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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남자

by 가을산

정희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나는 짝과 함께 복도 끝에서 정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문이 사실이면 어쩌나, 마음이 불안했다. 오후 4시 반쯤 되었을까. 어둑한 복도 가운데 ‘6-6’이라 쓰인 팻말이 걸려있는 우리 반 교실 문은 좀체 열리지 않았다.

선생님은 방과 후 아이들 몇 명을 남으라고 할 때가 많았다. 대개 학급 임원이거나 어느 정도 공부를 잘하는 축에 드는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이름이 불리고 남아서 선생님 일을 돕는 게 싫지는 않았다. 시간이 남아돌던 우리는 친구와 같이 학교에 더 머무는 것도 재미로 여겼다. 선생님이 일감을 주고 직원 조회라도 하러 가고 나면 칠판에 뭔가를 쓰고 교편으로 애들을 가르치는 흉내도 내곤 했다.


남아서 우리가 한 일은 주로 시험지 채점하기였다. 시험이 많았다. 한 달에 한 번씩 일제고사라 해서 전 과목 시험을 보았고 과목별 시험도 자주 있었다. 중요한 시험은 옆 반과 시험지를 바꿔서 채점하기도 했다. 80명 가까운 아이들의 과목별 시험지를 매기기는 품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시험이 끝난 뒤에는 으레 남으려니 했다.

다음 날 아침에 아이들이 자습할 거리를 칠판에 써놓는 일도 했다. 또, 공문을 다른 학년이나 다른 반 선생님께 갖다 드리기도 했다.

선생님은 심부름을 참 많이 시켰다. 공부 시간에도 잘 시켰다. 나는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공부 시간에 아무도 없는 복도를 걸어가 다른 반 교실 문을 두드려 한창 수업 중이던 그 반 선생님께 뭔가를 전해드리는 걸 여러 번 했다. 선생님이 읽어본 뒤 뭐라고 써서 돌려줄 때까지 기다렸다가 도로 받아오기도 했다. 교실 밖에서 기다리는 게 좋은데 들어오라고 하면 교실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는 정말 뻘쭘했다. 교실 안을 둘러보며 아는 애를 발견하면 웃기도 하고 그랬으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했다. 백 오륙십 개의 눈이 나를 쳐다보는 게 부담스럽기만 했다. 그냥 서 있기가 어색해 칠판 쪽을 쳐다보며 거기 쓰인 글자들을 읽었다. 머릿속으로는 한 자도 들어오지 않았다.


한 번은 내가 가져가는 내용이 뭔가 하고 들여다보았더니 반별로 새로 당선된 회장, 부회장의 이름을 적게 하는 것이었다. 임명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알아야 하겠지만 그걸 꼭 공부 시간에 해야 하나 싶었다. 교무실에서 선생님들끼리 돌려가며 쓰면 될걸.


남아서 채점을 다 끝낸 어느 날, 선생님은 나와 짝에게 어딘가를 같이 다녀오라고 심부름을 보냈다. 돌아와 보니 함께 있었던 애들은 다 가고 정희 혼자 있는데 표정도 행동도 좀 이상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정희는 여느 때와 달리 말이 없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았다. 선생님이 해서는 안 될 나쁜 짓을 한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날도 수업이 끝난 뒤에 선생님은 할 일이 있다고 나와 짝과 정희를 포함한 몇 명에게 남으라고 했다. 채점과 다른 할 일을 다 하고 오려 하자 선생님이 우리는 가고 정희는 잠깐 있으라고 했다. 왠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지만 선생님이 가라는 데 있을 수는 없었다. 짝과 나는 머뭇머뭇 정희를 돌아보며 교실 밖으로 나왔다. 나오면서 일부러 교실 문을 조금 열어 놓았는데 그 문은 금방 탁, 하고 닫혔다. 기다린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짝과 나는 정희를 기다렸다. 언제나 나올까?

이윽고 멀리서 드르륵,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닫히는 소리도 들렸다. 정희가 우리 앞으로 걸어왔다. 우리는 정희의 얼굴과 복장을 살폈다.

“너, 단추 열렸다!”

짝의 말에 자신의 윗옷을 내려다본 정희는 말없이 앞섶의 단추를 끼우고 머리를 쓸어올렸다. 얼굴이 핼쑥했다. 창밖으로 바람 소리가 들렸다. 복도를 벗어났을 때 짝이 짐짓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물었다.

“뭐 했는데?”

나는 차마 묻지 못했던 말이다. 정희는 교실 쪽을 흘낏 보고는 별일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만지는 거지. 뭐.”

발이 뚝, 멈췄다. 입도 절로 벌어졌다. '아, 소문이 사실이구나. 선생님이 여자애를 남겨서 몸을 만진다는 소문이.' 말투로 보아 정희는 벌써 여러 차례 겪은 모양이었다. 우리는 몹시 놀랐지만 상세히 물어보지는 않았다. 대신 욕을 했다.

“뭐 그런 인간이 다 있어? 흐으~ 징그럽다. 나이도 많은 게.”

정말 징그러웠다. 오십도 넘은 아저씨가, 자기 부인도 있으면서 그게 뭐냐고 마구 선생님을 욕해 주었지만 더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나와 짝은 정희의 비밀을 지킨다고 지켰지만 다른 여자애들도 아는 애는 아는 것 같았다. 선생님의 추행은 돌아가면서 저질러졌기 때문이다. 정희 말고도 먼저 당한 애들이 있었다. 이번에는 정희 차례인지 담임은 정희를 자주 혼자 남게 했다. 정희와 그 아이들의 공통점은 사춘기를 맞아 신체의 변화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당시 내가 작고 깡말라서 정말 다행이라 여겼지만 나와 짝도 선생님의 무릎에 앉혀진 적이 있다. 남녀 아이들이 여러 명 있을 때였다. 선생님은 나를 오라고 해 한번 안아 보자며 무릎 위에 앉히고 가볍다, 아직 어린애네, 같은 말을 했다. 나는 불편하기는 했지만 아버지뻘인 선생님께 귀여움을 받는 느낌도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있어 불안하지는 않았다.

정희는 달랐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남자 선생님과 단둘이 있었다. 복도 가운데를 걸어가는 사람에게 잘 보이지 않도록 교실 문 바로 옆에 있었을 테다. 학생을 남기면 안 되는 교칙이 있는지 채점할 때 우리도 그쪽으로 앉으라고 했다.


여러 남매의 장녀라서인지 평소에도 언니 같은 데가 있던 정희는 친한 우리에게도 말하면서 욕을 하거나 하지 않고 혼자 견뎠다, 우리가 말해봤자 해결해주지도 못할 동생들인 것처럼.


선생님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은 애를 골라서 몹쓸 짓을 했다. 정희네 부모는 먹고살기도 바쁜 사람들이었다. 그때 정희 아버지가 계셨는지는 모르지만 정희는 일하러 간 엄마를 대신해 살림도 하고 동생들을 돌보았다. 집에 놀러 갔을 때 어린 동생이 흘리는 침을 닦아주고 바닥에 오줌을 싸서 우리가 피하자 아기 오줌이 뭐가 더럽냐며 걸레로 쓱쓱 닦던 정희. 담임의 추행을 알아도 당당히 대응할 형편이 못 된다고 여겨 정희는 부모에게도 말하지 않고 참기만 했을까?

지금 생각해도 견디는 수밖에 없었던 정희가 너무도 안쓰럽다. 그리고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 게 정말 미안하다.

나쁜 남자는 한 명이 아니었다. 옆 반에도 있었다. 동창 모임에 한 번 나갔을 때 한 여자애가 들려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그 선생님도 오십은 넘었을 텐데 그 애를 무릎에 올려 옆으로 안고 가슴 가운데 위를 입으로 꽉 물었단다. 나는 기함을 했는데 남자애들은 그리 놀라지도 않았다. 그러니 노느라 정신없던 어릴 때는 오죽했으랴. 교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몰랐을 테다. 알아봤자 무슨 도움이 되었을까만. 혹 힘 있는 아버지를 둔 애라도 있었다면 사태가 달라졌을지.

우리 반 부반장이었던 남자애는 선생님께 돈을 내고 과외 공부 한 일에 대해서 더 열심히 얘기했다.

우리 선생님은 반 아이들에게 비밀과외를 했다. 그 과외는 거의 강제였다. 선생님은 하위권은 빼고 성적이 중간 이상은 되면서 웬만큼 사는 아이의 부모를 오게 해서 과외 공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대부분 선생님 앞에서 거절하기가 힘들어 할 수 없이 응했다.

우리 집은 못 산다고 판단했던지 나에게는 한 번도 제안하지 않았다. 내가 알기로 과외 제안을 받지 않은 아이는 나와 반장, 둘뿐이다. 반장에게는 하늘이 두 쪽 나도 제안할 수 없었다. 설령 적당한 성적이라 하더라도. 그 아이의 아버지가 우리 학교 교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애의 성적은 거의 언제나 1등이었다. ‘애국 조회’(이렇게 불렀다) 시간에 애국가를 부를 때면 반장의 아버지인 선생님이 강단에 올라서서 가느다란 막대기를 들고 애국가를 지휘했다.

열 명쯤 되는 아이들이 방과 후에 남아서 선생님의 과외 지도를 받았다. 교실 문 바로 앞의 벽 쪽으로 앉았을 테다. 지도란 별것 없었다. 학습지를 풀게 하는 게 다였다. 다음 날 똑같은 학습지를 반 전체 아이들에게 나눠 주고 풀게 한다. 그들은 한 번 본 시험을 다시 본다. 그중 원래 공부를 잘했던 아이들은 당연히 백 점을 받고 좀 못했던 아이들은 다시 봐도 백 점은 못 받지만 최소 8, 90점은 받는다. 그런 식으로 문제를 거듭 풀다 보면 월말고사 점수도 어느 정도 올라간다. 그걸 본 부모는 기뻐서 다음 달에도 계속 과외 공부를 시킨다. 선생님은 그런 식으로 고정 고객을 확보했다.

내 앞에 앉았던 남자애가 한 행동이 생각난다. 성적이 상위권에 드는데도 집이 잘 살았는지, 교사의 말을 거절하기 어려웠는지 몇 달 과외를 받았다. 툭하면 내 연필이나 지우개를 가져가고 반갑잖은 장난을 걸어서 날마다 툭탁거렸지만 그래서 좀 친하다고도 할 수 있는 애였다. 한 번은 선생님이 나에게 시킨 일을 잘못 처리한 적이 있었다. 선생님이 나를 불러 잘못을 일러주는데 그 애가 갑자기 나와서는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괜찮아, 괜찮아.’하고 선생님께 ‘괜찮죠?’ 했다. 제가 뭐라고? 선생님이 자신에게 호의적인 줄 아니까 그랬을 테다. 과외 공부하는 애들한테 선생님은 너그러웠다.

어느 날 과외 받는 애들이 전날 풀어본 학습지를 새로 모두가 풀게 했을 때, 그 애는 자기 시험지는 후딱 풀어버리고 내 쪽으로 돌아앉았다. 그리고는 내가 문제를 다 읽기도 전에 2, 4, 하며 정답의 번호를 불렀다. 그 애가 그 시험지를 두 번째로 풀고 정답을 알고 있다는 것을 나도 알았다. 그래서 내가 고른 번호를 맞다고 할 때는 안심되기도 했지만, 생각하고 있는데 미리 답을 말하거나 다른 답을 골랐을 때 3, 3, 하고 강요할 때는 짜증스럽기도 했다.

엄연히 시험인데 남의 답안지를 베끼는 것 같고 선생님이 보실까 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멀리 있던 선생님은 뒤로 돌아앉아 있는 그 애를 못 보지 않았을 텐데 내버려 두었다. 성적에 들어가는 정식 시험이 아니라서였을까? 책상 가운데 책가방은 올려 두었는데.

그 애는 왜 그렇게 했을까? 장난치기 좋은 상대인 나를 친구로서 백 점 받게 해주고 싶었을까?(그래서 백 점 받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걔 도움으로 받은 백 점이라면 그리 기쁘지도 않았을 테다.) 혹시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 뭔가 양심에 거리끼는 바가 있어서는 아니었을까?

과외비는 2, 3천 원 정도였다. 지금 가치로 5, 6만 원쯤 될까? 현직 교사의 자기 반 아이 과외라니, 선생님은 불법을 저질렀다. 알고 보니 추행한 교사가 혼자가 아니듯 이런 범법자도 우리 선생님만이 아니었다. 이 시대라면 모두 파면이다.


미투 운동이 온 나라를 휩쓴 다음에 정희를 만났다. 6학년 때 친구들 이야기를 하다가 담임 선생님도 끌려 나왔다. 그 일에 대해 ‘성폭행까지는 아니고 성추행이지’ 라면서도 선생님을 생각만 해도 싫다고 진저리를 쳤다.

정희는 공부를 잘했지만 가정 형편을 생각해 상업 고등학교에 갔다. 제일 좋은 학교를 나왔지만 바로 취직되지는 않았다. 스무 살 여름에 제2금융권에 계약직으로 들어갔다. 짝과 나는 정희가 일하는 창구로 찾아갔다. 친구 중 가장 먼저 돈을 버는 정희를 부러워하는 우리에게 1년밖에 안 하는데 뭐, 라며 쑥스러워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후에도 정희는 계속 무슨 일이든 하고 있었다. 평생 돈을 벌기는 많이 벌었는데 돈이 없다고 정희는 말했다. 친정에도 보탰지만 남편 탓이 컸다.

정희의 남편은 노름을 했다. 빚을 많이 지고 경제 활동을 못하게 되어 정희가 혼자 벌어 세 식구를 먹여 살렸다. 그래도 남편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눈만 뜨면 노름을 했다. 밑 빠진 독에 하염없이 물을 붓던 정희는 더는 그렇게 못 살겠다며 이혼했다. 딸은 정희와 함께 산다. 딸의 아버지가 양육비를 보낼 리 없다. 정희는 또 혼자 딸을 키우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어려서도 집안일을 도맡아 하며 동생들을 챙겼고 돈을 벌면서부터는 집안 경제까지 책임졌을 착한 정희한테 왜 그런 남자가 걸렸을까?

멀리 떨어져 있어 잘 만나지 못하지만 정희의 신산한 삶을 볼 때마다 그게 열린 단추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채 피지도 않은 꽃봉오리를 침노하고 농락한 나쁜 남자, 짐승 같은 그 담임 탓이라 여겨진다. 미래에 대한 꿈으로 부풀었을 어린 가슴을 늙은 수컷이 더러운 흙발로 짓밟아버렸으니 그 아이의 인생이 어찌 순탄했을까 싶다. 그 일로 자부심과 자존감이 무너져 내리고 때로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되지 않았을지. 그래서 제대로 된 판단을 못 하고 그런 남자를 선택한 건 아닐지.

자신이 희롱한 어린 소녀들, 선생님은 말년에(아마 별세했겠지) 떠올려보았을까? 자신의 추악한 행위를 돌아보고 참회하는 시간을 가졌을까? 짐승이 아니고 인간이라면 부디 그랬기를.

늑대들과 한 시기를 보냈다. 정희를 포함해 그때 나쁜 남자로 인해 괴로웠던 모든 아이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다. 앞으로는 이 봄처럼 싱그러운 바람과 밝은 햇살이 넘나드는 고운 나날이 펼쳐지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정희는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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