만 남자로서 그렇게 매력적인 여성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예쁘고 씩씩하고 노래와 춤도 아주아주 잘하는 데다 진심으로 이해하고 재미있게 놀아주어 자신의 아이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사람을. 나도 저렇게 예쁘고 용감하고 노래를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 했다.
교실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을 부른 아이도 마리아처럼 밝고 쾌활했다. 넓은 이마에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나던 그 아이는 인기가 많았다.
나는 늘 정해진 내 자리 주위에 있는 아이들하고만 놀았다. 그 아이, 마리아는 내 행동반경에 있지 않아 어울릴 일도 없었다. 그런데 하루는 마리아가 쉬는 시간에 내 자리로 와 무슨 말을 했다. 굳이 나한테 하지 않아도 될 말이었다. 체육 시간에 운동장에 나갔을 때도 시작하기 전의 쉬는 시간에 한 번씩 내 옆으로 와서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곤 했다. 고등학교 입시에 반영되는 체력장 걱정을 같이 하기도 했다.
마리아는 체력장 종목 가운데 매달리기를 유난히 못 했다. 철봉에 27초 동안 매달려 있어야 만점인데 철봉을 양손으로 잡고 매달린 사람의 엉덩이를 뒤에서 받쳐주는 아이가 시작 신호에 맞춰 손을 떼자마자 떨어졌다. 두 발이 땅에 툭 떨어져 울상짓던 얼굴이 생각난다.
나는 매달리기는 잘해서 항상 만점을 받았지만 윗몸 앞으로 굽히기와 수류탄 던지기를 심각하게 못 했다. 앞으로 굽히기는 조금 높은 단 위에 올라가 허리를 숙이고 양손을 발밑에 있는 자 위로 많이 내려보낼수록 고득점이다. 나는 아무리 애를 써도 배가 다리에 붙지 않아 손가락 끝이 발까지 미치기도 어려웠으니 마이너스만 아니면 다행이었다.
윗몸 앞으로 굽히기가 유연성 부족이라면 수류탄 던지기는 요령 부족이었을까? 선생님이 멀리 던지는 법을 제대로 안 가르쳐 주었을까, 내가 못 알아들었을까, 해도 안 됐을까? 하여튼 너무 안 나갔다. 29미터가 만점이었던 것 같은데 12, 3미터쯤 던졌다. 그럼 20점 만점에 3점이다. 실제와 같은 모양의 묵직한, 어두운 팥죽색 수류탄을 던지고 생각했다. ‘나는 전쟁 나면 수류탄을 던져도 코앞에 떨어져 같이 죽겠구나. 가장 생존에 도움 될 종목을 제일 못하는구나.’
체육복을 입은 마리아가 수류탄을 던지던 모습이 떠오른다. 자세로 보건대 나보다는 멀리 던졌을 것 같지만 결과는 모른다.
체력장은 12월에 치를 고등학교 입학시험보다 몇 달 먼저 보았다. 나는 치명적인 두 종목 때문에 결국, 특급인 20점을 받지 못하고 1급으로 19점을 받았다. 마리아는 매달리기 외의 종목은 잘해서 20점을 받았을까? 체력장을 치른 뒤로는 체육 시간에도 운동장에 나가지 않고 교실에서 다른 시험 과목을 공부하게 한 적이 많았다.
나는 마리아가 말을 걸었을 때 ‘왜 나에게 말하지? 친하지도 않은데’ 하는 생각만 하며 별로 친근하게 대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친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당시 나는 말 못 할 집안 사정이 있어 새 친구를 사귀는 게 부담스러웠고 친한 아이에게도 마음의 문을 다 열지 못했다. 그런데도 마리아는 나를 이미 친한 사이처럼 스스럼없이 대했다. 친구는 마리아를 두고 ‘쟤, 너 참 좋아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가을 소풍 때, 마리아가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사진이 나오자 나에게 와서 사진을 찾겠다고 신청했느냐고 물었다. 그때 사진사에게 찾아서 남아있는 사진을 들여다본다. 짙은 감색 교복을 입은 두 아이가 너른 들판의 큰 바위에 걸터앉아 있다. 비스듬한 각도로 그 애가 조금 앞에, 내가 뒤쪽에 있다. 나보다 키가 컸던 마리아가 왼팔로는 내 어깨를 감싸고 오른팔로는 내 오른팔을 잡고 다정한 자세를 취하며 웃고 있다. 나는? 목석같다. 무표정하게 그냥 존재만 하고 있다. 소품처럼. 찍기 싫었던 건 아니지만 그때까지도 마리아와 친하지 않다고 여겨 좀 어색했다. 도대체 친하다는 기준이 뭐길래? 또 친한 사람용과 안 친한 사람용 얼굴이 따로 있기라도 했던가? 그래서라기보다 사진은 어쩌다 필요해서 찍는 거지 수시로 김치~, 하고 웃으며 찍던 때가 아니라 익숙하지 않아서였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 애가 하는 만큼 다정한 분위기를 내지 못하고 사진을 망친 것 같아 미안했다.
중학 시절의 마지막 소풍을 다녀오고 나니 입학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시험을 보고 졸업을 하고 고등학교 배정을 받았다. 마리아가 어느 학교로 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와 같은 학교는 아니다. 그 후 풍문으로도 소식을 듣지 못했다. 좋아하는 영어를 전공하여 그 방면으로 진로를 개척했는지 어떤지도 알 수 없다.
그 아이는 나를 까맣게 잊었겠지만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를 다시 보거나 어디선가 ‘사운드 오브 뮤직’이나 ‘도레미 송’ 같은 그 영화 속의 노래가 흘러나오면 그 아이가 생각났다. 영어가 낯설었던 때 영어로 된 노래를 유창하게 부르고 무정한 나를 다정하게 대한 아이. 지금이라면 나도 정답게 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열다섯 살은 다시 올 수 없고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 바로 옆을 지나가도 알아보지 못할 테다. 이 생애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 해도 이 노래에 꾸준히 관심이 가서 배우고 부를 수 있게 된 건 그 아이 덕분이니 좋은 인연이라 생각한다.
‘마리아, 고마워. 어디서든 잘 지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