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은 필수품일까? 삼복더위에 하는 말이니 당연하지, 라 할 사람이 많을 테다. 더워도 어지간히 더워야지, 하면서. 맞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고 옷이 몸에 들러붙는다. 끈적대는 몸에 불쾌감이 상승하고 괜스레 짜증이 난다. 이럴 때 에어컨을 켜면 소란스럽던 감정까지 고요해진다. 그제야 뇌가 안정되고 제대로 작동하는 것 같다. 에어컨이 필수품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만약 에어컨이 없다면 살 수 없을까?
어릴 때, 한여름이면 섭씨 39도까지 올라가는 도시에 살았다. 그런데도 대가족이 선풍기 한 대로 여름을 났다. 밖에 나갔다 들어온 애가 와, 덥다 하며 선풍기를 자기 얼굴에 고정시키면 뭐라 하기도 했지만 마루 한가운데서 선풍기가 돌아가게 해놓고 모두가 쐬었다. 할머니는 방안에서 큰 부채로 여름을 다스리셨다. 아무 해로움 없이 적당한 바람을 일으키는 부채를 우리도 하나씩 가지고 썼다. 오래 켜서 더운 바람 나오는 선풍기보다 좋을 때도 있었다. 나중에 한 대를 더 사 선풍기가 두 대가 되니 한결 여유로웠다. 선풍기 앞에서 싸우는 일도 줄었다.
아무리 더워도 샤워장이 변변치 않아 얼굴과 발만 씻고 선풍기 앞에 앉으면 물기 있는 얼굴이 시원했다. 남자들은 저녁에 어둑한 수돗가에서 등목을 했다. 아버지나 오빠 등에 바가지로 찬물을 끼얹은 일이 생각난다. 냉장고도 없었다. 얼음 가게에서 사온 얼음을 바늘과 칼로 깨어 넣고 수박 화채를 만들어 한 사발씩 먹으면 몸 시원, 입 달콤, 더 부러운 사람이 없었다.
몇 해 전부터 우리 집에 ‘1인 1 풍기’ 시대가 열렸다. 어릴 때와 비하면 지나치게 호화롭다. 아이들이 없는 낮에는 놀고 있는 선풍기도 있는데 한 공간에 하나씩 있으니 그걸 옮겨 오고 가고 할 필요가 없다. 각자 몸 앞에 선풍기 한 대를 두고 쓸 수 있도록 형편이 좋아졌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걸로는 부족해 에어컨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이 여름에 에어컨도 없이 선풍기 하나로 견딘다’는 기사를 많이 본다. 에어컨이 필수품이라는 뜻일까?
오랫동안 에어컨 없이 살았다. 집에 에어컨이 없다고 하면 사람들은 몹시 놀라며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한다. 언니는 ‘세상에 이런 집이!’로 텔레비전에 나올 일이라고 했다. 딱하다는 얼굴로 ‘그렇게 아껴서 뭐 하려고? 전기료 얼마 안 나와.’ 한 사람도 있고 독하다고 한 사람도 있다. 에어컨이 없다고 이런 말까지 들어야 하나?
돈 아끼자고 에어컨을 안 산 건 아니다. 내가 에어컨을 안 산 이유는 첫째, 견딜 만해서고 둘째, 환경을 생각해서다. 이유까지 밝혀야 할 일인지 모르겠으나.
전에 살던 집은 오래된 아파트라 거실이 좁은 편이었다. 에어컨을 두고도 올해 한 번도 안 틀었다느니 오늘 처음 틀었다느니 하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일 년에 한두 번, 많아야 열 번도 안 쓸 에어컨을 위해 공간을 내주는 게 아까웠다. 일 년 내내 그 덩치를 마루에 두기도 부담스러웠다. 있어도 잘 안 쓸 테고 선풍기로 견딜 만한데 뭐하러 사나 싶었다. 정말 너무 더워 잠자기도 어려울 때는 딱 일주일 정도였고 일 년에 일주일은 참을만했다.
눈앞에 보이는 아파트에는 집집마다 실외기가 붙어있다. 차를 타고 갈 때 길가에 보이는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에어컨 없는 집을 찾기 어렵다. 간혹 한두 집 발견하면 반가워서 아이들과 함께 ‘와, 저 집도!’ 했다.
위층과 아래층 베란다에 놓인 실외기에서 나오는 더운 바람이 창을 통해 우리 집으로 들어온다. 실외기는 그 집들은 식히고 우리 집은 데운다. 더워도 선뜻 창문을 열지 못한다. 그때 깨달았다. 집집이 뿜어대는 실외기의 열풍이 대기의 온도를 더 높인다는 걸. 나마저 에어컨을 켜 바깥 기온이 푹푹 올라가게 하고 싶지 않다.
신문에서 어린아이에게 에어컨의 원리를 설명해 주는 글을 보았다. 거기서 에어컨은 기온을 낮추는 게 아니라 공기를 이동시키는 거라고 했다. 에어컨이 실내의 더운 공기를 바깥으로 빼주는 기계라고 했더니 아이가 말했다. ‘엄마, 그럼 바깥에 있는 사람은 더워도 돼요?’라고. 그걸 읽고 나니 도덕적으로도 에어컨을 막 써서 되는가 싶어졌다. 내가 시원하기 위해 다른 사람은 더워도, 이 지구의 온도는 올라가도 상관없는가 말이다.
이렇게 보면 에어컨을 쓰지 않는 사람을 독하다고 할 게 아니라 상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일터에서 장시간 신체 노동하는 사람에게는 에어컨이 꼭 필요하지만 에어컨을 마음껏 쓰라고 여름철 전기요금을 인하하는 건 좋은 정책이 아닌 것 같다. 에어컨은 선풍기 30대를 켤 만큼 전기를 소모한다고 한다. 자동차와 함께 에어컨을 많이 쓰면 쓸수록 기온은 더 올라가고, 빙하가 녹아내리는 지경인데 그래서야 되겠는가. 자녀 출산 가정에 지원금을 주듯 에어컨 없는 가정에 여름 석 달 동안 상금을 주어 치하함이 옳다.
우리나라 지하철은 여름에 왜 그리 추울까? 은행, 관공서, 기차, 대형 상점, 가는 곳마다 너무 추워서 긴 소매 옷을 챙겨야 한다. 반대로 겨울에는 땀이 삐질삐질 나서 겉옷을 벗어들지 않을 수 없다. 기후 재앙이 빈번히 예보되는 때에 여름은 춥게, 겨울은 덥게 사는 우리를 제정신이라 할 수 있을까?
요즘 신혼부부가 필수품이라 여기는 특대형 침대, 큰 냉장고, 큰 TV, 키 큰 옷장, 에어컨, 건조기, 스타일러. 이 모든 건 정말 없으면 못 사는 필수품일까? 필수품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큰 집도 필수가 되어 넉넉지 않은 사람은 부모의 등골을 더 빠지게 하거나 은행의 배를 불리고 대출금을 갚느라 고생한다.
침대는 과학이 아니고 필수품도 아니다. 집이 작으면 바닥에서 자고 이부자리를 개면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냉장고도 대용량일 필요가 없다. 쟁여둘 공간이 있으면 채우려 하고 많이 사면 많이 버리게 된다. 이 또한 지구에 부담이다. 정작 냉장고가 없을 때는 조금씩 사서 먹을 만큼 조리하니 상해서 버리는 음식이 없었다. 누구든 각자의 상황에 맞추면 되지 남의 이목에 맞출 필요가 없다.
필수품이 아니라 여긴 에어컨을 나도 사고 말았다. 작년에. 심각하게 더운 날에 노약자인 부모가 쓰러질까 걱정된다는 아들을 포함한 식구들의 의견을 따른 일이다. 이제 에어컨 쓰는 사람에 대해 뭐라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난생처음 에어컨 있는 집에 사는 게 낯설다. 지난겨울, 한 구역을 점령한 그 덩치를 보고 너 여기 서서 뭐하니, 라 묻기도 했다. 엄청 더울 때 켜보니 시원하기는 했지만 우리 집에서 지구로 뿜어낼 더운 기운을 생각하면 죄스러운 마음이 많이 든다. 그래서 정신이 나갈 정도로 덥지 않으면 여전히 선풍기를 쓴다. 그것이 기상 이변으로 몸살을 앓는 지구를 위해 작으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믿으며.
더 편리하게 살기 위해 개발한 자동차와 냉장고, 에어컨, 컴퓨터는 현대의 필수품이 되었지만 그로 인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만만치 않다. 우리가 지녀야 할 필수품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어느 정도의 더위나 추위,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는 참을성이 아닐까?
여름이면 더위 관련 뉴스가 많다. 오늘도 열대야, 관측 사상 6월 최고의 더위, 폭염, 찜통, 한증막, 불쾌지수. 이런 단어를 들으면 더 덥게 느껴지는데 날마다 쏟아내는 걸 보면 더위 해소를 지상 과제로 삼은 듯하다.
땡볕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폭염은 견디기 힘든 일이다. 노약자에게는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더위에 그렇게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을까? 더운 건 인생의 다른 어려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 너무 엄살 부리지 말았으면 한다. 섭씨 40도의 더위라도 간절히 바라던 일의 실패나 좌절, 가족과의 이별보다 고통스럽겠는가. 더위가 백일홍처럼 백일을 가는 것도 아니다. 땀이 흘러도 할 일을 하며 이럭저럭 견디다 보면 어느새 설렁~ 가을바람이 불 테다.
저만치, 오래전에 예약된 가을이 오고 있다.