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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으로 가정을 이루고

by 가을산

중, 고등학교 가정 시간에 배운 게 많다. 수예, 뜨개질, 요리, 옷 만들기 등 예전에 신부 수업이라 불리던 것들을 두루 해보았다.

중학교 때는 한 학기에 한 번씩 있는 가사 실습 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공부 시간을 3시간이나 빼서 친구들과 맛있는 걸 만들어 먹는데 어찌 아니 기다려지랴. 주부의 부엌 일도 친구들과 함께 하면 즐겁고 기다려지는 시간이 될까? 조용히 하라고 해도 이내 시끌벅적해져 선생님 목소리도 높아만 가던 그 시간을 떠올리면 웃음이 절로 난다. 수시로 냄비나 스텐 그릇이 바닥에 떨어져 쨍그랑 소리가 요란하게 나면 터지는 웃음소리와 함께 실습실은 더욱 소란스러웠다. 우리는 재미있었지만 60여 명이나 되는 아이에게 요리를 가르치느라 선생님은 얼마나 힘드셨을까?


1학년 때는 도넛과 샌드위치, 2학년 때는 오므라이스와 카레라이스를 만들었다.

샌드위치는 비교적 간단한 요리인데 3시간 동안 그걸 한 게 맞나, 하는 의심이 드는데 달걀을 삶아 으깨고 오이를 썰어 식빵 위에 올리던 일이 실습실 가운데 떠오르는 걸 보면 했나 보다.

도넛을 만드느라 밀가루를 반죽할 때, 우리 조의 반죽은 매끈하지 않고 우툴두툴해서 걱정했더니 선생님이 보시고 그런 게 더 맛있다고 해서 안심했던 기억이 난다. 컵과 병뚜껑으로 도넛 모양을 찍어내던 바쁜 손, 튀기다가 기름이 튀어 움찔 뒤로 물러나던 친구들의 모습도 보인다.

3시간은 준비된 재료를 다듬고 만들어서 먹고 설거지하고 뒷정리까지 말끔하게 하는 데 드는 총 시간이었다. 보통 2, 3, 4교시에 해서 이어진 점심시간에 교무실의 선생님들께도 가져다드리곤 했다.


3학년 때는 입시 준비에 매진하라고 가사 실습을 하지 않았다. 이론만 쑤셔 넣던 머리도 쉬게 할 겸 한 번쯤 떠들썩하니 맛있는 걸 만들어 먹었어도 좋으련만.


중2 때 가정 선생님은 실습 전에 먼저 앞치마를 만들게 했다. 마음에 드는 천을 준비해 수업 시간에 재단한 걸 집에서 엄마가 재봉틀로 박아 주었다. 선생님도 그렇게 배워 만드셨다는 앞치마는 귀여운 앞치마가 아니었다. 소매가 있고 온몸을 감싸 의사의 수술복 같았다. 그 옷을 실습할 때 체육복 위에 입었다. 집에서도 명절 맞이할 때나 부엌 일이 많을 때 종종 입었다. 속의 옷을 버릴 염려가 없어 좋았다.


옷 만들기도 배웠는데 쉽지 않았다. 상의 기본 형태를 만들 때 얼마간의 계산도 필요했다. 굽은 자도 써서 그리고, 마름질하고, 여러 과정을 거쳐 몇 분의 일로 축소한 작은 옷을 만들었다. 겨우 제출하기는 했지만 내가 디자이너로서의 재능은 없음을 확실히 알았다. ‘가정’의 세 기둥인 의, 식, 주 중 의생활 분야가 가장 어려웠다. 재봉틀 쓰는 법도 기본은 배웠는데 재봉틀도 없고 쓰지 않다 보니 다 잊어버렸다.


바느질에도 시침질, 감침질, 박음질 같은 이름이 있어 조금씩 다른 방법으로 바늘을 쓴다는 걸 알았다. 무슨 무슨 스티치라는 것도 많이 배웠는데 면을 채우는 데 유용한 새틴 스티치와 장미꽃을 수놓는데 적절하다는 바리온 스티치, 손수건 가장자리 장식에 좋다는 블랭킷 스티치 정도만 기억에 남아있다.


동그란 수틀에 그림이 그려진 천을 끼우고 색색의 실을 꿴 바늘로 수를 놓았다. 그동안 배운 각종 스티치가 총동원되었다. 장미꽃잎을 표현할 땐 붉은 실로 도톰하게 바리온 스티치, 나뭇잎을 메울 때는 초록색 실로 새틴 스티치... 팽팽하게 끼운 천의 아래위로 바늘을 넣고 빼다 받치고 있던 손가락을 찌르기도 했다. 피가 나면 잠시 백설 공주를 생각했다. 백설 공주의 엄마는 내리는 눈을 쳐다보며 수를 놓다가 바늘에 손이 찔려 눈 위에 핏방울이 떨어지자 ‘이 눈처럼 하얀 피부에 이 피처럼 붉은 입술을 가진 아기를 가졌으면’ 하고 바랐다.


햇빛 드는 교실에 조용히 앉아 수를 놓고 있으면 때로 시간이 정지된 것 같았다. TV 드라마에서 보던 양반집 규수가 생각났다. 옛날 반가의 아씨들은 이러며 시간을 보냈단 말이지, 하며 구부렸던 허리를 쭉 펴고 고개를 들어 기품있는 자세를 취해보기도 했다. 활동적인 아이들은 수틀에 붙들려 있는 게 지겨운지 ‘만날 이런 것만 하고 살라면 못할 것 같아. 양반 아닌 게 다행이지.’라고 했다.


바느질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들었다. 기한을 정해 검사 맡으라는데 아무리 바늘을 부지런히 놀려도 수업 시간 안에 다 할 수 없었다. 집에 가져가서도 하자면 대개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시기와 겹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 역시 절반의 배점을 차지하는 실기 시험이므로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방학 숙제로 돌려 개학하고 검사받은 적도 있다. 그럴 때는 2학기 성적에 반영되므로 더운 여름날에도 몇 시간씩 수틀을 끼고 앉아 땀을 흘려야 했다.


품은 많이 들었지만 가정, 가사 덕분에 이룬 살림이 적지 않다. 우선 조각 이불이다. 사방 30cm 크기인 천 여러 장에 수를 놓았다. 수를 놓은 천과 놓지 않은 천을 번갈아 가며 배치하여 큰 이불이 되자면 수 놓은 천이 15장이나 18장은 되어야 했다. 그 많은 양을 한 땀 한 땀 수놓아 커다란 이불이 완성되자 감개무량했다. 이불을 꺼내고 덮을 때마다 뿌듯했다. 시간이 감에 따라 수놓은 실이 상하기도 했지만 연두색 바탕의 조각 이불은 오랫동안 나와 식구들을 포근히 덮어 주었다. 내가 집을 떠난 뒤로는 어찌 되었을까?

다음으로 가리개가 있다. 중학교 때 놓은 수는 서양 자수라고 했다. 고등학교 때는 동양 자수를 놓아 두 쪽짜리 가리개를 만들었다. 크기가 커서 할 때는 힘들었지만 두꺼운 마직 천에 난초가 수 놓인 가리개는 그럴듯했다. 교화가 난이어서 그 그림을 선택했을 테다. 우리 학교의 초대 교장 선생님은 청마 유치환이다. ‘난의 노래’라고 불린 교가의 노랫말도 쓰셨다. 그 점이 늘 자랑스러웠다. 바위 옆에 진초록 난 줄기가 멋들어지게 휘어져 있는 그림이 든 가리개는 겨울이면 외풍 센 방의 윗목에 파수꾼처럼 서 있었다. 그건 어디로 갔을까? 시집간 큰언니가 달라고 해서 준 것 같기도 한데 이제 언니가 없어 확인할 길이 없다.

코바늘로 뜬 레이스 작품도 있다. 오른손을 펴본다. 실을 건 매끈한 코바늘을 작은 구멍 속으로 넣었다 뺐다 다시 넣던 감각이 느껴진다. 탐스러운 포도송이가 넓은 잎과 함께 들어간 하얀 테이블보를 만들었다. 선생님 말씀대로 뜨다 보니 실력이 늘어 시작 부분과 중간 이상의 폭이 달라졌다. 아래가 좀 쭈글쭈글했지만 잡아당겨 가며 식탁 유리 밑에 깔았다. 내가 만든 작품으로 우리 집을 예쁘게 꾸미니 기분이 좋았다. 그건 또 어디로 갔을까? 결혼한다고 싹 가져오기 미안해서 두고 왔는데 어머니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오빠네 집으로 옮기실 때 어떻게 되었는지. 챙기지 못해 아쉽다.


대학 입학시험을 치른 뒤 대바늘뜨기도 배웠다. 가늘고 긴 대나무의 한쪽 끝이 뾰족할 뿐 바늘귀가 없는데 왜 바늘이라 하는지 이상했다. 실을 거는 도구를 통칭해서 바늘이라 하는지. 어렸을 때 시장에 가면 가게 밖에 동그란 의자를 내놓고 앉아 옆 가게의 사람이나 지나가는 사람, 손님과 할 말 다 하면서 대바늘로 옷을 뜨는 아주머니가 무척 대단해 보였다. 직접 해보니 과히 어렵지는 않았다. 옷은 못 만들었지만 노란 털실로 실내용 양말을 떴다. 발등을 감싸고 부츠처럼 높이 올린 목에 줄을 끼워 묶을 수 있게 하고 줄 끝에는 작은 꽃을 달아 동생에게 주었다.


십자수도 배웠다. 커다란 나비 문양을 완성해 한동안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었다. 요즘 아이들이 수능 시험 보고 나서 학교에서 종일 이런저런 영화만 보거나 영화를 틀어놓은 아래서 핸드폰만 보다 오는 것보다는 생산적이었다 할 수 있을까?

수학, 과학 공식 같은 건 다 잊어버렸다. 역사 시간에 배운, 어느 왕이 무슨 업적을 남기고 어느 나라가 언제 어떤 전쟁에서 이겼다는 것도. 그렇지만 가정, 가사 시간에 배운 몇 가지는 살아남았다.

다림질할 때마다 면, 마는 가장 높은 온도, 모, 견직물은 중간 온도, 합성 섬유는 가장 낮은 온도라고 가정 시간에 배운 게 생각난다. 싱크대 앞에 서면 ㄷ자형 부엌이 일하기에 가장 효율적이라고 한 게 떠오르고 시금치를 삶을 때는 휘발성 유기산이 날아가도록 뚜껑을 열라고 한 걸 상기한다.

한 번씩 밥상에 놓인 음식을 보며 다섯 가지 기초 식품군인 '단무탄칼지'(단백질, 무기질, 탄수화물, 칼슘, 지방)가 다 있나 찾아보았다. 다 있을 때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식빵에 곰팡이가 피거나 음식이 상했을 때는 곰팡이 번식의 3대 조건이라는 온도, 습도, 양분을 모두 제공한 자신이 못마땅해 내 안에도 곰팡이가 핀 듯 속이 상했다.

높은 옷값을 마주하면 의류비 지출은 한 달 생활비의 12~13%가 적당하다고 배운 걸 되새겨 보았다.

월령에 따른 아기의 발달 단계를 수업 시간마다 창처럼 부르게 한 선생님 덕분에 아기가 개월 수에 따라 대략 무얼 할 수 있는지 안다.

‘1개월 밝은 쪽 소리 나는 쪽, 2개월 미소, 3개월 옹알옹알, 4개월 낯가림, 5개월 이빨, 손가락, 엄마 얼굴...8개월 앉는다...12개월 걷는다.’

내 아이를 키우면서도 생각했고 요즘도 아기를 보면 몇 개월일까 가늠하며 속으로 이 창을 불러 본다.


다른 어떤 과목보다 ‘가정’에서 배운 내용이 내 머릿속에 많이 남아있다. 다행이다. 주요 과목이 아니라고 무시되었던 ‘가정’이 결혼 뒤 나에게는 최고 주요 과목이었으니. 집안일을 그리 좋아하지 않고 잘하지도 못하지만 우리에게 가정이 필요하듯 가사는 꼭 필요한 일이다. 나는 지금까지 중, 고등학교 가정, 가사 시간에 배운 걸 바탕으로 그 일을 해왔다.

학교를 나오면 이른바 주요 과목이 아니었던 과목이 주요 과목이 된다. 음악, 미술, 체육, 가정, 윤리다. 이 과목들을 열심히 공부한다면 심신이 건강해지고 범죄도 줄고 윤기 나는 삶을 살 수 있으리라 본다.

동, 서양 자수나 십자수는 눈이 아파 못하더라도 외국 영화에 나오는 할머니처럼 흔들의자에 앉아 무릎 덮개를 하고 코바늘이나 대바늘로 무언가를 뜨는 일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무료함을 달래기에 좋을 것 같다. 부드럽게 흔들리는 가운데 지난날을 회상하기에 떴다 풀었다 하는 뜨개질은 좋은 매개체인 듯하다. 나는 소질도 없고 무료하지 않아 지금은 뜨개질을 하지 않는다. 과거를 살살 흔들어 추억을 일으켜 줄 흔들의자가 있다면 하게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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